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 뜨거운 날씨에 남한산성 등반을 했습니다
금년은 기후변화로 이상기온의 영향으로 역대 가장 더운 날씨라고 하는데
매일 낮기온이 평균 34도이고 열대야가 26일 연속으로 움직이기도 힘든
날씨이지만 이열치열 (以熱治熱) 정신으로 남한산성을 등반하기로 마음먹고
등반을 했다,
사실 남한산성은 계단으로 되여있지만 등산로가 대부분 포장이 되여있어서
등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웠다, 예전에는 마천역이나 8호선 산성역에서
내려서 오솔길을 따라서 올랐으나 이번에는 날씨관게로 9번 버스를 타고
정상 산성마을 까지 가서 남문으로 올라가서 수어장대를 거처 서문과 북문을
거처서 하산했다,
특이한점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여 산성 전체를 정비하였으며 금연과
금주구역으로 흡연시 100만원, 음주시 10만원의 벌금을 부여 했는데 저도
예전 생각만하고 막걸리를 한잔하니 단속원이 나타나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번 한번은 봐줄테니 다시 음주를 하면 즉각 벌금을 부여하겠다고 하여
술병을 치웠습니다, 지금까지 국립공원에서는 단속을 했지만 유명무실했고
일반 산에서는 단속이 없었는데 여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여 흡연,
음주시 즉각 벌금이 부여되니 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사진의 일부는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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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이모저모
남한산성의 유래
온조 14년(BC 5)에 하남 위례성에서 천도해온 이후 신라 문무왕 12년(AD 672)
토성(주장성, 일장성라 칭함)으로 축성하였고, 조선 광해군 13년(1621년)에
후금의 침임을 막고자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 하였으나 준공치 못하고 이괄의
난을 격고난 후 인조 2년(1624)에 재 시작하여 인조 4년(1626)에 준공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남한산성 성벽을 국가사적 제 57호로 지정하였다. 조선조
병자호란때 인조임금이 이곳으로 피난와 40여일 간 청나라군에게 항전한 곳이다
하늘과 숲으로 난 요새, 남한산성
경기 광주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 주장성 터에 성돌을 쌓아 1626년 완공했다.
이괄의 난을 겪은 뒤 조선 왕실의 피신처로 지었다. 축성 10년이 지난 1636년
병조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도성 밖 궁궐인 행궁이 함께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남한산성
종 목 사적 제5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1
시 대 조선시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
(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남한산성 행궁
종 목 사적 제480호
지 정 일 2007.06.08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935-6번지 외
시 대 조선시대
남한산성행궁은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 봉안
건물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조선시대 행궁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 항전의 전적지로서 최고의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남한산성(사적 제57호)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행궁은 1999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상궐, 좌전이
복원되었으며, 일부 건물지에서 초대형 기와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중요한 유적이다.
2.수어장대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지 정 일 1972.05.04
소 재 지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15-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
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바깥쪽 앞면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건물의 규모는 1층은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2층
4면의 바깥기둥은 1층의 높은 기둥이 연장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96년에 유수 박기수가 다시 고쳐 세운 것으로 인조 2년
(1624)에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남한산성 지도
행궁 ( 임금이 자방행차시 임시로 머물렀던 궁궐)
한남루 ( 병자호란때 인조 임금이 머물렀던곳)
행궁에 대한 설명
양들의 침묵
취성암 ( 술 취한 사람이 이곳 바위에 앉으면 술이 깬다고 하는데, 바위는 사라지고 없다)
남한산성내의 숲길
남한산성 성곽과 잘 정비된 도로인 산성로
성문
이정표
암문 ( 성의 비상문) 으로 남한산성내 16개의 암문이 있다고 한다
성안에서(암문) 본 성밖 모습
성곽 탐방객이 남한산성 주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왕궁이래서 그런지 미인송들이 너무 많다.
남한성을 지휘했던 수어장대
남한산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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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선배님! 오늘도 한수 배우고 갑니다...올리시는 글을 볼때마다 존경심이 저절로 나오네요...항상 감사드립니다...충^^성^^
항상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