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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하늘의 권세냐, 사람의 권세냐?
(마태복음 21:23-2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이었다(마 21:12). 다음날에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라죽게 하셨다. 그리고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가장 분노한 것은 대제사장들이었다. 이것은 자기들의 권세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환호하고 있고, 또한 예수님이 책망하신 대로 성전을 장사치들의 소굴을 만들었고,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형편이 되었으니,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지 않은가? 예수님이 만약에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 오셔서 그런 일을 행하신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하기는 예수님이 오늘의 교회에 오시면 그렇게 하실까? 칭찬만 많이 하실까?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냉철히 자신을 살펴야 한다. 차라리 주님이 오셔서 책망하여 주심으로 나를 고치기를 소원하며, 간구해야 더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만약 주님이 그때처럼 장사치들을 쫓아내시고 상을 뒤집어엎으신다면 누가 제일 분노할까? 혹시 목사와 장로들이 아닐까?
첫날에는 그들이 많이 참은 것 같다. 참았다기보다 대책을 세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이 만일 “하나님의 권세로 이런 일을 했다고 대답하시면, 그들은 당장에 반박하기를 하나님이 자기의 집을 그렇게 뒤엎어 놓겠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붙여서 정죄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권세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크게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직답을 회피하시고, 오히려 세례 요한의 권세를 가지고 반문하셨다.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라고 반문하셨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함께 모여서 무엇이라고 대답할까를 상의하였다. 하늘로부터 온 것이었다고 대답한다면 왜 믿지 아니하였느냐고 반격하실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백성들이 분노하여 자기들을 대적하게 될 것이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알지 못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예수님도 “나도 내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질문에 대한 직답을 거절하셨다.
1. 사람의 권세란 어떤 것일까?
1) 일반적으로 사람의 권세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① 무력으로부터 온다. 육체의 힘이거나 무기의 힘이거나 힘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옛날의 왕들은 무력으로 정복한 후에 백성들을 지배하였다.
② 재물로부터 온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들을 다스린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돈 앞에서는 굽실거린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쓴다.
③ 지식으로부터 온다. 많이 배운 사람이, 또는 아는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을 다스린다. “아는 것이 힘이다.” 모르면 수치를 당하고, 남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오늘날에도 과학 지식이 발달한 사람이나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④ 계급에서부터 온다. 관계성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다스린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을 다스린다. 부모가 자녀들을 다스리고, 형이 동생을 다스린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다스린다. 직책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다스린다.
⑤ 권력으로부터 온다. 무력보다 강한 것이 정치권력이다. 그래서 인류는 끊임없이 이 권력을 잡으려고 투쟁해 왔다.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는가?
2) 인간 권세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다.
① 사람들의 육신을 지배하여 복종하게 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아와 간청하기를 “선생님이여! 주님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안다.”고 대답하셨다(막 10:35,42). 이것이 정치적 권세다.
② 종교적 권세도 있다. 그 권세는 자기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선전하고, 하나님의 권세를 위장한다. 그것으로 약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지배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했다. 중세기의 역사에서 볼 때에도 로마교회의 교황권이 당시 서구 세계의 왕권을 지배했다.
③ 외식하는 것이고, 죄인들은 이런 외식에 속게 되어 있다. 이 권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계명으로 바꾸어놓는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가 그러하였고,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하여 쉽게 알 수 있듯이 타락한 교회들이 다 그러하다.
④ 인간의 권세는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권세가 행복을 줄 수 있는 줄로 알고,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은 스스로 속아서 더욱 큰 불행에 떨어지고, 후회스러운 삶을 살게 될 뿐이다.
⑤ 인간의 권세는 장구하지 못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다 변한다. 인간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흥하는 때가 있으면 망하는 때도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로 변하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친구로 변하기도 한다.
3) 인간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를 대적하는 권세다.
① 인간들은 자기들의 권세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권세를 대적하여 왔다. 그리고 늘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았다.
② 고린도후서 10:8에서는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를 파하려고 하는 권세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것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실패하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가!
③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 누가 보든지 하나님이 계신 것이 분명하게 깨달아진다면 누가 하나님을 안 섬기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섬기라고 하지 않는가! 오직 믿음의 사람들만이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권세란 어떠한가?
1) 하나님의 권세는 인간의 권세와는 다른 영적인 권세다.
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주신 권세는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눅 9:1)였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와 만국과 천사들까지도 심판할 권세(고전 6:2-3)다. 나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였다.
② 우리의 육신을 복종시키기보다 먼저 마음을 복종시키는 권세, 곧 마음으로부터 복종하도록 만드는 권세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깨우침을 주고, 죄를 회개함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든다. 세상 권세자의 명령에는 우리가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죄를 회개하고, 그래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권세가 무섭고, 만약 불순종하면 형벌이 무서워서 그냥 육신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는 당장에 어떤 육신적인 고통이나 형벌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 감사함으로 복종하도록 만드신다.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의 존경심과 복종심이 없는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을 거절하셨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사이적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인 충격과 두려움을 받고, 그래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③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권세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마 9:6). 죄를 사하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권세다.
그러나 인간의 권세는 우리를 정죄하는 권세요, 우리를 죄 속으로 끌고 가는 권세다. 의인을 악인이라고 정죄하기도 한다. 특히 악인들은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가는 짓을 자행한다. 전쟁을 일으킨다. 의인을 박해하고, 반대자들을 숙청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세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우리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권세다.
④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권세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만든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의로운 마음이 성장하고, 거룩한 마음이 더욱 커져야 한다.
⑤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권세다. 사람의 행복은 육신의 안락함에 있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그 형상을 회복할 때에야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주께서 주신 권세는 우리를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고후 10:8).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권세를 받아야 한다.
2) 하나님의 권세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①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많은 능력을 행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면서 많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②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세례 요한은 능력을 행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들었다. 그가 전하는 말씀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면서 세례를 받았다.
③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된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이 일어나게 만든다. 하나님께 자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닮아가게 된다.
④ 의로움으로부터 나온다. 죄인이 남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그러나 흠잡을 데 없는 의인이 외치면 그 말에는 권세가 있다.
⑤ 기도로부터 나온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다. 특히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다”(약 5:16-18).
3) 하나님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변하지 않는 권세다. 하나님이 영원히 변하시지 않기(히 13:8) 때문이다.
3.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살 수 있을까?
1)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는 사실이다.
① 로마서 13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② 또한 디모데전서 2장도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딤전 2:1-3)
③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랍비여! 예수님이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말하였더니, 요한이 대답하기를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 3:26-27)라고 하였다.
2) 동시에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나온 권세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귀로부터 오는 권세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는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다.
① 그러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오고, 마귀로부터도 오는 것일까? 아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모두 주님께 있다. 하나님은 지구 위에 인간들을 만드시고는 그들에게 거주의 한계도 정해 놓으셨다. 바울이 아덴이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서 행한 설교가 사도행전 17장에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행 17:25-26)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므로 남의 땅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마귀에게도 권세를 주셔서 악행을 하게 하신다. 왜 그렇게 하실까?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기 때문이다.
②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볼 때에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만큼 마귀의 권세가 커지게 되어 있고,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면 그만큼 마귀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28장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의를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 마귀가 그런 사람들을 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만큼 죄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귀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원수는 더욱 강해진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신 28:15)라고 시작하여, 43-44절에서는 “너희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그는 네게 꾸일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③ 마귀는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께도 찾아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말하기를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5-6)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은 내게 넘겨 준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④ 하나님이 마귀에게 주신 권세는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한 권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귀의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다. 마귀는 죄인들 위에서만 왕노릇한다. 우리는 천국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마귀의 법인지, 어느 것이 하나님의 법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첫째로 해야 하는 일은 회개하는 것이다. 마귀의 권세, 인간의 권세는 악인들 또는 죄인들 위에만 군림한다. 마귀는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가 회개를 하기만 하면 마귀 소속에서부터 떠나서 하나님 소속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속여서 회개하지 못하게 하고 마귀의 말을 듣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다. 악인들은 악을 행하다가 더욱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어 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은혜란 깨닫는 것이다. 은혜가 없는 사람은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은혜가 있으면 깨달음이 빨라진다. 또한 그 깨달음이 새로워진다. 요한복음 16:8에 “성령이 오시면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책망한다’는 말씀은 “깨닫는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무엇인가? 그 은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보혈의 은혜요, 또한 우리를 감격하게 만드는 십자가 사랑의 은혜다. 이 은혜를 받을 때에 우리는 무한한 기쁨과 감격 속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비로소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의의 병기로 사용하신다.
우리 인생은 누군가에게 쓰임을 받다가 떠나게 되어 있다. 연봉 천만 불 이상을 받는 야구선구나 농구선수들도 모두 돈에 팔려 쓰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왕이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보람이 넘치는 일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의 가치를 안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그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세상에 속하여 헛된 것만 열심히 추구하다가 결국에는 비참하게 멸망하고 만다.
5)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누구이기에 이렇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는가?
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깊은 것도 통달하시는 분이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겠는가? 이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전 2:10-11). 이러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므로, 그 뜻을 행할 수 있다. 그래야 천국에 가게 되지 않겠는가(마 7:21)?
②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이 임하여 세상을 이기고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들이 되게 하신다(행 1:8).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받는 일이다. 성령이 없이 일한다는 것은 곧 자기의 힘과 지식과 재주로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장차 심판하시는 날, 주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 것이다.
③ 이사야 11:2에서는 성령을 가리켜 설명하기를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고 하였다.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도 성령으로 주신 것이요, 다니엘이나 요셉에게 주셨던 총명도 성령으로 주신 특별한 은사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 안에 이런 모든 보화들이 가득하게 들어있는 것이다.
④ 성령은 우리 마음에 천국을 주신다. 로마서 14:17에 “천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성령이 없이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이 없고, 물론 저 세상에서도 천국이 없다.
6) 기도에 힘써야 한다. 기도를 많이 할수록 하나님과의 교통이 많아지고 빨라지고 쉬워진다. 그리고 하나님이 더욱 사랑해주시고 복되게 만드신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다 시행하리라.”(요 14:13-14)고 약속하셨다. 그뿐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예레미야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약속하셨다. 기도를 통하여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하나님의 비밀의 세계에 이르렀다. 우리도 그 복된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특히 이 위태한 때에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다.
7) 진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귀가 시험할 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해야 한다. 육신의 음식도 잘못 먹으면 큰 병에 걸린다. 하물며 영의 양식을 잘못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경을 많이 읽고, 열심히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진리의 세계가 열린다. 온갖 거짓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리의 정병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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