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백운봉 설산 산행기
토요일 저녁 등반대장이 이번엔 경기도 용문산 백운봉(白雲峰 940m)이며,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간다고 전갈이 왔다.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여행이고, 1년에 적어도 두 번은 다니는 단골 명산이라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배낭을 챙겼다. 그러나 아이젠과 스패츠를 작년 겨울에 어디다 보관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8시 30분에 부지런히 역으로 달렸다.
영하의 매서운 겨울한파에 손과 발이 시린 아침이다. 마침 역전 우동집 앞을 지나는데, 일행 한 분이 보였다. 옳다! 잘 되었다 생각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서 함께 뜨거운 우동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2층 대합실로 올라갔다. 9시 10분이 지나는데도 일행 중 두 분만 와서 확인 전화하기 바쁘다. 총무는 9시 35분발 새마을호 6장을 미리 사놓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 패로 갈려서 한 패는 역 광장으로 내려가 누가 오는가 기다리고, 한 패는 미리 개찰을 하고 들어갔다. 금곡에서 오는 팀이 늦어 마구 뛰어 출발 3분전에 겨우 4호 열차에 자리를 잡았다. 휴---. 아침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치다가 이제 조금 조용해진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에 아침부터 춤을 추며 뛴다
정말 오랜만의 기차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급열차--새마을호--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달린다. 차창 밖은 하얀 눈으로 온통 은빛세상이 펼쳐지고, 모두들 금방 어린애로 돌아가 떠들고, 웃고, 장난치고, 농담하고 하다가 1시간이 다 흘러갔다. 기차는 팔당역을 지나 아신역, 신원역을 거쳐 첫 번째 정류장인 양평역에 내려준다. 플랫홈에도 얼음이 얼어 미끄럽다.
오늘은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가 심상치 않은 날이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새수골로 직행, 눈과 얼음이 깔린 양평--홍천간 산업도로를 질주해 염광여고 생활관이 있는 병산3리에서 하차했다. 눈발이 더욱 거세게 내린다. 각자 준비한 스패츠와 아이젠을 차고 출발, 우측으로 능선 코스에 붙었다. 시간은 아침 10시 20분이다. 오늘은 단단한 각오를 하고 백운봉에 붙어야 한다. 여러 번 백운봉을 종주했기 때문에 길은알고 있지만, 겨울 설산산행은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만용을 부려선 안 된다고 이르고 천천히 여유 있게 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게 그런가? 제각각 먼저 가려고 경주하듯이 첫 번째 봉인 두리봉(백송봉)까지는 쉬지도 않고 달린다. 어휴--- 힘들어... 나는 좀 쉬었다가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워낙 산을 잘 타고 좋아하는 산악인이라서 그렇다. 백송봉(栢松峯)과 헬기장에서 기념사진이나 銓� 가자고 해도 쉴 사이 없이 달린다.
나는 사진기를 꺼내서 눈꽃사진을 찍겠다고 시간을 지체하고---다시 뛰어 뒤따라가고 하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며 따라갔다. 한참 내려가니 출발지점에서 계곡길로 오르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가 나왔다. 안내표지목이 새수골 2.1k, 두리봉 1.3k, 백운봉1.1k 라고 안내한다. 11시50분이다. 벌써 3분의 2나 왔으니 많이도 달려온 것이다. 이제 시간이 충분하다.
얼굴과 머리에서 땀이 많이 흘러 앞이 잘 안 보인다. 이럴 때는 안경도 아주 귀찮은 존재다 벗어서 주머니에 넣고 마지막 도전에 대비한다. 지금부터 백운봉의 끝내주는 코스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큰 바위가 직립하여 앞을 가로 막았다. 좌측으로 돌아 미끄러운 철제 사다리를 한발씩 오르고 바위틈은 엎드려서 기기도 하며 오른다.
이제 눈발이 더욱 세차지고 주위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산으로 변했다. 나뭇가지는 눈이 얼어붙어 상고대가 연출되고, 소나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하얀 솜을 덮어쓰고 있었다.
얼음꽃 상고대가 달린 나뭇가지들에 취하며
와---정말로 백운봉 설경이 끝내준다. 일행은 이제 제 정신이 드는지 입을 열었다.
' 누가 이런 구경 해보고 죽은 사람 있어!'
' 야--- 여기서 그냥 드러눕고 싶다!'
' 그래-- 넌 여기서 내려 가지마! 히히히...'
' 추워서 얼어죽으면 네가 책임이야!'
지금부터는 정말 한발 한발 정성 들여 가야한다. 나는 아이젠을 안 가져와서 일행이 가져온 아이젠을 빌려 오른발 한 쪽을 차고 올랐다. 벌써 정상을 갔다가 내려오는 등산객이 내려온다. 날은 춥고 낮이 밤처럼 어두워지고 마음은 급하다. 안간힘을 다해 낑낑거리며 오르기 30여분만에 정상에 닿았다.
백두산 통일탑을 만지니 정각 1시였다. 새수골 출발 2시간30분만이다. 이 백두산 돌은 이곳 양평 군민과 중국 연길 동포가 협력해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염원으로 막대한 돈을 들여 옮겨다 세운 탑이다. 전망대는 먼저 올라온 다른 팀들이 차지하고 마땅히 식사를 할 곳이 없었다. 그만큼 이 정상은 좁고, 가파른 절벽 위에 옹립된 백운봉(흰 구름 위에 걸린 봉)이다. 우리는 사나사 절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서 바람이 없는 곳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옆에 올라온 다른 팀이 묻는다.
' 여기서 반대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요?'
' 네. 물론 있습니다. 어디로 가시려는데요?'
' 네... 연수골에서 왔는데 사나사 절로 갈려고요.'
' 그래요? 그러면 저희들이 그 쪽으로 갑니다. 그런데 좀 위험한 길이라서 괜찮을지요?'
' 아--- 그럼 저희도 따라 가렵니다...'
이래서 그들은 우리의 뒤를 따라 반대편으로 내려섰다. 이곳은 평소에도 매우 가파른 바위지대로 위험한 구간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들은 우리 뒤를 밟았고 우리는 '조심, 밧줄지대! ' ' 잠시 스톱---스톱---' 하면서 앞에서 리드했다. 눈이 수북히 쌓여 바위인줄 알고 밟으면 발이 쑥 미끄러진다. 30여분 위험한 밧줄구간을 통과하니, 제법 기다란 수평능선이 나와서 우리 일행은 이 곳에서 중식을 하기로 했다. 뒤따르던 분들에게는 미안하다며, 코스를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 조심해서 가세요!'
한발 한발 밧줄을 잡고 조심해가며 서로 격려하고
이제 가장 즐거운 중식시간----. ' 여기다 깔아요...' 일행은 최사장이 늘 갖고 다니는 커다란 비료부대를 돗자리 대신 깔고 맛있는 삶은 돼지고기를 안주로 한순배 씩 막걸리를 돌렸다. 금방 추위가 가시고, 얼굴에는 홍조가 보인다. 눈이 벌겋게 되어 주거니 받거니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다들 배가 고파 실컷 먹은 마신 후에 몸이 무거워서 못 가겠느니, 좀 더 쉬었다 가자느니, 하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해야 한다.
주위의 나뭇가지는 은세계에 온 듯 하고 머리와 모자 눈썹에 눈과 고드름이 얼어 볼만하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고, 배꼽을 잡다가 출발했다. 벌써 오후 2시 정각이다. 눈길은 하산 시에 위험한 구간이 많다. 서로 서로 조심을 당부하며 한사람이 내려서면 다음-- 이렇게 교대로 하산한다.
20여분 후에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사나사 방향으로 내려섰다. 직진하면 함왕봉을 거쳐서 장군봉,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다. 무조건 하산해야 한다. 날은 더욱 어두워지며 함박눈이 쌓였다. 아직은 정상에 가까운 고지대라서 밧줄이 좌우로 걸쳐진 급경사 길을 내려선다.
' 쿵--- 아이쿠!' 앞에 가던 선두가 한바탕 뒹구는 소리가 들린다.
' 어디 안 다쳤어요? 괜찮아요?'
눈덩이가 된 엉덩이를 털어 주며 걱정하지만, 또 다시 쿵--- 소리가 난다. 연달아 미끄러지고, 뒹굴고 야단이다. 나는 맨 뒤에서 앞에 간 일행의 발자국을 보고 조심조심 뒤따라갔다. 제일 산을 잘 타는 회장님도 다섯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 어이---오늘은 이상하네....' 하면서 ' 아--- 신발이 너무 오래 되어서 그런가 봐!' ' 어디 한번 바닥을 봅시다.' 등산화 바닥을 뒤집어 보니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다 달아서 신발 자국이 안 날 정도다. ' 이제, 소주 같은 거 많이 사오지 말고 좋은 신발이나 사세요!'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아름다운 한국의 겨울 산하여! 다시 보자
길고 긴 너덜지대 ---다래터널을 통과하며 계곡의 냇물을 4번이나 건너고 건너 1시간여의 사투 끝에 사나사 절 뒤편에 닿았다. 아--- 멀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다녀온 봉우리를 돌아보니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었다.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건 눈 속에 담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의 산행이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를 다시 보는 듯 가슴 뿌듯하고 흐뭇한 하루였음을 말해준다.
조계종 사나사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변함 없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경내와 언제나 조용한 산사다. 수백년 된 소나무가 지난 여름 매미 태풍에 쓰러졌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나무로 받쳐 제 모양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대웅전을 돌아보고 인근 주차장 화장실에 들린 후 다시 일주문을 거쳐 부지런히 내려갔다. 함씨의 탄생 설화가 있는 얼음물 속의 함왕굴을 뒤로하고 '애니타임' 카페까지 내려가니 콜택시가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아신' 간이역에서 청량리행 마지막 열차를 타고 훈훈한 산악인의 정을 느끼며 네온사인 불빛이 찬연한 서울의 거리로 돌아와 동서남북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2004.1.18 밤 일죽 김양래
▣ san001 - 정말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추운날 고생이 많으셨네요. 저도 예전에 백운봉에서 눈 때문에 고생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군요. 잘 보았습니다. ▣ 산초스 - 항상 설레이는 백운봉의 멋진 모습이 그려집니다. 함왕골-장군봉-백운봉-성두봉-사나사로 곧 다녀와야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김양래 - 두 분 감사합니다. 제가 다녀온 곳을 같이 즐기니....ㅎㅎㅎ ▣ 고석수 - 산정에서 드시는 막걸리와 돼지고기! 와~ 맛있었겠다^^^ 좀 나눠주시지^^ㅎㅎ 건강하세요~~ ▣ 김양래 - 고수님... 건강하세요....언제 만나 이렇게 조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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