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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를 섬기는 사람들(진짜 목회자의 모습)
왕하 18:1-4
(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실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사람을 의지하고, 지나치게 섬기거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다른 어떤 것들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가볍게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상숭배로 여기시는 큰 범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명하심에 따라 장대 위에 매달았던 놋뱀을
히스기야 왕 때까지도 보관하고, 그것에 분향하며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 것이 약 B.C.715년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던 것이 B.C.1446년이기 때문에
대충 계산을 해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700년도 넘게 놋뱀을 소중하게 보관하면서
거기에 분향을 하며,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함으로 백성들이 숭배하던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느후스단’이라는 말은 ‘놋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즉 놋뱀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놋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표명한 것입니다.
민 21:4-9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직후에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라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노래를 부르며 감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지 불과 1달 만에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 도다”라며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감사하지 못하고
길이 마음에 안 들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고 불평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또다시 원망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여주셨는데도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음식에 대하여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패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그런 패역한 모습을 보시고
결국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셔서 물도록 하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불뱀에 물려서 사망에 이르렀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모세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나서야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에게 살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따라서 놋뱀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놋뱀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보여주신 매개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께서 놋뱀을 장대 위에 높이 매달게 하신 것은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한 공개적인 처형을 상징하며,
사탄의 권세가 모두 처형된 자리에 당당히 서계신 예수님의 승리와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만이 모든 악의 독성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은 채
700년을 넘게 놋뱀을 귀하게 여기며 보관하고,
거기에 분향을 하며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매한 인간들을 보실 때에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만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 없는 것은
이 우매한 일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바로 우리에게도 그런 모습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에서 보신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것이나 사람을 마치 하나님처럼 섬깁니다.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들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섬기는 것은
분명한 우상숭배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는 “목사님, 강도사님, 전도사님, 선교사님” 하면서
그 사람들을 마치 예수님 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다시 말해 하나님의 노예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인 목회자를 만났을 때
성도들이 마치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90도로 인사하며
굽신굽신 하면서 영광스러워(?) 하고,
목회자가 교회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하게 주일학교 학생들을 모두 이끌고 로비까지
단숨에 달려 나가서 극진히 대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그 목회자가 하나님인지, 하나님의 종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냉랭한 마음으로
‘언제 끝나나...’하며 지루해 하다가도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목사님을 만나면 활짝 웃으면서
오늘 설교도 은혜로웠다고 극찬하며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인지,
목사를 섬기는 자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그리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한 채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으며,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 교제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없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사람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우매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700년을 넘게 놋뱀을 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럴 리가 있느냐! 나의 마음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하나님의 종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해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의 실상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그 언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삼상 16:7 하
(7)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계셔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결코 사람을 의지하거나,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놋뱀을 숭배했던 것처럼
목회자를 마치 하나님을 대하듯 섬기는 것은
우매하기 짝이 없는 우상숭배의 행위가 분명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오직 예수님만 계실 때에
우리에게서 그런 모습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갈 6:6-7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살전 5:12-13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이것은 목회자를 무시하라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참 목회자를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종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를 보내신, 그 목회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그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두 사람이 똑같이 목회자를 귀하게 여기는 행위를 해도
그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중심이 어느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1:1로 만나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이 없음으로
골방에서 하나님을 뵙고자 매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혹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교제를 하고 있는 사람까지도
사람을 의지함으로 목회자를 보면 마치 하나님을 만난 듯,
마치 목회자가 후광이 비추는 영광 가운데 나타난 듯
그 앞에서 몸이 저절로 숙여지며 하나님께도 하지 않았던,
혹은 하나님께 했던 것과 같은 숭배의 모습을 한다면
그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섬기고,
마음 중심에 하나님만 계신 사람이라면
목회자를 만났을 때에 그렇게 굽실거리는 행동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행위가 사람을 의지하며 숭배하는 행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실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그런 행위를 자제할 것입니다.
목회자, 즉 설교자는 하나님의 스피커 일뿐입니다.
설교를 듣고 진리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마치 놋뱀을 섬기듯 스피커를 섬기면 그보다 우매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공연장에서 가수가 노래를 하는데 팬들이 가수는 안 쳐다보고
스피커만 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스피커로 사용된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초대형교회의 목회자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는
이미 교계에서 그리고 목사들 사이에서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담임목사를 교계와 사회의 거물급 인사로 만들고,
하나님의 자리에 담임목사를 올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설교를 할 때에도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받아 준비하여 전하지 않고,
부교역자들이 열심히 준비한 설교 원고를 가지고
강대상에 올라가 마치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받은 설교인 것처럼 연기를 합니다.
즉 허수아비처럼, 교회의 소위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 목회자는
우선순위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배운 바로는 목회의 우선순위 중 첫 번째가
하나님으로부터 교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직접 받아
그것을 열심히 준비하여 전달하는 것입니다.
부교역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설교를 가지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준비한 것 마냥 연기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또한 다른 목회자가 작성한 설교를 몰래 가져다가 표절하여
마치 자신이 열심히 준비한 것처럼 연기를 하거나,
돈을 지불하고 설교를 구매하여
그것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설교인 척하는 행위는
누가 봐도 명백한 표절에 해당하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사회적으로도 표절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이며,
표절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범행인데도
정말 이상하게도 교계에서는 설교나 도서나 논문을 표절하는 일들이
문제의식 없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목회자들의 90% 이상이 설교를 표절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느 초대형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도
10년간 설교를 표절해 그 힘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고백을 가까운 지인에게만
살짝 했다는 얘기를 대학원 강의 때에 들은 적도 있습니다.
(강의 때에 그 사실을 말한 교수님이 그 목사님의 지인입니다.
음해의도를 가진 루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설교를 표절하다가 교인들에게 적발된 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끝까지 거짓말을 하다가 결국 당회에 의해 쫓겨난 목사들도 있습니다.
머지않아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는
모든 것이 사실대로 낱낱이 밝혀질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판단하심 아래 각 사람에게 상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목회에서 설교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바른 신앙을 위한 중보기도와 신앙상담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목회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설교와 중보기도와 상담,
이것만으로도 목회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인데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뒤로하고 보여주기식 행보를 위해
각종 행사에 다니고 국내/외의 정치인들을 만나며
“시간이 없어서 설교는 다른 사람들이 준비해준다.”라고 말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또한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위대한 행적(?)들,
예를 들어 외국에서 수 만 명을 모아놓고 했던 신유 집회 등의 실황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매주 주일 아침마다 자랑하듯 상영하고,
목사가 설교를 하러 가는 곳마다 상영합니다.
또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한 채
엄청나게 큰 목사 인형을 만들어
마치 공산주의 지도자숭배를 연상케 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아예 교회의 이름을 OOO목사기념교회 등으로 짓고, 건물을 거대하게 지음으로
그 목사님을 도구로 사용하신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위대하게 생각하며 높이는 것을
오늘날 교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곳이 예수님께서 주인이신 교회인지,
목사가 교주로 있는 신종 종교인지
새신자들은 혼동을 겪을 것이 분명해보일 정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런 모습으로 목회자를 떠받들고 마치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심각하게 점검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용하시는 진짜 목회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리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 목회가 날이 갈수록 하나님만이 드러나고
목회자는 뒤로 숨겨져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목회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목회자가 드러나고,
마치 거물급 인사가 된 것 마냥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교만한 일입니다.
더불어 참된 진리를 전하는 목사라 해도
그 목사가 자신이 설교한 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마 23:3-11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설교 말씀을
전한 그대로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바리새인과 서기관일 수도, 예수님의 참된 종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럴 듯하게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면서
정작 자신은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멋진 옷을 입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사람들에게 문안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오늘날 이들의 모습과 완전히 같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목회자의 그럴 듯한 설교만을 듣고
온전하게 신뢰하여 따라가지 말고,
그 목회자의 겸손히 행함과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드리는지의 여부를 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눅 17:9-10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목회자가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만을 높여드림으로 자신은 점점 감춰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지,
반대로 목회의 햇수가 길어질수록 교만한 모습이 되어
자신이 점점 높아지며 하나님은 가려지는지,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며 따르고 의지할 때에
오히려 꾸중하며 예수님만을 의지하라고 올바르게 가르치는지,
아니면 그것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는지.
잘 보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사용하시는 참된 목회자를 선택하여
그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이기에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추가로 기억해야 할 것은
지극히 겸손한 표정과 행동과 인자한 모습으로 성도들을 대하지만
성도들이 자신을 높이며, 예수님보다도 더 존경하는 듯 한
우상숭배의 모습으로 자신을 의지할 때에
그것을 저지하지 않으며, 만족해하고
자신이 목회를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목회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목산데! 당연히 나를 대접해야지’하는 마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높은 마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9:27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약 3:1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목회자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두렵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에 기록한대로 제가 전하고 나서 버림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전한 설교대로 제가 살고 있는지,
정말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지를 심각하게 돌아보며,
그런 저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실지,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그날 뭐라고 말씀을 하실지
저는 늘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머지않아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난 채 서게 될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십시다.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십시다.
우리가 판단할 것은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고 놋뱀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해드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물건도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십시다.
어떤 목사가 위대하고, 어떤 목사가 말씀이 좋고,
어떤 목사가 겸손하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도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모두 부끄러운 죄인들이었으며,
지금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스스로를 무익한 종이라고 솔직하게 사실대로 고백해야만 하는,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스스로를 쳐서 복종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구원이 완성된 의인들’이 아니라 모든 이들과 똑같이
‘구원의 기회를 은혜로 얻은 죄인들’입니다.
저도 목사로서 결코 목사님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 것은
이제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가장 사랑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될 뿐입니다.
누가 잘 났네, 못 났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생님은 한 분이시고 우리는 다 형제이므로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 분이시므로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을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라고 부릅니다.]
지도자는 예수님 한 분이시니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노예, 즉 목회자와 각종 사역자들을
하나님 인 듯 섬기는 것을 즉시 멈추고,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진심으로 섬기고,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십니다.
그리고 우리 목사들은 예수님께서 꾸중하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교만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대접받기를 좋아하며,
선생님이라, 지도자라 칭함 받기를 좋아하며,
바른 진리는 전하면서도 자신은 조금도 행하려고 하지 않는
교만한 모습들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자신의 목회에 조금이라도 그런 것들이 있다면 아직 기회가 있는 지금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며, 돌이키고,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엎드려야
영원한 후회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난 후에야 깨달은 우매한 모습을 우리는 닮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말씀으로 깨달아 새롭게 각성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는 그 날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극찬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당당히 들어가시는
참으로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3:23-26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16.07.24.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1.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2. 무섭게 바람 부는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3.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후렴]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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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이번주도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한국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데 모쪼록 무더위속에 건강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섬기며 구원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에녹님도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해요~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하시고 좁은 길로 인도 하는 것도 목회자이지만 우리를 멸망의 길로 떨어트릴 수 있는 자도 목회자입니다. 영적지도자의 길은 두려운 자리이죠..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배운 것처럼 지도자는 하나님 한 분이시죠.
따라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지도자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유일한 지도자로서 경외하는 사람이 바로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목회자가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또 사람들이 목회자를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지도자시요, 선생님이요,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목회자의 말은 참고하되 오직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자칫 목사님들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조심하고 목사님을 존경하되 우리 하나님의 도구일 뿐. . 하나님만을 바라는 삶을 살겠습니다. .
동감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게 될까를 늘 주의하고,
목회자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셔서
올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맡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언제나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시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기준으로 삼고 구원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