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1-13> 너희 마음을 넗히라
1. 말씀배경
어느 날 밤에 기도하는데, 성령께서는 제게 “마음을 넓히라”라는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가슴을 치며 내 마음을 주님의 마음같이 넓혀달라고 기도하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좁은 마음을 가진 고린도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릇이 너무 적습니다. 세상 말로 “좀스럽다, 옹졸하다, 속이 좁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재기 같은 마음입니다. 밴댕이처럼 속이 좁은 것입니다.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꾼입니다.
사람도 품지 못하고, 주변 환경과도 어울리지 못합니다.
▶ 우리 주님은 넓은 마음으로 인류를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니까 모든 피조물들도 품고 운행하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고,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24)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니까 그렇겠지,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다 넓어질 수 있습니다.
▶ 일곱집사 중 하나인 스데반도 그가 돌에 맞자 죽으면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넓은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졌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주의 영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행 6:5,8,10).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들 때에 이렇게 다들 좁게 만드셨을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크신 하나님과 교통해야 하고, 모든 동식물을 다스려야 하는데 (창 1:28) 종재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다면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원래 인간의 마음을 좁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아담은 모든 동식물을 품고 그들의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창 2:19)
지혜를 가지고 차별없이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가 지어준 이름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이름이 된 것입니다.
너는 코가 기니가 코끼리 해라, 너는 멍멍 짓으니까 개 해라 등
그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사탄이 죄를 짓게 하여 움츠리게 만들고 속을 좁게 만든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마음을 좁게 만듭니다. 두렵게 만듭니다. 숨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3:8)
그들은 에덴동산을 다 품고 누렸는데 죄를 지은 후 갑자기 작은 나무 사이에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제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작아진 것입니다. 두려움에 가득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죄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야 원래 창조하신 넓은 마음을 갖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다른 사람들과 피조물들을 품으면서 더불어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성경은 우리들을 “그릇”에 많이 비유하고 있습니다 (행 9:15,롬 9:21,24, 고후 4:7)
금 그릇, 은 그릇도 있겠고, 깨끗한 그릇, 더러운 그릇도 있겠지만 또한 큰 그릇, 작은 그릇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이 되느냐는 토기장이되신 하나님의 주권이 절대적이지만,
죄로 인하여 작아진 나를 회복하는 것이 큰 그릇 만드는 길입니다.
▶ 이 넓은 그릇의 마음은 어느 하나의 속성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인품, 속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성령의 열매로 말입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인내만 있다고 큰 그릇이 아니고 인내도, 사랑도, 온유도, 겸손도, 자비도, 충성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함께 어울어져야 큰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넓은 보자기가 여러 개의 실이 가로 세로 엮여져 넓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이 넓은 자들은 그의 내적인 성품도 다양한 좋은 속성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로인한 외적인 삶의 모습도 좋은 열매들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의 내적인 모습과 외적인 모습을 통해서 그의 넓은 마음, 넓은 그릇됨을 볼 수 있습니다.
2. 고린도교인들의 좁은 마음이 넓혀지기를 바라는 바울의 마음
고린도교회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바울이 일년 육개월 간 머물면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행 18:11).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갈라디아교회처럼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갈 1:6, 고후 11:4, ), 육신을 자랑하기도 하고 (고후 5:6, 11:18), 특히 바울의 사도권마저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바울이 받은 헌금에 대해서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이득 취하였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12:16)
바울은 하나님과 동역하면서 오직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들은 인간적인 좁은 눈으로, 좁은 마음으로 바울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오늘 말씀도 큰 틀에서 보면 바울이 사도권에 대한 변명입니다.
고후 3 :11절에서는 “내가 사도라고 너희들에게 자천해야 하겠느냐? 다른 사람들의 추천서를 너희에게 주어야 하겠느냐?(고후 3ㅣ1)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그가 많은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를 통해서 애절한 마음으로 변호하고 있으며, 마음을 좀 넓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9:2절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틀에서 보아야 합니다.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통 큰 사람이 대체로 큰 일을 합니다.
투자를 해도 그의 그릇 만큼 하는 것입니다.
100원을 깍기 위해서 하루 종일 보내는 사람은 그 그릇만큼 일할 것입니다.
세상의 일도 이러한데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크게 해야 합니다. 영적인 꿈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지 말고 빵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듣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시편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저는 요사이 너무 크게 벌려서 이것이 성령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분별하고 있습니다.
열방을 품으려면 그릇이 커야 합니다. 그레야 바울처럼 아시아, 유럽을 거침없이 다니지 않을까요?
훈련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넓힐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가난의 영을 끊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넓히는 것은 먼저는 죄 사함이요, 성령의 열매이지만, 그와 함께 기도와 더불어 훈련도 필요한 것입니다.
자꾸만 넓은 마음쪽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느 새 자기가 큰 그릇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복은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큰 그릇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다 내어놓았으니까요. 목숨을 거는 자가 큰 그릇입니다.
사업에 있어서도 죽기를 각오하는데 100억을 투자하지 못합니까?
이런 바울을 쳐다보는 고린도교인 일부는 마음이 좁아져 있어 바울의 사역에 협력은 하지 않고 자꾸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3. 그가 하나님의 사도됨을 나타내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1) 그의 사도됨은 외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서도 인정됩니다.
그가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환란과 궁핍과 고난 속에서 견디며 이겨낸 것입니다.
이런 시련과 환란 속에서 포기하면 영적으로 작은 자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본다면,
① 매를 맞았습니다.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신 25:3)
② 갇혔습니다.
빕립보 감옥부터 로마 감옥까지 여러번 갇혔습니다. 갇혔어도 여러교회에 편지를 보냄으로 그들을 보살폈습니다. 그것이 옥중서신이라고 하는 성경입니다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③ 난동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소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의 소요가 대표적입니다.
[사도행전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④ 수고로움을 겪었습니다.
피곤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⑤ 자지 못했습니다.
⑥ 먹지 못했습니다.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런 상황속에서 그가 작은 그릇이었다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2) 그리고 그가 사도됨의 모습이 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사도됨의 내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① 깨끗함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거룩함입니다.
② 지식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복음에 관한 지식입니다.
③ 오래 참았습니다. - 성령의 열매
④ 자비함이 있습니다. - 성령의 열매
⑤ 성령의 감화가 있습니다.
⑥ 거짓이 없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 성령의 열매
⑦ 진리의 말씀을 가졌습니다.
⑧ 하나님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 죄우에 가진 의의 무기 :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바울는 자신의 사도됨에 대한 내적, 외적인 표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3) 사도바울이 외적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약하게 보이고 무명한 자와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다른 것입니다.
속이 좁게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평가하지 마세요.
고린도교인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를 한번 보세요
(고후6: 8-10).
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고
②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고
③ 속이는 자와 같으나 참되고
④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⑤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고
⑥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⑦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⑧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⑨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너희들에게나 세상적으로는 이런 평가를 받아도 하나님에게서는 바울이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이런 삶을 살았는데 이래도 사도가 아니라고 할 것이냐?
제발 너희 마음좀 넓혀라
고린도교인들이여! 하면서 자녀들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부탁합니다.
우리들이 너희들을 향하여 입을 열어 모든 것을 다 말했고, 그리고 우리들이 다 용서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넓혀졌으니 너희들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제 마음좀 넓히라는 것입니다.
<맺는 말>
좁은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시야를 넓게 열고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깊게 넓게 높게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무 뒤에서 숨어서 움추려서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뜻을 두고 의사를 결정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작은 지엽적인 것에 묶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이 넓혀지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넓힌 만큼 주의 큰 일을 합니다. 더 큰 축복의 보자기가 준비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