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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디 캡슐]에서는 적혈구보다 작은 크기로 줄어든 사람을 태우고 비행선이 혈관 속을 항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진은 리메이크 버전의 그래픽. <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바디 캡슐Fantastic Voyage]에는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고의 의사를 깨알보다 작게 줄여 환자의 몸 속에 넣는 장면이 나온다. 엄청나게 작아진 사람이 주사기 바늘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가 백혈구와 싸우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나노 기술의 발달로 내시경 기능을 갖춘 캡슐형 의료기기가 곧 나올 거라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사람의 혈관 속을 누빌 수 있는 초소형 비행선은 아니지만, 입으로 들어간 캡슐이 몸 속 식도와 위, 소장, 대장을 거치며 온갖 검사를 한다면 영화 속의 공상과학이 어느 정도는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한다면 사람을 축소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 모양의 초소형 로봇을 만드는 것 정도는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혈구나 백혈구는 직경이 채 10마이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 우리 몸에 비해 10만분의 1 이상 작다. 영화 에서는 백혈구와 싸우는 사람의 모습도 정상 크기의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적혈구만한 크기로 작아져도 현재와 같은 모양일까?
적혈구의 크기인 10만분의 1미터의 물체는 우리 눈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황사 바람에 날려온 미세먼지가 대략 이 정도 크기다. 볼 수 없는 세상의 일을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크기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고 어떤 것이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크기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볼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바탕으로 과학적 추론을 해본다면, 그 지식을 근거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상의 현상들을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단순히 정해진 공식을 응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을 설명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크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와 가장 작은 동물 중 하나인 개미를 한번 비교해 보자. 코끼리와 개미의 생김새는 확연히 다르다. 굵은 통나무 기둥 같은 다리에 트럭 모양의 두툼한 몸통을 가진 코끼리, 실낱 같은 다리에 글자 그대로 ‘개미 허리’의 몸매를 자랑하는 개미, 이 둘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그런데 만약 코끼리만한 개미가 있다면 어떨까? 이제껏 알고 있던 개미와 크기 면에서 완전히 다른, 이상한 생물, 즉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집보다 더 큰 거미나 엄청난 크기의 전갈 모양 곤충은 공상과학 영화의 단골 출연자다. 최근 들어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면서 이런 괴물이 나오는 영화가 점점 많아진다.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코끼리만한 개미가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개미가 코끼리만하게 커질 수 있는 걸까? 사실 거대한 크기의 곤충이 너무나도 실감나게 그려지고, 또 자주 접하다 보니 오히려 “개미가 코끼리만한 크기로 커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과학적 질문이나 상상을 쉽게 떠올리지 않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개미와 코끼리로 돌아가 보자. 얼핏 생각하기에는 개미와 코끼리의 생김새 차이를 단순히 진화에 따른 종의 다양성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문제는 바로 크기의 과학이다. 우선 코끼리만큼 커진 개미가 말이 되는지 알아보기 전에, 다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놓치기 쉬운 길이, 넓이, 부피의 관계를 한번 되짚어보자. 정사각형이 있다. 한 변의 길이가 1미터인 정사각형의 면적은 1제곱미터다. 이 정사각형의 변의 길이를 2배로 늘리면 그 면적은 2의 제곱, 즉, 22=4제곱미터다. 정육면체라면, 변의 길이를 2배로 늘렸을 때 그 부피는 2의 세제곱, 즉, 23=8 세제곱미터가 된다. 다시 말해 길이가 L 배 커지면, 면적은 L2, 부피는 L3에 비례하여 커진다. L=2 인 경우는 길이: 면적: 부피=2:4:8에 불과하지만, L = 10이 되면, 길이: 면적: 부피=10:100:1000으로 각각의 차이는 훨씬 커진다. 여기서는 제곱-세제곱 법칙을 정사각형과 정육면체를 통해 알아보았지만,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크기만 바뀌는 경우라면 물체가 어떤 모양이든 앞에서 살펴본 제곱-세제곱 법칙이 그대로 정확하게 적용된다.
개미는 1만3천 종 이상이 존재하는데, 채 1밀리미터가 안 되는 것부터 30밀리미터가 넘는 것까지 있다고 한다. 몸무게는 최대 10밀리그램 정도다. 우리는 그 중 중간 정도 되는, 길이 10밀리미터, 몸무게 6밀리그램인 개미를 골라, 그 크기를 변화시켰을 때 무게가 어떻게 바뀌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이 개미를 사람만큼 키운다고 했을 때, 170센티미터의 사람 키와 개미의 길이 비율은 L=1700mm/10mm=170이고, 부피 비율 L3=1703=4,913,000이다. 밀도가 일정하다면 질량은 부피에 비례하므로 사람만한 개미의 몸무게는 6밀리그램의 약 490만 배, 약 30킬로그램이 된다. 키 170센티미터 남자의 표준 몸무게 60킬로그램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개미를 사람만큼 키워 봤으니 이번에는 코끼리만한 크기로 만들어보자. 코끼리도 여러 종이 있지만 아프리카 코끼리 중 가장 큰 것은 키가 4미터에 몸무게가 7000킬로그램 정도라고 한다. 이 코끼리와 개미의 길이 비율은 L = 4000mm/10mm = 400이고, 부피 비율은 L3 = 4003 = 64,000,000 이다. 개미의 몸무게가 6밀리그램이고, 코끼리만큼 키웠을 때의 부피 비율이 6천4백만 배이니, 그 둘을 곱해 코끼리만큼 커진 개미의 몸무게를 구하면 384킬로그램이 된다. 사람 크기의 개미는 몸무게가 사람의 절반 정도(30kg/60kg) 되고, 코끼리 크기의 개미는 18분의 1정도(384kg/7000kg)가 되는 셈이다. 앞서 제곱-세제곱 법칙이 같은 모양에 같은 밀도를 갖는 경우라고 가정했다. 사람은 개미보다 팔다리와 몸통이 굵다. 코끼리는 사람보다 몸통이 훨씬 더 굵다. 이렇게 모양이 다른 것을 감안하면, 개미를 사람과 코끼리만큼 키워도 몸무게가 2분의 1과 18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코끼리만큼 커진 개미는 본래 코끼리보다 18분의 1 정도로 가볍기는 하지만, 이 커다랗고 날씬한 개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왜 그럴까?
자기 몸 보다 큰 나뭇잎을 들고 가는 개미. 사실 개미가 힘이 세 보이는 이유는 작기 때문이다. 개미가 코끼리만큼 커지면 이런 힘을 발휘하기는커녕 일어설 수도 없다. <출처: gettyimages>
동물은 근육의 힘으로 움직인다.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의 세기는 근육의 단면적에 비례한다. 근육 운동을 많이 해서 알통이 커진 사람의 팔 근육은 단면적이 크기 때문에 큰 힘을 낼 수 있다. 만일 근육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몸의 크기가 L=2배로 커진다면 제곱-세제곱 법칙에 따라 근육 단면적은 L2=4배로 커지게 되고 힘의 세기도 4배로 커진다. 개미의 경우, 같은 모양을 유지하면서 L=400배로 커졌다면 개미의 다리 힘은 L2=160,000배 커진다. 6밀리그램의 개미가 자기 몸무게의 10배를 들어올릴 수 있다고 하면 60mg중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384킬로그램의 개미는 잘해야 60밀리그램중의 16만 배인 9.6kg중의 힘을 낼 수 있다. 개미가 코끼리만하게 커질 때 몸무게는 6천만 배 이상 늘어나는데 다리로 버틸 수 있는 힘은 겨우 16만 배밖에 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거대한 개미는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어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자, 그럼 이렇게 주저 앉아버린 코끼리만한 개미를 걷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개미의 다리 힘을 40배 정도 키워주면 된다. 그러면 몸무게 384킬로그램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다리의 힘을 40배나 키우려면 근육 운동으로 알통만 키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근육 단면적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아예 다리의 모양을 바꿔야 한다. 제곱-세제곱 법칙에 따르면, 근육 단면적은 L의 제곱에 따르므로 개미의 몸에서 힘을 받혀주는 부위를 몸의 다른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6.3배 크게 키우면 된다. 즉 다리, 허벅지, 허리를 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뀐 개미의 생김새에서는 더 이상 개미의 특징인 실낱 같은 다리와 개미 허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뚱뚱한 코끼리의 모습에 오히려 가까울 것이다. 크기가 바뀌면서 형태 자체가 변해버렸다. 동물의 진화 과정에 제곱-세제곱 법칙이 어떻게 작용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제곱-세제곱의 법칙을 크기가 줄어드는 쪽으로 적용해보자. 키 4미터 코끼리를 10밀리미터의 개미 크기로 줄이는 것이다. 이 때 길이 비율은 L=1/400, 부피 비율은 L3=1/64,000,000 이 된다. 코끼리의 몸무게 7000킬로그램에 부피 비율인 6천4백만을 적용하면, 개미만한 코끼리의 몸무게는 약 110밀리그램 정도가 된다. 보통 코끼리가 제 몸무게의 2배 정도를 버틴다고 하면, 개미만한 코끼리의 다리 힘은 L2의 비율에 따라 약 88g중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이 힘은 자기 몸무게 110밀리그램의 약 8백배를 들어올리는 힘에 해당된다. 쓸데없이 너무 큰 힘을 가진 개미 크기의 코끼리가 되는 것이다.
크기의 과학이 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제곱-세제곱 법칙은 동물의 물질대사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코끼리나 사람 같은 항온 동물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데 세포의 대사활동을 통해 발생되는 열에너지는 몸의 세포 수, 즉, 부피 또는 몸무게에 비례한다. 그리고 외부 기온이 체온보다 낮을 때 몸에서 체외로 발산되는 열에너지는 몸의 표면적에 비례한다. 코끼리와 사람의 길이 비율이 2배라고 하면, 같은 모양이라고 가정할 때, 코끼리의 부피는 사람의 8배, 표면적은 사람의 4배가 된다. 이것을 열에너지로 바꿔 생각하면 몸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8배 늘어나는데 피부를 통해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4배밖에 안 늘어나는 것이다. 코끼리가 커다란 귀를 흔들어 부채질을 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열에너지 방출에 필요한 피부 면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코끼리 귀 뒷면에는 모세혈관이 많아 열을 발산하는데 더욱 효율적이라고 한다. 사람이 더울 때 부채질을 하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열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발산해 몸의 열을 식히는 것이다.
개미의 경우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곱-세제곱 법칙에 따르면 코끼리의 부피가 6천4백만 분의 1로 줄어들 때 표면적은 16만분의 1밖에 줄지 않는다. 줄어든 비율로 보면, 작아진 몸의 부피에 비해 표면적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400배나 크기 때문에 개미만한 코끼리의 피부를 통한 열 손실은 400배나 증가한다. 다시 말해 개미만한 코끼리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질대사를 통한 에너지 소모가 본래 크기의 코끼리보다 상대적으로 400배나 더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에너지를 체온 유지를 위해 쓰더라도 에너지가 모자라게 될 것이고, 결국 개미만한 코끼리는 체온 유지가 힘들어 항온동물의 속성을 잃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영화 [바디 캡슐]에서처럼 형태는 유지한 채 사람의 크기만 줄일 수 있을까? 적혈구는 개미보다 1천 배나 작고, 사람에 비하면 10만 배 이상이나 작다. 적혈구와 사람의 길이 비율은 L=1/100,000밖에 되지 않는다. 코끼리가 400배만큼 줄어 개미만한 크기가 되면 체온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람이 400배도 아니고 10만 배나 작아진다면 피부를 통한 열 에너지 손실이 상대적으로 10만 배나 커지게 되므로 체온 유지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적혈구만한 크기의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적혈구만한 크기의 사람 모양 로봇은 자기 몸무게의 10만 배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쓸데없이 센 힘을 갖는다. 적혈구 크기의 사람이라면 팔과 다리가 훨씬 가는 실낱 모양이 되어야 효율적이다.
길이, 면적, 부피의 크기 변화에 대한 추론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 공학 등 모든 과학 분야에서 기초적 개념의 출발점이다. 또한 제곱-세제곱 법칙은 일상생활에 스며있는 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기도 하다. 섭씨 영하 30도의 추운 겨울날 끓는 물을 뿌리면 곧바로 눈이 되어 내리는 이유도 알 수 있고, 커피포트의 물을 순식간에 끓이거나 식히는 원리도 밝힐 수 있다. 또 화력발전소에서 거대한 보일러에 물을 끓여 발전하는 것이 개인 주택에서 개별적으로 보일러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효율적인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크기의 과학이 이런 현상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