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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시 19:7-10)
할렐루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고 했는데,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은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오시며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한 발자욱을 내밀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빠르게 달려 오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가까이 하고자 한다면,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교회에서 멀어지면 안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 늘 교회가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가까이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사모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몸과 마음과 물질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일날, 왜 교회에 나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배에는 드리는 것과 받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복을 받게 됩니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은혜가 되고, 복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은혜도 없고, 복도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도 없다고 한다면, 교회에 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드림과 받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119:130절을 보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밝은 빛이 비취게 됩니다.
시편 18:28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19:105절 말씀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는 “말씀을 가까이 하면, 죄가 멀리 가고, 죄를 가까이 하면, 말씀이 멀리 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시편 1:1-2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악인들의 꾀를 따르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죄인들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형통의 복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신명기 6: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살고자 한다면, 크게 번성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기 때문입니다.
시편 107: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여러분!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고, “시몬 베드로를 청하라”는 음성을 듣고, 베드로 사도를 자기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베드로에게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전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전도 여행을 하다가,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믿는 도리를 비방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2년 동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다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행 19:8-10)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야 할 때, 장로들을 불러,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1-32)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능히 든든히 세워줍니다.
로마서 1: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성장과 성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사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7-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아멘.
사울 왕 시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강하고, 이스라엘 군대는 약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울 왕이 병사들에게, “블레셋 군대와 싸워서 승리할 때까지는 식물을 입에 대지 말고 금식을 하라. 만약 식물을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전쟁에서는 잘 먹고, 싸워도 힘든데, 사울 왕은 병사들에게,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어리석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병사들은 굶고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병사들은 지칠 대로 치쳤습니다. 그때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병사들과 함께 수풀 속에 숨어 있다가 꿀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나단은 지팡이 끝으로 꿀을 찍어서 먹었습니다.
꿀을 먹은 요나단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힘이 났다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살 것 같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먹은 것은 “꿀”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조금 입에 댈 정도로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단이 힘이 나고, 정신이 들고, 살 것 같았습니다.
“꿀”이 몸에 얼마나 좋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꿀”을 먹으면, 기력이 회복됩니다. 힘이 납니다. 에너지가 넘칩니다.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에게 좋은 최고의 영양분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켜 줍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게 합니다.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같아서, 우리의 몸과 영혼에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말씀이 들어가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지혜롭게 됩니다.
마음이 기쁩니다. 눈이 밝아집니다. 영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의롭게 됩니다.
시편 119:103절을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19:97절을 보면,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사모해야 합니까?
시편 119:131절을 보면,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말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서,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고, 헐떡이듯이, 말씀을 사모하여 헐떡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합니다.
시편 119:165절을 보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리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벤허”라는 소설을 쓴 “윌레스”는 본래 무신론자였습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거짓이요 기독교는 무익한 종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꿀이 그의 마음 속에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꿀이 그의 마음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생애를 증거”하는 “벤허”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고, 평생을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꿀을 먹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
왜 남유다는 멸망 당하였을까요? 왜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까요? 왜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도시는 황폐화되었을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백성들에게 보내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비웃고, 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가만히 놔둘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대하 36:11-21)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그의 왕위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3)라고 말했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결과, 그의 왕위를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107:10-11절을 보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잠언 13:13절을 보면,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멸시하거나,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 28:9)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성경 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날 수 있습니다.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호등”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신호등인 성경은 우리에게, 서야 될 곳, 가야될 곳, 돌아가야 될 곳, 좌회전, 우회전 등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고,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고, 가야 될 곳과 안가야 될 곳, 서야 될 곳과 돌아서야 될 곳을 가르쳐 줍니다.
“돌아서라. 우회전해라. 속도를 줄여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스코트렌드에 본어 목사님은 성경에 대하여, “내가 피곤할 때 성경이 나의 침대가 되고, 어두움이 있을 때 성경은 나의 빛이 되며, 내가 주릴 때에는 나에게 생명의 떡이 되었노라. 두려울 때에 성경은 나의 갑옷이 되어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는 고쳐주는 양약이 되고, 고독할 때에는 성경에서 내가 많은 친구를 얻었노라.”고 말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일이 잘되고 무사할 때도 성경에서 갈 길을 찾아야 하고, 상황이 곤란해지고 괴로울 때에도, 성경에서 갈 길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4:20-22절을 보면, 솔로몬은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근심, 걱정, 고통, 슬픔, 역경, 배신, 오해, 무시 등을 당합니다. 질병이 끊이지 않으며, 죽음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빛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침반이 되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 속에서, 홀로 애처롭게 울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탄식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참된 행복을 찾았습니다.
어둠, 절망, 고통 중에서 소망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성경을 읽으십시오.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온갖 불행을 떨쳐버리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살 길이 보입니다. 눈이 밝아집니다. 힘이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먹는 자는 삽니다.
찬송가 200장입니다.
1.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2. 귀한 주님의 말씀은 내 노래 되도다 모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아 생명 길을 가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3. 널리 울리어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듣고 복을 받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멘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소성시켜 주옵시고, 우리의 우둔함을 지혜롭게 해 주시며,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시고, 우리의 캄캄한 눈을 밝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