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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30일 | 예배시간 | 1부 오전 09:00 2부 오전 11:00 | 통권 16 권 18호 |
사회: 이남규 목사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rit and truth.”
(John 4:24)
Pastoral Letter, TEAMS (팀)에서 알립니다. |
- 예배팀: 춘계 대심방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전도팀: 태신자 전도를 위한 모임 매월 마지막째 주 화요일 @ 10:00 a.m. 사무실
매주 금요일 전도 모임에 뜻있는 분들을 초대합니다. @12:00 p.m. 교회 2층 라운지
- 친교팀: 주일예배 후 점심식사 후원(경사일 혹은 헌금)에 동참합시다.
- 남선교회: 개척교회 후원을 위한 겨자씨 선교헌금(매달 $1)에 동참합시다.
“온가족 새벽예배” 매주 토요일 @ 6:00 a.m.
TEAMS’란?
TEAMS’라는 용어는, T (together), E (everyone), A (achieves), M (more), 그리고 S (success)의 합성어로 이해한다. 즉,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면 더 많은 결실을 얻는다는 뜻이다. 우리 교회는 전 성도가 같이 사역하여 대량으로 추수하는 꿈이 있다.
우리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와 기관 |
선교 네팔: 양은용 & 김숙진 선교사
캄보디아: 바티에이 국제대학(김득수 선교사)
교회 예수교미주성결교회 캐나다
서부 지방회
EFCC 교단 LPD(Low Pacific District) 지방회
Recent Visitors |
조미자(오아송 어린이) 성도 이선희 성도
Weekly Ministries |
요일 | 시 간 | 사 역 | 장 소 |
화 | 6:00 a.m. 9:30 a.m. | 새벽 예배 TEE Ⅳ | 교회본당 교회 사무실 |
수 | 6:00 a.m. 10:30 a.m. 11:00 a.m 11:00 a.m 5:45 p.m 7:00 p.m | 새벽 예배 한나목장 룻목장 브리스길라 목장 디모데 목장 TSY(청소년, 아보츠포드) 목장 | 교회 본당 이남규 목사 가정 김정희 집사 가정 전은순 사모 가정 교회 Lounge 이수민 학생 가정 |
목 | 6:00 a.m. 8:00 p.m | 새벽 예배 목요찬양예배 | 교회 본당 교회 본당 |
금 | 6:00 a.m. 10:00 a.m. 12:45 p.m. 6:30 p.m 7:00 p.m | 새벽 예배 목자모임 전도 모임 베드로 목장 바나바 TSY(청소년,랭리) 목장 | 교회 본당 교회 사무실 교회 Lounge 교회 교회 |
토 | 6:00 a.m. 8:30 p.m. | 온가족새벽예배 찬양팀 연습 | 교회 본당 교회 본당 |
일 | 9:00 a.m. 11:00 a.m. 11:30 a.m. 1:30-2:30pm 2:00-3:30pm | 1부 예배 2부 예배 TSC (KG-Gr.6); TSY (Gr7 -Gr.12) The Sent 성가대 연습 TEE V | 교회 본당 교회 본당 교 육 관 교회 본당 교회 사무실 |
Contents Of Sermon
영광스런 무대 (John 12:23-26)
영화 벤허는 지난 20세기 동안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 평가 받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윌리암 와일러(William Wyler, 1902-1981) 감독인데, 시사회 (cinema preview)에서 영화를 관람한 다음에 “오, 하나님,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니요.!”라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벤허(Ben-Hur)”의 주인공은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입니다. 이분이 밴허에서 15분 마차를 타기 위해 4개월간 승마를 배우고 말타기 연습을 했답니다. 승마를 배우는 동안 그는 마차에서 몇 번이나 떨어져, 피도 흘릴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도 했답니다. 4개월의 연습을 끝마친 후에 드디어 마차를 끌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의문이 드는 것은, 마차를 배운 자신이 경주에서 목적지까지 승리로 달려 갈 수 있느냐였습니다. 그래서 감독에게 이렇게 질문했답니다. “이제 나는 마차는 탈 수 있지만 경주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때 밴허의 감독인, 윌리엄 와일러 (William Wyler)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찰톤, 당신은 단지 경기를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감독인 내가 당신이 이기도록 해 줄 겁니다.” 신앙생활이란 영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감독이시고, 온 세상은 무대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극 배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연기자는 감독이 지시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가장 위대한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만들어 놓으시고, 지시하는 Drama 속에서 우리가 맡은 연기만 하면 훌륭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찰톤 헤스톤이 말에서 떨어져 피 흘리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각본에 따라 연기해서 명화를 창조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연극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고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광스런 미래를 위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고난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아프게 하지만, 시간이 지난 내일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축복의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감독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조정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광의 무대 (Glorious Stage)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죽으면 삽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을 앞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수난을 “인자의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고 말씀합니다(요 12:23). 그리고 이 수난과 영광이 어떤 관계인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마치 한 알의 씨앗이 땅이라는 무대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전하는 핵심 메시지은, 죽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것입니다. 썩어져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을 얻는 삶이 주요 내용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한 알의 밀알로 비유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을 때 많은 열매가 맺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알 밀알을 생각해 봅니다. 크지 않고 작습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집니다. 위에 있지 않고 낮은 곳으로 내려 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땅 속에 들어갑니다. 컴컴한 땅속에 들어 갔을 때,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심지어 자신을 해체 해야 합니다. 완전히 죽습니다. 땅의 흙과 동화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체가 솟아 오릅니다. 이제서야 사람들의 시야에 다시 떠 오릅니다. 성장합니다. 꽃이 핍니다. 열매를 맺기까지 합니다. 한 일이었던 씨가, 이제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원리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땅에 떨어지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땅속에 묻히셨습니다. 사람들의 안목으로, 예수님은 실패자였습니다. 죽어 땅속에 들어가는 예수님의 삶을 보며, 사람들은 승리자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패러독스입니다. 내가 죽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하셨던 역할은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사역입니다. 우리가 죽습니다. 그러면 열매가 있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나의 계획, 나의 감정, 나의 의견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죽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나를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나를 지배하도록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반드시 나타나실 줄 믿습니다.
잃으면 얻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지면 한 알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는데,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이 말씀이 전하는 Key Point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사랑하면 안된다. 대신 자기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얻는 것”이 핵심 메시지 입니다. 한 알의 밀알 비유에서도, 밀알이 죽는 것이 핵심 메시지가 아니고, 죽음으로 많은 결실을 얻는 것이 Main Point였던 것처럼,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얻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사실은 생명이라는 단어 사용에서 발견됩니다. 25절에는 “생명”을 표시하는 두 개의 다른 헬라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에서 “생명”과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에서의 “생명”은 같은 단어, “푸시케(yuch.n)”입니다. “푸시케”란 이 세상에서의 꿈과 목표 그리고 육신의 욕망과 관계된 생명으로 우리 몸의 일부로,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다”에서 “영생”은 헬라어 “조에”(zwh.n)인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에”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채워지는 생명입니다. 본문 25절과 평행되는 마가복음 8:25절은 조에 생명, 즉 하나님께서 풍성케 채워 주시는 생명을 얻는 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푸시케)를 내려 놓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내 것을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결국 풍성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십자가로 가셨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분의 인생을 실패였고 끝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고,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입술로 그분을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기하시므로, 자신을 세우셨습니다. 자기를 부정하심으로 긍정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는 것은, 자신을 증오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얻고 풍성이 얻기 위해 복음과 예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영광의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을 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Anyone who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follow me!” 예수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그것이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내 욕망과 내 계획을 내려 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 사람도 “나 있는 곳에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My servants must be where I am. 예수님을 영광의 자리에 높이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영광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 수 많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지 않는 밀알이 아니라, 죽어지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많은 열매 맺는 삶으로 초청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영광스런 무대가 되십시다. 이남규 목사 (Ph.D.).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Let all that you do be done in love.”(고전 16:14)
Announcement “Welcome new comers to our church.” |
전도는 우리의 행복입니다. 전도, 할 수 있다! 전도, 하면 된다! 전도, 해 봅시다!
전도하면 내가 살고, 교회 살고, 이웃 살고, 나라 살고, 세계가 산다! ☜
“은혜 받기 위해, 예배 시간 15 분 전에 교회 와서 마음과 기도로 예배를 준비합시다.”
성도 동정 |
몸이 아픈 교회 식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고국방문: 이우기 집사 정수연 집사 박혜숙 권사
출타: 고안순 권사
Coming Events |
4월 30일: 멤버십 교육 (Ⅱ) @ 1:00 p.m. 성찬식
5월 01일: 모세팀 봄나들이(오찬) @ 10 a.m. Derby Park
5월 07일: 멤버십 환영회 어버이날 행사
5월 10일, 17일: 목장 모임 없음
5월 24일: 연합 목장 모임 @ 11 a.m. Derby Park
TSC, The Sent Children |
2017 학년도 교사 : ☞☺ 권희정 김요한 김희숙 양정숙 이동연 이혜영 주향신(가나다 순)
특별활동: 매 주일 예배 후(1:30-2:30 p.m.) Knitting
TSY, The Sent Youth |
정기모임: 매 주일 오전 11:00 예배 (2층 예배당)
매주 수요일 저녁 7:00-8:30 (아보츠포드)
매주 금요일 저녁 7:00 – 8:30 (2층 라운지)
목자모임: 매 주일 오후 1:30-2:30 (2층 라운지)
TNT, Young Adult |
정기모임 : 매 주일 오전 11:00 예배( 2층 예배당 )
베드로 목장모임 : 매주 금요일 오후 / 토요일 오전 11시 ( 교회 )
알림 : 교회주변청소 – 매월 둘째, 넷째 주일
주방정리 – 매월 셋째 주일
Finances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 6:20) |
십일조: 김찬중(이동연) 강수진(김승모) 김정희
성정순 양서윤 이준호(김희숙) 임종열
선교헌금: 박규현(송명순) 이겨레 일천번제: 박규현(송명순) 건축헌금: 박규현(송명순)
감사헌금: 이남규(권희정) 강수진(김승모) 김유일(이혜영) 박성희(양지수/양무한) 이나라 이주환(이귀자) 정은진 정진원 펠로우십헌금: 김서연 소원헌금: 이승환(양정숙)
주정헌금: 이남규(권희정) 김요한(주향신) 김찬중(이동연) 김경애 김민채 김서연 김숙연(이수민) 김예림 김예서 김예윤 김진영/김주영 김환희/김단희 문병준 박선영 박주현 박지훈 백남재(김화연) 신상민 윤혜영(송성재) 이겨레 이선희 이주환(이귀자) 이현옥 임영미(이동훈) 장재영 전대진(최영원) 전은순 정은진 정진원 무명 10명
우리 교회는 예수교 대한 성결교단의 미주 총회에 소속된 교회입니다. 성결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중생하며, 성령 세례로 성결한 삶을 살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체의 질병이 고쳐지는 신유를 믿고,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캐나다의 복음적 자유 교단인 Evangelical Free Church of Canada(EFCC)에 속해 있습니다. 복음적 자유 교단은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절대 권위를 가지며, 교단이나 당회에 의해 지역 교회가 통제 받는 것이 아니고(Free from human organization), 교회의 운영은 개 교회의 자율에 따르며, 그리고 의사결정은 교회 멤버들의 동의로확정됩니다. 이 교단의 대표 교육 기관으로는 캐나다의Trinity Western University와 미국의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이 있습니다
교회주소: 5673 200 St.Langley, B.C. V3A 1M7
교회전화: 604-530-5912 604-825-8864 Facebook: thechurchofthesent 교회카페: www.thesent.kr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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