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놓고 도망갔어요. 뭉게구름 흰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봐. 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간대요.」
몇 십 년이 흘렀어도 유년 시절에 불렀던 동요 중에 더러 잊혀 지지 않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동요도 1절 만큼은 기억이 뚜렷했지만 혹시 몰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절 끝 부분「걸쳐놓고 도망갔어요.」라는 노랫말 부분이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라고 바뀌어 있는 악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바뀐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는 분명 ‘걸쳐놓고 도망갔어요.’라고 불렀던 기억입니다. 바뀐 이유야 모르겠지만 노래의 맛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혹시라도 ‘도망갔어요.’라는 가사 말이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판단으로 노랫말을 바꿨다면 그야말로 순수한 동심을 굳어버린 어른의 마음으로 함부로 재단해 버린 꼴입니다.
조각구름을 몰고 와서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쳐 놓고 개구쟁이처럼 도망치는 솔바람을 재미있어하는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무구함을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애 늙은이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억지에 다름없습니다. 전체적인 노랫말 속에 녹아있는 동심의 순수 해학과 재미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박목월 시인의 동시「흰구름」에는 미루나무와 조각구름과 솔바람이 등장합니다. 무더운 여름 날, 땀으로 벗겨지는 검정고무신을 고쳐 신으며 차만 한 대 지나가도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비포장 신작로 집으로 오는 길에는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매미울음 소리와 땡볕으로 채워진 길은 아이들이 없다면 오히려 막막한 풍광입니다. 미루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다 햇빛에 눈이 부셔 재채기를 하고 난 아이들은 물오른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불기도 했고 운수 사납게 아이들 눈에 걸려든 뱀에게 회초리질을 할 때 쓰기도 했는데 그 많던 미루나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루나무 서있던 길도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이름도 잘 안 외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같은 나무들이 차지하더니 이즘에는 이팝나무 가로수 길이 늘어납니다.
구름이 흘러가고 스러지듯이, 미루나무 가로수 길이 사라졌듯이, 우리네 인생길도 그렇게 흘러가고 그 자리에는 다음 세대가 또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 유한한 인생길에 다툼과 미움과 교만과 질투와 거짓으로 날 수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