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당분간 ‘외국계 중소주주 연합은행’으로 운영된다.
재정경제부는 12일 정부 보유 국민은행 지분 9.1%(3062만주)를 공개 매각한 결과 국민은행이 대부분을 자사주(自社株)로 인수했으며, 완전 민영화됐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매입한 정부 지분을 앞으로 국내외의 다른 전략적 투자가를 찾아 매각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이 자체 보유한 지분을 모두 국내기관에 매각하지 않는 한 국민은행은 외국계 중소주주 연합은행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은행의 최대주주였던 정부가 완전히 빠지는 대신 전략적 투자가로 3.78% 지분을 쥔 ING그룹(네덜란드계)과 새로운 투자가가 중소 주주로서 김정태 은행장을 견제·지원하는 새로운 지배구조가 형성될 전망이다.
◆ING 주도의 외국계 연합은행
이날 입찰에는 국내 기관투자가 14개, 외국 투자가 6개 등 20개 국내외 기관이 참가했다. 국민은행은 정부 보유 지분의 89%에 해당하는 2742만주(8.15%)를 매입했고, 나머지 1% 지분은 한국투자신탁 등 국내 기관투자자 7곳과 해외투자자 3곳이 나눠 인수했다. 정부는 1조3297억원의 주식매각 수입을 챙겼다.
▲ 12일 저녁 천 룡 재경부 국유재산과장이 여의도 증권협회 12층에서 정부소유 국민은행주식매각 낙찰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관심대상이었던 경영권을 노린 제3의 외국인 투자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당 4만3424원의 낙찰가격으로 9% 지분을 얻으려면 10억달러 이상의 거액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달려들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정부지분 매각으로 국민은행은 당분간 ING 주도의 외국계 연합은행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ING그룹은 정부가 최대주주일 때도 국민은행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골드만삭스가 지분을 1%로 낮춘 상태에서 정부까지 빠졌기 때문에 ING의 영향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사들인 자사주 8%를 새 전략적 투자가에 팔 계획이며, 이 과정에서 새 경영 참여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은행 자사주를 인수할 후보로는 국민은행의 해외 파트너인 싱가포르계 ‘테마섹 홀딩스’ 펀드와 국내 기관투자가 등이 거론된다. 앞으로 국민은행의 지배구조는 ING와 국내외 투자가들이 4~5% 안팎의 지분을 나눠 갖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강화된 김 행장의 장악력
국민은행이 완전 민영화됨으로써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젠 감사원 감사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감독당국의 건전성 감독만 받으면 된다. 또 행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어 은행장 등 경영진 구성에서 정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은행은 이제 경영권을 장악하는 대주주가 없어졌으며, 정부도 경영감시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감시는 시장의 몫만 남게 됐다. 특히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72.36%(11일 현재)에 달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 맞는 경영 행태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현대·SK글로벌·LG카드 사태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정부 주도로 탄생했던 은행권 공동지원 프로그램에 앞으로 국민은행은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ING 등 김정태 행장에 우호적인 주주들만 남게 됨에 따라 김 행장의 경영 장악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금융권은 분석했다.
정부가 보유해온 국민은행 지분(9.1%)을 지난 12일 매각함에 따라 국내 최대의 국민은행이 완전 민영화됐다. 1963년 옛 국민은행 설립 이후 40년 만이다.
국민은행 지분 중 외국인 보유분이 70%를 넘지만 의결권 있는 지분 5% 이상을 소유한 단일 지배주주는 사실상 사라졌다.
뉴욕은행이 명목상 지분 10%를 갖고 있지만 이는 주식예탁증서(ADR)를 단순 예탁하고 있는 것이며, 국민은행의 자사주 9.05%는 의결권이 없다. 단순 최대주주는 캐피털그룹(5.99%)이지만 여러 펀드를 통해 갖고 있는 데다 경영에 간여하지 않는 포트폴리오 투자인 상황이고, 3.78%를 갖고 있는 ING가 단일 주체로는 최대 주주인 셈이다.
금융계에서는 정부가 주주로서 은행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기 힘든 완전 민영 은행이 처음 등장함에 따라 국내 은행산업 풍토에 적잖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옥원 국민은행 홍보팀장은 "시티.HSBC 등 선진 은행처럼 분산된 소유구조를 갖춰 은행 산업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이에 대해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 이익을 최우선하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심화될 수밖에 없으며 은행의 공익적 기능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계에서는 특히 김정태 행장의 영향력이 한층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때문에 金행장의 권한에 대한 견제, 특히 경영 실패 등에 대한 책임을 주주들이 물을 수 있는 장치를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지배구조 실사 결과에서 나온 것처럼 이사회의 견제 기능은 선진적"이라며 "자율권을 확보한 만큼 결과에 더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은행 된 국민은행
국민은행이 외국은행으로 됐다. 그 동안도 국민은행은 경영만 한국인이 할 뿐 외국인 지분이 70%가 넘어 사실상의 외국계 은행이었는데 지난 12일 정부가 보유지분 9.1%를 전량 매각함으로써 제1 대주주의 지위도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우리는 국민은행이 완전 민영화 된 것에 축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은행은 자산규모로 한국 최대를 자랑하는 명실공한 리딩뱅크이다. 국민은행이 외국은행으로 바뀐 것에 대해 반가움 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7개 시중은행 가운데 제일은행 외환은행 한미은행의 경영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이번에 국민은행마저 외국은행이 되었다. 나머지 은행들도 우리금융만 빼고 외국인 지분이 과반 수준이다.
외국자본은 은행 뿐만 아니라 증권 보험분야에도 무차별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잠식을 당하다간 우리의 금융주권이 외국인의 수중으로 몽땅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모주식투자펀드의 활성화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외국자본의 국내금융시장 장악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것은 글로벌 금융시대에서 불가피한 것이고, 외국자본이 한국의 금융산업이나 제조산업에 대한 투자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면도 있다. 선진금융기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도 득이 된다.
그러나 외국자본은 주주이익 중심이기 때문에 손해가 날 상황이면 일시에 투자자본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자본의 대응 여하에 따라 국내적인 작은 위기가 큰 위기로 증폭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외부적인 충격에 매우 취약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내산업 정보가 외국인에게 노출되는 점이다. 은행의 정보는 물론 은행이 갖고 있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외국의 경쟁사에게 노출되는 것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민은행은 정부의 금융정책을 선도할 책무가 있는 은행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외국인 주주들은 국가의 시책보다는 주주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관치금융이 통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필요한 정책의 추진마저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인 경영자가 외국인 대주주의 대리인으로 전락할 우려도 없지 않다. 우리의 금융산업이 외국인 주주와 그들이 속한 나라의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국민은행은 자사주의 재매각을 외국인 견제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계획이나 이마저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해진다. 정부는 언제까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타령만 되풀이 할 것인가. 은행의 주인을 찾아주는 문제를 서둘러 매듭지을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