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청풍명월 전국시조백일장 일반부 장원
다시, 봄/ 김동희(포항시)
지나간 시간은 우리를 생략했다
천천히 왔다가는 불현듯 사라지고
꽃다지 저 혼자 피어 그때를 기억할까
햇살이 나무 위로 무심히 쓰러진다
한걸음 또 한걸음 꽃잎이 지고 있다
한시절 다시 보는 너, 그림자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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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김선호
꽃등심에 제철 음식
갖은 보약 다 먹고도
저승 문턱 넘나들며 정밀 진단 받아보니
한 번도 좋은 마음은 먹은 적이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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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치다/ 김동엽
죽향에
취한 달빛
날 새는 줄 모르고
삼동 잊은
댓잎은
엄동인 줄 모르고
푸르고
곧은 마음에
비워버린 탐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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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시계/ 김명선
개나리로 피었다가
장미로도 피었다가
서릿발 뺨 맞으며 구절초로도 피었지요
철 따라 계절을 돌며
피고 지던 나날들
늦가을 잎 떨군 나목
발가벗고 서 있어도
얼음 속 노란 복수초 이제야 알겠습니다
사는 일 한 생이 꽃시계
돌고 도는 꽃날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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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매질/ 김재선
불같이 화를 내는 뜻밖에 큰 목소리
용서를 빌기 전에 눈물이 먼저 나는
빗자루 회초리 맞는 방바닥 죄 아닌데
늘 내 편 엄마가 오늘따라 왜 저래
종아리 아려오는 아픔은 별 게 아냐
밀어내 나를 밀어 내 그 마음이 더 아파
바지 당겨 올리고 회초리 기다릴 제
빗자루 헛매질에 가슴만 졸였었지
속울음 꼴깍 삼키시던 그 마음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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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침묵 속에는/ 나순옥
단 한 번도 예쁘다고
뽐내본 적 없거니와
봐 달라 눈길 잡고
늘어져본 적도 없었다
내 삶을 힘껏 살았고
지는 모습도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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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걸으세요/ 노영임
앞으로
꽃길만 걸어서 가세요!
고개 중턱쯤 올라
숨 고르며 뒤돌아보니
오히려
지나온 길이
어여쁜 꽃길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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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노래/ 박금자
신세 한탄 콧노래로
대신했던 어머니
힘겹게 일궜지만
팔아야 했던 밭뙈기
마음껏
울지도 못해
속울음만 삼키시던
어둑어둑 고갯마루
아쉬움 번져 가면
또 다시 흥얼흥얼
낮게 퍼진 콧노래
세월을
되돌린다 해도
그러셨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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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과 어머니/ 서정교
해진 것만 깁는 게 바느질이 아니길
까막눈의 울 어머니 한평생 소원이셨지
바늘귀
지나간 자리
새 살 돋아 아무는 세상
돋보기 걸쳐야만 실오라기 넣으셨지
닳아 없어진 지문이 자서전인 어머니
박음질
실핏줄 이어
피돌기를 꿈꾸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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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랑대/ 윤현자
하루는 사랑을 걸고
또 하루는 미움을 걸고
어느 한쪽 기울지 않게
떠받치기 어려웠을
갈물 든
마음 한 구석
장승으로 서있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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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 이명식
무논에 개구리밥 고봉으로 차려놓고
적막한 이 한밤에 바람마저 저무는데
어디서 개구리 울음
창문을 비집더라.
이 밤에 이는 감흥 서울 사는 누님 생각
참가죽 한 줌 꺾어 택배로 보내고자
어쩌다 놓치고 그만
바싹 세고 말았네.
봄날은 다 익어서 서둘러 보리 베기
껄끄러운 보리까락 내 가슴 휘저어도
밤하늘 뻐꾸기 울음
그 누굴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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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파일/ 장은수
지상을 날고 싶어 단애에 앉은 새
남섬의 꼭짓점에 뿌리박힌 만년설을
산맥을 휘감아 돌며 혼자서 견뎌낸다
할 말을 꾹 참고서 무던히도 참아내며
허리춤을 훔켜쥐고 폭설을 참아내도
어둠 속 빙하의 길이 지상으로 치닫는 밤
정수리를 짓누르며 한평생 벼린 언어
호수에 빠진 달덩이 몸을 씻어 훤해질 때
계곡을 울리는 소리, 생명이 깨어난다
부서진 삶의 조각이 파일을 다독이며
눈사람 서 있듯이 곱은 손이 시려오면
하늘가 햇살 한 줌이 압축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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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하나에 입이 둘인 세상/ 정현경
듣는 귀 하나 떼 내고
말하는 입 하나 덧붙여
나 홀로 방송사
크리에이터 세상에
앞으론 입 둘 달린 얼굴
개나리처럼 피어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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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투어(間投語) 일상/ 정형석
이래도 애매하고 저래도 모호하다
뭐가 뭔지 딱 부러지게 한 모춤 잡히지 않을 때
에 하며
얼버무리는 널브러진 일상이다
이럴까 저럴까 도무지만 연발되고
이것이 정답 같고 저것도 정답 같아
음 하고
늘어뜨려도 종내 갈피 잡을 수 없다
독한 겨울 보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물쩍 오는 봄이 여름 지나 가을 들어
아 하며
하늘을 보는 일상이 잦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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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폭포/ 조경순
절간의 종소리도
산비탈에 내던지고
솔숲에 묻혀 앉아
선승 된 줄 알았는데
황급히
치마를 쓰고
뛰어내린 천 길 벼랑
우레 같은 물소리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
강보에 쌓인 울음
찾아가는 동자승
구만리
아득한 물길
떠나가는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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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 결, 닻, 돛/ 하연심
삼겹살의 겹이요
비단결의 결입니다.
닻 들어라 닻이며
돛 달아라 돛이지요.
이 시는 티저(teaser)입니다.
벌써부터 저 설레요.
최소한 각각 제목
네(4) 수는 오래 묵혔습니다.
(겹, 결) (닻, 돛)으로
두(2) 수도 거뜬해요
최대는 부분집합 2ⁿ 수
기대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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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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