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너머: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
-카트야 호이어 지음/송예슬 옮김/서해문집 2024년판
독일 통일,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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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치 독일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린 잔혹한 전쟁에서 항복한 이후 소비에트연합(이하 소련)의 독일 점령지에 세워진 ‘독일민주공화국(이하 동독)’의 건국(1949년)에서부터 서독체제하에 흡수, 통일되던 해(1990년)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동독 건국의 아버지 발터 울브리히트 독일사회주의통일당 제1서기와 이어서 서기장에 임명된 에리히 호네커가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목표로 약 40년간 국가를 이끌었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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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국가였던 우리의 나라도 2차 세계대전 여파로 남북으로 분단되며 각자의 국가를 건국한 지 어언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1990년, 새로운 천 년을 얼마 앞두고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을 이루는 모습을 부러움 잔뜩 섞인 눈길로 바라보았던 우리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남북으로 오랜 세월 분단된 체제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 일어날 수도 있을 여러 난관과 갈등에 대해 독일 통일의 사례를 참조함으로서 통일의 주역이 될 세대들이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
나날이 커져가는 남북한 경제격차 속에서 새로운 세대는 통일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말미암아 민족통일에 대한 거리 인터뷰에서 가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애석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갈수록 만연한 만능 소비주의 심리에다 저마다 이기주의적이 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자라나는 세대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빠른 시일 안에 통일을 이룸으로서 이 땅에 전쟁의 공포나 불안이 아닌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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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동독이라는 국가체제의 수립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향해 위로는 동독의 다양한 정치세력과 아래로는 사회주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저마다의 위치에서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노동자, 농민, 군인, 기술자 등의 분투과정을 그린 이 책은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논픽션이지만, 작가의 세심한 준비와 주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처럼 이야기를 엮어가는 재미있는 필치로 인해 역사의 일면이 주는 사실의 나열에서 오는 지루함을 극복하고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겨 몰입하게 만듦으로서 많은 독자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 학술계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칭찬 일색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 대해 이념적 경쟁 여파로 어릴 적부터 받아온, 일종의 세뇌 교육의 결과로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불편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퇴색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동독이라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신생국가 안에서 한 세대가 나고 자라는 시간 동안의 역사 속에는 이념을 포함시킨다손 치더라도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이상적인 사회나 공동체 구축을 위한 동독 사람들의 눈물겨운 휴먼드라마가 펼쳐졌던 아름다운 시간이었기를, 그들의 노력이 퇴색되지 않고 역사 속에서 무참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정신과 마음이 책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들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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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넓게 시야를 확장한다면 이 책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보다 나은 유토피아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연구실 한 구석에서 특수한 실험을 하듯 세계의 한 지역에서 시범적 사업을 해 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마치 거짓말처럼 지난 세기 초 당시 들불처럼 전 세계를 휩쓸며 지나다녔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격정적 흐름은 공산주의 모국을 자처했던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며 과거의 러시아라는 국가로 회기하고 있고, 그 주변의 위성국가들마저 최근 자본주의 체제로 슬그머니 전환되는 과정에 있어 그런 일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이냐는 환상처럼 전 세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일부 국가는 공산주의를 표명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존속하고는 있지만 인간 개개인 삶의 질적 향상과 문화적 변혁이라는 시대 변화의 추이 속에서 과거만큼 기를 펴지 못한 채 서서히 세계변화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며 그 활동은 둔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떤 면에서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추악한 면만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 국가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데에 스스로 자신만만하다면 왜 그렇게 많은 비밀경찰과 유사 조직이 필요했는지 의아할 뿐 아니라 국가를 형성하는 주요 구성원들인 그들의 인민을 일일이 감시하고 때에 따라서 억압까지 하는 행위들에서 권력이라는 욕망에 집착하는 세력들의 추악한 일면을 새삼 확인하는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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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라는 국가 체제 안에서 지난 시간들은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따스한 공동체를 혹은 사회를 구축하려는 인간적 노력과 열정의 결정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주변의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순리적인 독일 통일을 이루게 하지 않았나 싶다.
역사의 시간으로 볼 때 아직 완전한 사회나 국가는 없다. 지구촌 곳곳에는 아직 인간의 기본권 중 기본권인 먹는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아 다른 부유한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그리고 부유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나라조차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 유사한 어려움이 내재해 있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이번에 얻게 된다.
(2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