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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을 세움
천 영 대
성경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창세기 28:10∼19)」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디모데전서 3:1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베드로전서 2:4,5)」
하나님의 집의 다른 명칭들
우리가 집이라고 할 때는 사람이 기거하고 머무는 곳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거하시고 계시는 곳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거하는 집도 아파트, 주택, 오피스텔, 빌라 등의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부르듯이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창세기 28장 18, 19절에서는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벧엘’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다. 히브리서 3장 6절에서는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하나님의 집을 교회로 말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 모든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다. 그런데,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하고 있다. 교회가 하나님과 관계가 될 때는 하나님의 집으로 말해지고, 그리스도와 관계가 될 때에는 그의 몸으로 말해진다. 고린도전서 3장 9절, 히브리서 3장 6절에서는 다 같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1장 22, 23절에서는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2장 20∼23절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해 성전과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라고 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집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데는 그에 대한 이유나, 목적이 있다.
교회의 산출
하나님의 집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산출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고 주 예수님께서 고귀한 생명의 값을 지불함으로 이뤄졌다.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뤄졌다. 창세기 2장 18∼23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고 했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에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아담은 예수님을, 여자는 교회를 예표한다. 아담이 잠들었다는 것은 아담이 죽은 것을 나타낸다. 요한복음 11장 11∼13절에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께서 나사로가 죽은 것을 두고 잠을 잔다고 했다. 이처럼 주님의 예표인 아담이 잠이 들었다는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담이 잠이 들므로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여자, 곧 교회가 산출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에베소서 5장 24, 25절에서는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로 말하고 있다. 아담과 여자의 관계에서 보듯이 아내가 되는 교회는 남편이 되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31, 32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이 이스라엘의 남편이라고 했다. 주님이 그가 택한 백성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주님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에서도 주님과 그가 택한 이스라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주님을 믿고 거듭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약혼한 여자로 말하고 있다. 교회는 다른 자들로 이뤄지지 않고 여자 혹은 아내로 말해지는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한 알의 밀알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많은 밀알, 곧 하나님의 자녀들, 주 예수님의 형제들이 태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이라고도 했는데(엡 2:19),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 곧 가족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께로 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이며, 하나님의 집인 것이다.
하나님의 집의 구성
하나님의 집을 말할 때는 건축물 자체와 그 안에 거하는 내용물 혹은 인격체를 함께하여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이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말할 때는 두 가지를 분리해서 말하지 않고 함께하여 말한다. 우리가 어떤 건축물을 말할 때는 그 건물을 지은 재료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세울 때도 필요로 하는 재료들이 있다. 고린도전서 3장 10∼12절에서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건축을 하는 자들인데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건축하면 주님께서 불로 시험할 때에 불타지 않고 남음으로 상을 받는다고 했고, 돌이나 나무나 짚으로 건축함으로 불에 타게 되면 해를 받게 된다고 했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기초이신 그리스도 위에 하나님 본성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로 변화된 것들, 곧 주님과 주님께 속한 것들로 건축하면 그러한 것들이 다 주님께 인정이 됨으로 상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집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건축된다. 실제로 보석은 흙이 돌로 변하고, 또 돌이 변화된 것이다. 요한복음 1장 42절에서는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동생 안드레가 데리고 온 시몬에 대하여 장차 베드로라고 할 것이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반석 혹은 돌이라는 뜻이다. 돌은 건축의 재료가 된다. 실로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돌이 되어 그의 건축의 한 요소가 되었다. 베드로전서 2장 1∼5절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이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여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른다고 했다. 이 내용에서의 구원은 영의 구원이 아니고 영혼의 구원을 말한다. 이렇게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될 때에 산돌로서 하나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하나님의 신령한 집은 세상에 있는 집처럼 생명 없는 건물이 아니고 살아 있는 돌로 세워지는 살아있는 신령한 집이다. 장차 베드로 곧 돌로 변화될 것이란 주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 그에게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얼마 있지 아니하여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베드로는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살아있는 돌, 변화된 돌이 될 것을 말했는데 이는 신령한 집이 되는데 필요한 산돌 곧 살아있는, 자라는 돌이 될 것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자라고 변화되어 주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창세기 28장 16∼19절에서는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고 했다. 야곱이 베개하여 잠을 잤던 돌에 기름을 부었다고 했는데. 기름은 성령을 예표하고 그 성령은 변화시키는 역사를 한다. 이렇게 야곱이 베개했던 돌이 성령의 변화의 역사로 인해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의 돌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집 자체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물도 함께 한다. 집 안에는 가족들이 산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가족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과 그의 가족들로 이뤄진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의 집이 된다. 고린도전서 12장 12, 13절에서는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몸은 하나이지만 그 몸 안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는데 그리스도도 그러하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도 많은 지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지체들은 다른 자들이 아니고 주님을 믿고 거듭나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어 다 같은 성령을 마시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주님의 몸의 지체들, 곧 그 몸의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건 축 자
집은 그냥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세우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워진다. 이렇게 집을 세우는 사람을 건축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건축자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의 건축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 함께하여 건축하는 것이다. 즉, 주님과 그를 믿고 거듭난 자들 모두가 함께하는 건축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20∼22절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과 믿는 자들 모두가 함께하여 지어져간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3장 10, 11절에서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사도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는데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리고 그 위에 세우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과 우리가 세우는 자로 말해진다. 우리가 상기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주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는 주님과 함께 건축하는 자이기도 하고, 함께 건축되어 가는 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집의 건축의 재료이기도 하고, 주님과 함께 건축하는 자이기도 하다. 베드로전서 2장 4, 5절에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님도 산돌이고, 주님을 믿고 거듭나 변화된 우리도 산돌로서 함께 주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과 같은 산돌로서 그와 함께 주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서는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했다. 제자들이 나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에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심으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할 수 있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했다. 또,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도 사도 일행은 자신들에 대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여 건축하는 자이며, 또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건물의 재료이기도 하다. 곧, 주님과 함께하여 주님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집의 건축의 재료로 하여 주님과 함께 건축하는 자들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집의 건축
하나님의 집을 는 것은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 모두가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머리이신 주님께 까지 자람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역사하시고 있다. 에베소서 4장 11∼16절에서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에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셨고, 교회의 머리로서 계속하여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고 했다. 골로새서 1장 27∼29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다. 사도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친다고 했다. 또한, 이를 위해 그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했다. 자신 임의로,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각 사람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했다. 이를 이루는 데는 믿는 자들 안에서 역사하는 주님과 그 주님의 역사를 따르는 자들이 함께 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집을 건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