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별똥별이다 밤이 여기 저기 웅크리면 어둠의 내장을 가르며 가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들 들을 것이다 한 여자의 밤하늘을 밝히려 살과 뼈가 타는 힘으로 발화점에 이르러 모든 경계를 가로질러 아득한 곳으로 사라지는 남자는 다 별똥별이다 고가도로를 스쳐 머무르고 싶은 골목도 지나쳐 한번 밟아버림으로써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세월에 올라타 여자의 깊은 속으로 저물어 가는 남자는 다 별똥별이다
밤이면 여기저기 블랙홀로 열린 여자가 아니더라도 한번 불렀으므로 영영 잊을 수 없는 여자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는 다 별똥별이다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이다 여자의 하늘 이편에서 저편으로 수놓으며 사라지는 캄캄한 날을 태우다 사라지는 세상의 모든 남자는 다 별똥별이다
내가 한낮 속으로 걸어갈 때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양말을 빨래하는 여자 내 런닝구를 빨래하는 여자 내 팬티를 빨래하는 여자 빨래하다 하얗게 빨래되어 가는 여자 비누거품 하얗게 일어나는 여자
인사동 골목을 돌아갈 때 인사동 골목을 돌아 내 안으로 들어온 여자 내 시를 읽어주는 여자 내 운세를 읽어주는 여자 내 발자국을 읽어주는 여자 내 상처를 읽어주는 여자 내 상처 위에 눈물 떨구는 여자 내 상처 위에 스킨다비스 줄기 뻗어가게 하는 여자 나를 읽다 나에게 한 줄 두 줄 읽혀지는 여자 내 쓸쓸함에 밑줄 그어주는 여자
내가 저물어갈 때 내 안으로 저물어 온 여자 내 독을 대신 마셔주는 여자 내 안의 고통을 쓸고 닦아주는 여자 내 안으로 별을 불러준 여자 내 안에 환풍기를 돌려주는 여자 내 안의 앙금으로 수제비 뜨는 여자 내가 미칠 때 함께 미쳐 지금은 방언하는 여자 울루루 빵까 빵까 콩멩 텡텡 윙윙 밍 탕 밍 탕 방언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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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1957년 포항출생. 1988년 공주교대 졸업. 아주대학원졸업. 1992년 대구 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슬픔도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