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창문(權昌門)
[본관] 안돈(安東)
[생졸년] 1582년(선조 15)~1634년(인조 12) / 향년 5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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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학사집(鶴沙集)
풍산포 만호 권군 묘갈명 병서(豐山浦萬戶權君墓碣銘 幷序)
군(君)은 성이 권씨(權氏)이고 이름이 창문(昌門)이며 자가 자번(子蕃)이고 본관이 화산(花山 안동)이다. 비조(鼻祖) 고려 태사(太師) 권행(權幸)은 공훈과 덕행이 세상을 덮어 지금까지 800여 년 동안 자손이 번성하여 벼슬이 대대로 이어졌다.
권정(權定)은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는데 군에게 9세조가 되고, 증조 권봉년(權鳳年)은 선교랑(宣敎郞)을 지냈고, 조부 권계옥(權啓沃)은 성균관 진사였다. 부친 권도영(權道榮)은 장사랑(將仕郞)을 지냈고, 모친 예안 김씨(禮安金氏)는 통례원 인의(通禮院引儀) 김응운(金應運)의 따님으로, 만력(萬曆) 임오년(壬午年,1582, 선조 15)에 군을 낳았다.
군(君)은 나이 10여 세 때에 남쪽 왜구의 난리를 만나 배울 기회를 잃었고, 조금 성장하여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워 활을 쏘았다 하면 명중하였다. 임자년(壬子年,1612, 광해군 4) 별거(別擧 별시)에 합격하여 수문장(守門將)에 제수되고 이어서 풍산포 만호(豐山浦萬戶)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갑술년(甲戌年,1634, 인조 12)에 질병으로 죽으니 향년 53세였다. 그해 12월에 영천군(榮川郡) 동쪽 단운산(丹雲山) 선영(先塋) 해좌(亥坐) 언덕에 장사 지냈는데, 봉향리(奉香里) 집과 거리가 5리 떨어져 멀다. 아, 군은 타고난 성품이 평이(平易)하고 함부로 말하거나 웃지 않았으며 행동거지가 편안하고도 한가로우며 옷은 유생처럼 입었다.
참의(參議) 이욱(李稢)이 본도(本道 경상도) 조도(調度)의 명을 받들고 와서 군의 이름을 듣고 불러 보좌로 삼았고, 군이 재국(才局)이 있는 것을 알아 조정에 천거하였다. 일명(一命 9품)의 관직은 시골에서 영광으로 여기는데 거듭 불러도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니 또한 기이하다. 죽은 나이가 많지 않고 재주를 펼치지도 못했으니 운명이다.
부인 공주 이씨(公州李氏)는 현감(縣監) 이정견(李庭堅)의 딸로, 맑은 행실이 있고 의리(義理)를 알았다. 군과 같은 해에 태어나 군보다 13년 뒤에 죽어 합장하였다. 외아들 처중(處中)은 어려서 과거공부를 해서 일찍이 해시(解試)에 합격하였으나 성시(省試 대과)에 낙방하였다.
첫째 부인은 교수(敎授) 김우인(金友仁)에 딸로 딸 둘을 낳았다. 장녀는 사인(士人) 송광실(宋光室)에게 시집가서 일찍 죽었고 1남 1녀를 두었다. 차녀는 충의위(忠義衛) 장령(張玲)에게 시집가서 아들 셋을 낳았다. 둘째 부인은 생원(生員) 금대수(琴大遂)의 딸로 외아들 해령(海齡)과 딸 셋을 낳았다. 장녀는 사인 김경로(金景老), 차녀는 사인 금이소(琴以韶)에게 시집갔고 막내딸은 어리다. 명은 다음과 같다.
온 세상이 봉록과 작위에 급급한데 / 擧世營營於祿位
그대만은 재차 명을 받고 담장 따라 달아났네 / 君獨再命而循墻
남들은 각각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지만 / 人各從吾所好兮
또 어찌 이익과 명예의 장소만 따르는가 / 又奚爲乎利名之場也哉
목숨이 길지 않아 재주를 펼치지 못했으니 / 惟其壽不永而才不售
어찌 저 푸른 하늘에 유감이 없겠는가 / 寧無憾於彼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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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이욱(李稶) : 1562~?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중실(仲實), 호는 지강(芝江)ㆍ취옹(醉翁)이다. 선전관 이의로(李義老)의 아들로 158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9년 세자 입학과 원손 탄생을 경축하기 위하여 실시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필선ㆍ장령ㆍ동부승지를 거쳐 1615년 병조 참지가 되었으며, 1618년 강원 감사로 재직할 때에는 술에 취하여 풍류를 즐기다 사헌
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주02] 조도(調度) : 세금 징수의 업무를 맡은 관리이다.
[주03] 담장을 따라 달아났네 : 송(宋)나라 정고보(正考父)는 대공(戴公)ㆍ무공(武公)ㆍ선공(宣公) 등 세 왕을 보좌하였는데 명령을 받을
수록 더욱 공근(恭謹)하였다. 그래서 그의〈정명(鼎銘)〉에 이르기를 ‘첫 번째 명을 받을 때에는 고개를 숙였고, 두 번째 명을 받을
때에는 허리를 굽혔고, 세 번째 명을 받을 때에는 담장을 따라 달아났다.’라 하였고, 두주(杜註)에 ‘순장(循墻)은 감히 편안히 걷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春秋左氏傳 昭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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