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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51-59절)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만일 누군가가 우리에게 임진왜란(壬辰倭亂)이나, 병자호란(丙子胡亂)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그런 것은 책에서나 나오고,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볼 때, 거기에는 두 가지 현실(現實)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화 속의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영화 속 시대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일 수 있습니다.
즉 영화 속에서는 왜적들이 배를 타고, 새카맣게 몰려와서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몰고 와서 일본 배들을 다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그 고대(古代)로 올라가서 당나라 태종과 안시성의 양만춘이 싸우는 영화가 있습니다. 양만춘이 쏜 화살이 당 태종의 눈을 맞추어서 꽂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영화에서는 몇 십 년이 지나고, 심지어는 몇 백 년이 지났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직 한 시간만 지났고, 겨우 두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화 안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우리에게 자기가 임진왜란을 보았다고 하면서 임진왜란 때, 자기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임진왜란은 오백 년 전 일이고, 절대로 그때 사람이 지금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격렬한 대논쟁을 가져온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미쳤다”고 하면서“아브라함도 죽었고 선지자도 죽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라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더 폭발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브라함 때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젊은데, 3천 년 전에 살았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네가 나이가 오십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 때에 살았다고 하느냐?”고 따지니까 예수님은 천연덕스럽게“아브라함이 나기 전에도 나는 살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완전히 미쳐서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해서 돌로 쳐 죽이려고 하니까, 예수님은 사람들 틈에 숨어서 피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정말 미쳐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아니면 진짜 영원히 죽지 않는 또 다른 인생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미쳤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같이 망(亡)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예수님의 말씀이 진짜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보는 현실과 또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죽음도 없고, 늙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Ⅰ.영원히 사는 인생
다음은 그들에게 가장 논쟁을 일으킨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8:51절)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여기“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영원히 안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표현입니다. 또“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아멘. 아멘 레고휘민)라고 하여“아멘. 아멘”을 두 번이나 하신 것은, 이것이 농담이나,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또“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안내자(案內者)로 삼아서 끝까지 따라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안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 병(病)으로, 사고(事故)로, 전쟁(戰爭)으로, 차(車)에 치여서 죽고, 늙어서 노환(老患)으로 죽고,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다 죽는데, 예수님은 자기 말을 믿고, 따라오면, 영원히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반응(反應)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8:52절)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고, 위대한 선지자 모세도, 사사 사무엘도 죽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말을 믿고 따라가면,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미쳤든지, 귀신들렸든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죽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즉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을 수만 있다면, 수십 년, 수백 년 후까지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고, 무엇이든지 무한(無限)도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아프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죽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결국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무덤 안에서 시신(屍身)은 썩어가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결국 새나 한 번씩 지나갈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현실(現實)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영화(映畫)를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멋진 영화를 볼 때, 거기에는 두 가지 현실(現實)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화 속의 현실입니다. 영화 속에는 옛날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주인공들이 진지하게 사랑을 하고, 전쟁을 하고, 고난을 헤치고, 나아갑니다. 물론 그들은 배우(俳優)일 수도 있고, 실제 인물(人物)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인생(人生)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현실(現實)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잠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 다른 삶이 있는 것입니다. 즉 영화는 끝이 나도 그들의 인생은 끝나지 않습니다. 영화(映畫)가 끝나고, 영화관(映畵館)에 불이 들어오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하여 또 현실(現實)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몇 십 년도 걸리고, 몇 백 년도 걸렸던 인생이 영화 밖에서는 고작 한 시간 반이고,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영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아직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가지의 현실이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 현실 속에서 장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사랑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현실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 다 죽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종결(終結)점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현실의 막 뒤에는 또 다른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새로운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두 개의 삶은 절대로 합쳐질 수 없는 별개의 인생으로 진행(進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생의 막을 찢고, 하늘의 현실에서 이 세상의 현실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든 특권(特權)을 다 포기하고, 한 인간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천국의 현실은 이 세상의 현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천국의 현실은 죽음이 없고, 모든 것이 현재(現在) 진행(進行)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 인생의 막을 찢고, 천국(天國)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의 막을 찢을 때, 죽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우리는 죽습니다. 또 죽음의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죽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의 막을 찢는 것이고, 즉시 천국(天國)의 현실(現實)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궁금한 것은 천국(天國)의 현실(現實)은 과연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이상(以上)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국(天國)에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호기심(好奇心)만 잔뜩 채우려고 하고, 말만 자꾸 만들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마 인간은 틀림없이 “천국의 현실”이라고 해서 하나의 과목(科目)을 만들고, 신학(神學)책을 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지혜(智惠)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머리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따라갈 때,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삶이 일차원적(一次元的)인 삶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삼차원적(三次元的)인 삶 즉 3D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즉 모든 것이 벽에서 튀어나와서 입체적(立體的)으로 살아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天國)의 현실이 과연 어떤 인생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보다는 지성(知性)이나, 감정(感情)이 신체적(身體的)으로 백 배, 수천 배 뛰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의 주연(主演)배우 같이 연기(演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엑스트라(extra)같이 세상의 옷만 입고, 시간만 어영부영 때우는 식으로 사는 것으로는 저 천국(天國)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난(苦難)도 받아야 하고, 양심(良心)도 지켜야 하고, 물도 통과하고, 불도 통과하면서 위기(危機)를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삶도 3D로 살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돈이나 받고, 내 자리나 지키는 것으로는 천국(天國)의 벽(壁)을 뚫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종이에서 튀어나와서 전체적(全體的)으로 살아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Ⅱ.아브라함이나 선지자와 다른 예수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말씀의 종들을 조상(祖上)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브라함이 있었고, 모세나, 사무엘 같은 선지자(先知者)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도 결국 늙어서는 다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말을 지키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8:52-53절)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고, 모세도 죽었고, 사무엘이나, 다윗도 죽었는데, 왜 예수는 자기 말을 지키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네가 아브라함보다 더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네가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냐?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 다윗보다 더 위대하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이 바로 내 아버지”라고.
8:54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이루시는 분은 그의 아버지이신데, 그분은 곧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創造)하시고, 우리에게 호흡(呼吸)을 주시고, 육체(肉體)를 주시고, 이 세상에 살게 하시고, 생명(生命)을 주신 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아버지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고, 죽은 자도 얼마든지 살리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벤츠사의 한국 사장(社長)이 이제 한국에 전기 자동차를 선보이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벤츠는 우리나라에 아주 비싼 고급차만 팔았는데, 저가(低價) 벤츠를 팔아서 대히트를 쳤습니다.
요즘 거리에 수많은 벤츠가 굴러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기차도 가져오고, 하이브리드차도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벤츠 중에서 우리가 생전 보지도 못한 모델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주 특이하게 생긴 스포츠카도 있고, 정말 이상하게 생긴 신차(新車)도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팔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공부를 일등하고, 재벌(財閥)들이나, 장관(長官)이나, 국회의원(國會議員)이나, 대통령(大統領)이나, 수석(首席)비서나, 보고 최고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에게는 아직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은 별의별 축복(祝福)이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돈 받고 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우리에게 그 희한한 것들을 그냥 주실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地位)를 포기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돌아다녔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애굽의 종이 되었고, 죄수(罪囚)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자(獅子)굴에 들어갔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믿고, 느부갓네살의 우상(偶像)에게 절하지 않다가 풀무 불에 들어갔지만, 살아서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있는 것들은 모두 구 모델들입니다. 마치 벤츠가 올드 모텔은 가난한 나라에 파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선보이지 않은 뉴 모델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바로 이분이 우리의 신 모델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 모텔도 성실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우리는 성실(成實)해야 하고, 욕심(慾心)과 죄(罪)를 버려야 하고,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인생의 벽(壁)을 뚫고, 영생(永生)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Ⅲ.영원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예수님 당시 이미 3천 년 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 사람인 것에 엄청난 자부심(自負心)을 가지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천 년 전에 자신이 아브라함을 만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56절)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도 만나기를 원하는 분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분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모두를 새로운 삶으로 영생(永生)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아들이 아브라함의 천막을 두 천사와 함께 방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도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단지 그냥 이 더운 날에 지나가는 분인 줄 알고, 대접하려고 했는데, 그분은 엄청 존귀하시고, 고상하셨으며, 아브라함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부인(婦人)사라에게 이삭을 가지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능(能)치 못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이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이 무슨 소리를 해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를 믿어서는 안 되고, 거기에 미련을 두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주어진 처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는 맨손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두고 가야 합니다. 심지어는 육신(肉身)까지 다 두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너무 많이 가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가지면, 이 세상의 벽(壁)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믿음과 예수님 말씀만 가지고,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싸울 이유도 없고, 혈기(血氣)를 부릴 필요도 없습니다. 다 죽을 건데, 이겨서 뭐하며, 내 뜻대로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만났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화가 머리끝가지 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8:57절)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여기“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다”는 말을 가지고 사람들이 예수님은 늙어 보이셨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오십 세쯤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네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도 오십 세가 안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도 오십 세가 안 되는 분이셨는데, 아브라함을 만났다고 하니까 기가 막힌 것입니다.
도대체 이분은 누구십니까?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든지, 아니면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58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즉 온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계셨던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현실의 벽(壁)을 깨고, 이 세상에 인간(人間)으로 오셔서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만 믿고, 하나님만 믿으면, 또 현실(現實)의 벽(壁)을 깨고, 영생(永生)의 세계로 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살아라.”하는 만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구 모델입니다. 현실(現實)은 현실(現實)이지만, 구닥다리 현실입니다. 즉 고구려 시대와 같고, 임진왜란 때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입체적(立體的)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만의 독특한 믿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과 같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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