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풍미가 그윽한 평양냉면
△ 평양냉면을 상징하는 옥류관의 냉면
요새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가관이다. 잃어버린 10년? 아니다.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은 분위기다. 나 구닥다리요. 자랑이라도 하듯 명박정부 이후 여러 분야에서 과거로 회귀하였다. 정부의 일방주의는 박정희시절의 표절이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어느새 독재정권이 바라는 자기검열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입만 열면 외치는 법과 원칙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가진 자에게 말랑하고 힘없고 빽 없는 국민에게는 가혹하다. 이건희사면과 용산참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외수선생께서 이러다 통금도 부활하는 것 아니냐고 일갈했을까. 현재 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구닥다리들의 마인드라면 통금 그 까이꺼 부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해서 우리의 자랑스런 KBS에서도 이와 관련해 특집드라마를 준비한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라는 것이 왜 하필이면 ‘전우’냔 말이다. 단순하게 추억의 드라마를 리바이벌 한다고 곱게 봐 줄 수도 있다. 헌데 대북관계를 어긋장 낸 현정부에서 만든다는 게 소름 끼친다. 미래지향적인 소재를 다루어도 시원찮을 판에 남북간에 대립의 정점에 선 시절의 이야기라니. 이러다가 어린이용으로는 ‘똘이장군’도 부활할까 겁난다. 북한이 아니라 북괴였고 사람이 아니라 늑대였던 북한군. 김일성은 뚱돼지로 표현되었던 코미디 같았던 똘이장군. 그말이 씨가 되어 똘이장군이 정말 재방 될라. 여기서 그만하자.
△ 금강산 만물상을 오르면서....
극히 제한적인 지역이었지만 우리가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금강산길이 막힌지도 벌써 일년반이나 지나가고 있다. 현정은회장의 뚝심으로 김정일과 회동후 잠시 기대감도 높아졌지만 여전히 안개속이다. 금강산은 볼거리 먹을거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지만 내 추억은 음식에 꽂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전항의 광어는 빨아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고소한 흑돼지고기는 또 어떻고. 그러나 금강산의 별미는 뭐니뭐니 해도 ‘랭면’이다. 금강산을 배경으로 고상한 민족적 풍미가 그득한 냉면 한 그릇을 비우는 풍류는 신선이 따로 없다. 전국을 강타한 눈발에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금강산의 냉면. 지난 날 소개했던 목란관, 금강원과 함께 온정각 일대를 주름잡는 옥류관에 대한 썰을 풀 시간이다.
먼저 냉면에 대해 알아보자. 냉면이라 하면 국수에 고기장국이나 동치미국물을 붇고 우에 꾸미로 양념이나 고기, 채썬 달걀지짐등을 놓는 음식이다. 대표적인 냉면으로는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을 꼽는다. 우리가 냉면이라 부르는 ‘함흥냉면’은 잘못된 표기이며 ‘회국수’라 일컫는 게 옳다. 서울지역의 냉면명가는 모두 평양냉면이라 부르는데 이 역시 엄격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냉면 가업을 일군 1세대들은 대부분 이북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평양을 고향으로 두지는 않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평양냉면으로 부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양념은 함흥냉면, 국물은 평양냉면이라 하지만 냉면은 지역적 특성이 있는 음식이다. 때문에 함경도가 고향이었다면 이건 평양냉면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는 수입산 홍어를 사용하면서 흑산도나 목포를 상호로 쓰는 것과 무에 다르겠는가.
실제 냉면형태를 보아도 문헌에 나오는 평양냉면 원형과는 많이 차이난다. 그러나 현세에 와서 국물메밀국수는 모두 평양냉면이라는 통념이 자리 잡고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너도나도 평양냉면을 외칠까? 이유는 간단하다. 여느 지역의 냉면보다 평양지역의 냉면이 수작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따위 사실은 때려치우고 왜 평양냉면이 맛있는지 지금부터 고찰에 들어 가보자. 이런 진리는 인터넷에도 없다. 오로지 이 블로그에서만 알려주는 것이다. 대충 읽는다면 글쓴이의 노고가 헛수고밖에 되지 않는다. 밑줄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독은 권한다.(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시작이나 하셔!)
평양냉면 원형에 가까운 옥류관
△ 평양냉면과 녹두지짐
평양냉면이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난 것은 국수, 국수물, 꾸미와 고명, 국수담는 그릇과 국수말기 등에서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의 주재료는 메밀이다. 메밀은 예로부터 장수식품으로 일러왔다. 이 메밀로 만든 국수오리는 지나치게 질기지 않고 먹기에 맞춤하다. 메밀 고유의 풍미는 구미를 돋구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평양냉면의 심벌과도 같은 건 국물이다. 평양냉면의 주요한 특성은 국수를 마는 국물맛이 특별한데 있다. 일반적으로 김치국물이나 고기국물에 말았는데 흔히 동치미국물에 말았다. 동치미는 초겨울에 담그는 무김치의 한가지지만 특히 평양동치미를 알아주었다. 평양동치미는 무를 마늘, 생강, 파, 배, 밤, 준치젓, 실고추등으로 양념하여 담갔다. 이렇게 만든 동치미는 시원하고 찡하며 감칠맛이 있어 국수국물로 적합하였다.
△옥류관의 냉면육수는 꿩,소,닭,돼지고기를 우려낸다. 그 맛이 특별히 담백하고 진한게 특징이다.
육수는 일반적으로 고깃국물이다. 그러나 평양냉면의 국수 국물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그 만드는 방법과 재료가 독특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평양냉면 국수물은 대부분 고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원래 평양냉면은 고기가 아니었다. 소뼈와 힘줄, 허파, 기레, 콩팥, 처녑등을 푹 고와가지고 기름과 거품찌거기를 다 건져낸다. 여기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다시 뚜껑을 열어 놓은 채로 더 끓여서 간장냄새를 없애고 서늘한 곳에서 식힌 것이다. 이렇게 만든 국수물은 보기에 맑은 물과 같이 깨끗하기 때문에 ‘맹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평양냉면은 이러한 동치미국물이나 고기국물에 말기 때문에 다른 지방의 냉면보다 뒷맛을 감치게 하였다. 평양냉면은 국수를 담는 그릇도 특별하게 챙겼다. 동치미나 고기 국물맛에 잘 어울리게 시원한감을 주는 놋대접을 썼는데 그것은 먹는 사람의 구미를 돋구어주었다. 국수를 말 때에는 대접에 먼저 국물을 조금 두고 국수를 사려서 수복이 담은 다음 그 우에 김치와 고기, 달걀, 배, 오이 등의 순서로 꾸미를 얹고 실파, 실고추로 고명한 후 국물을 부었다.
이렇게 말아 낸 평양냉면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특색이 있어 조선국수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평양냉면의 명성은 예전부터 자자했다는 사실은 문헌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냉면이라 하는데 관서지방의 국수가 제일 좋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죽지’에서도 평양냉면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예전 북녘에서는 집집마다 국수 분틀을 마련해놓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국수는 매우 일상적인 식습관이었다. 또 잔치상, 돌상 등 특별한날에도 반드시 국수를 곁들이는 풍습이 이어졌다. 손님들 역시 떡상을 거하게 받아들고서도 “국수배는 따로 있다”고 하면서 국수까지 먹고 나야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로 국수를 즐겼다. 평양국수에서는 냉면과 함께 쟁반국수가 유명하였다. 하지만 현재 남한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냉면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금강산 온정각에 서있는 옥류관(금강산 분점).
평양 대동강변에 있는 옥류관을 1/4 크기로 축소해 지었다고 하니 본점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평양냉면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게 바로 옥류관의 냉면이다. 맹물에 가까울 정도로 투명한 국물, 원형에 충실한 꾸미, 80%에 이르는 메밀 함량, 시원한감을 살려주는 놋대접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실제 맛에서도 금강산 지역의 냉면 중 가장 수작이라 할 만하다. 그 맛을 남쪽에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애달프다.
△ 녹두지짐
냉면과 함께 나오는 녹두지짐 역시 남쪽의 빈대떡과는 차이가 많다. 얇게 지져낸 모양새부터가 두툼하고 호사스러운 남쪽의 빈대떡과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북쪽의 소박한 녹두지짐을 더 쳐준다. 간장이 아니라 식초물에 찍어 간을 해서 먹는 것도 색다르다. 오늘 평양냉면 한 그릇 말고 싶다. 남북화해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