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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남자들
1976년, 1월 16일 입대하고
1978년, 11월 23일 제대를 명받았다.
그 당시에는 근무하는 사단 신고식을 하고
관할지역 사단에 와서 다시 신고를 해야 한다.
우리 관할이 광주 31사이기에 관할로 갔다.
병역수첩을 잃어 버려 그날 신고식을 못 하고 다음 주로
연기가 되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집에 오니까 ‘수상한 남자’ 주환, 동현 이가 봉림 무기고 방위
근무를 하며 힘들어 했다.
밤이면 큰 형님 집에 거주한 주환 집에서 세시 모여 삼봉을 치거나
유일하게 야회 전축이 있어 당시 조용필이 불렸던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오지 않는 강’을 듣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래곤 했다.
삼봉을 치면 빠꼼이 주환이 판이고 동현 이는 잘 하면 본전
난, 맨 날 이름 그대로 봉만 쓴다.
난, 그래서 울 아버지 원망도 해 보았다.
왜 하필 이면 ‘종 봉’ 이라고 지었을까 종치고 봉만 쓰는 이름으로
동현이는 화투를 칠 때마다 궁시렁 궁시렁 된다.
“종봉아! 넌 니 아버지가 그러는데 니네 조상이 놀음하다 한 분이 돌아가신
후 부터 백씨는 절대 돈을 못 딴 다고 하더라.”
“그래서 넌 놀음하면 안 돼야!”
“야 넌 삼봉치자고 할 땐 언제고 꼭 치면 그런 소리 하더라!”
“넌, 그렇게 약을 올리는 게 취미냐 썩을 놈아!”
어느 날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서 세시 모였다.
“주환 : 야! 요즘,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지 헛것이 보이고 그런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말인데 닭이나 한 마리 잡어먹자?”
“ 동헤니 너두 헛것이 보이야?”
“그라재...”
“너희들이 군기가 빠졌구만”
“닭 서리 하자구?”
“야 난 아직 현역이라 걸리면 큰일 난다! 군 영창 간다.”
“그랑께 우리 집 것 잡어 먹으면 돼지.”
“동헤니 느그 집 것도 잡어 먹자?”
“야! 우리 집 것은 안 돼! 씨암탉 밖에 없어”
“그럼 넌 먹지마!”
“주환 넌 양심도 없냐! 너희 형님 집에서 방위 받으면서 밥해줘 빨래해주고
잠까지 재워 주는데 닭도 잡어 먹겠다고 철회 떡 알면(큰형수) 좋아 하겠다.”
“그랑께 반찬을 잘 해주면 내가 이런 소리를 안 하제 나 지금 영향실조 걸린 것 같아”
“피골이 반쪽이다”
“무슨 얼굴만 좋구만 너 연애해서 그러지?”
결국 우린 모사꾼 의도대로 동현이와 둘이 깊은 밤에 주환 집으로 닭을 잡 으로 갔다.
“종봉아! 닭 잡을 라면 손을 꼴 마리(부랄밑) 속에다 넣고 따뜻하게 해라”
“그래야 닭이 안 놀랜다.”
많이 해본 솜씨다.
결국 잡아 와서 백숙을 해 수상한 남자들은 닭다리 하나씩 뜯고 난 채면 차린다고 닭목가지 좀 빨다가 소죽 좀 퍼주고 오니까 개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백숙 한 게 잘못 이지 살을 찢어 물을 많이 붓고 닭죽을 써야 했는데 엄청 후회 했다.
“야! 니들은 고기 한 번도 못 먹어 봤냐”
“한 마리 더 잡어 먹었으면 좋겠다ㅎㅎㅎㅎ.”
아침에 자고 있는데 살며시 문이 열린다.
눈을 떠 보니 주환이 큰 형님이다.
어떻게 알았지 아직 소화도 안 됐는데.
난 눈을 감아버리고 이불을 뒤집어 써 버렸다.
알고 보니 닭털이 우리 집까지 흘리는 걸 보면서 쫒아 왔다 한다.
우리는 주환 형수님에게 씨암닭 잡아먹었다고
거의 반죽음을 당했다.
오늘도 수상한 두 녀석이 또 날 달달 볶는다.
얼리버리(종봉)--- “안 된다니까 그렇게 할 수 없어!”
모사꾼(주환)----“그랑께 너보고 군기를 잡으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두명이 집에 안가고 있으니까 그걸 지적만 하라는 거지.”
바라잡이(동현)--- “그라재~”
모사꾼(주환)-----“근무 끝나면 집으로 퇴근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분소에 남아 있당 께 복부규정 위반이랑께 죄가 크당께!”
바람잡이(동현) ---- “걸리면 죽지 암~”
얼리버리(종봉)----- “복부규정 위반하고 나하고 뭔 상관이란가?”
모사꾼(주환)------ “상관이 있지 왜! 없어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여 김일성이 쳐 내려와 봐 무기고 단번에 털리지 근무를 개판으로 한당께 우린 아직 졸병이라 말도 한마디 못 한당께~”
바람잡이(동현) ------“ 맞어! 친구 좋다는 게 뭐여! 이럴 때 한번 손 좀 봐주라!”
얼리버리(종봉) ------“너희들! 언제부터 그렇게 국가에 충성 했냐! 너희 집에 독립운동 했던 조상이라도 있더냐?”
모사꾼(주환) -------“그랑께 잘 못 된 것을 바로 잡아 야제 그랑께 분소 방에서 몰래 화투도 친당께! 한 사람 망보고 이것이 잘 못 된 것 아니 여~~”
(얼리벌리(종봉)------“그렇게 근무가 개판이면 상급부대에다 보고를 해야지 왜 나보고 아무 상관없는 군기를 잡으라는 거여! 내가 볼 땐 너희 가 더 개판이다 삼봉이나 처서 친구 돈이나 따먹고 몰래 닭이 나 잡아먹고!! 안 그냐!”
바람잡이(동현) ---“연병 하네 그건 장난이제!”
바랍잡이(동현)----“그라고 최00,임00 이 자식들 특히 나뿌당께 손 좀 봐주라!”
얼리버리(종봉)----“참 귀여운 자식이네! 그런 거 거기서 해결 해 야지! 내가 왜 손 을 봐? 참 웃긴다.”
그러니까 수상한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분소에 근무하는 방위병들이 지위권이 잘 미치지 않아 근무 형태가 복무규정 되로 하지 않고 분대장이 마음대로 바뀌고 그러는데도 다 아는
중학교 동창 또는 초등학교 선,후배 들이 대부분인데 자기들은 기수가 낮아
아는 처지여서 말도 못 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병력이 장동과 임리 사람들이 많고.
그러니 나 보고 헌병으로 위장을 하고 분소에 가서 근무가 잘 못된 부분을 지적을 하고
약점을 잡고 군기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특히, 두 사람을 지적을 해준다.
손을 좀 봐주라고 난 당연히 거절을 했다.
두 놈이 고래 심줄보다 더 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결국 난 그들에게 설득을 당했기에 재미 삼아 이 글을 쓴다.
난, 처음에는 가볍게 상급부대 순찰정도 생각해서 잘 못된 부분을
지적만 해 주고 돌아 올려 했지만, 일이 커져버렸다.
난, 내가입고 있는 군복 계급장을 떼고 모자도 헌병대 모자 같이 위장을 하고
신분증도 위조를 했다.
그리고 디데이 날 세시서 밤 한시 넘겨 봉림 으로 향하는 갱변뚝을 걸어갔다.
난, 떨리기도 했지만, 아직도 철이 없음을 생각하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드디어 봉림에 도착했다.
지금은 그 흔적이 없지만, 무기고 분소가 옛날 가설극장 자리 왼쪽에 있고
남쪽으로 큰 창고가 있다.
두 사람은 냇가 징검다리 건너기전 대나무 숲에 숨어 있었다.
난, 정말 무척 떨렸다. 그렇지만 실행을 하기로 했고 난, 영화를 찍는
배우처럼 뒤에서 모사꾼이(주환) 이 레디액션을 외친다.
난, 모자를 푹 눌려 쓰고 힘차게 무기고로 갔다.
무기고 방에 불이 커져있다.
똑, 똑 문이 열린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대여섯 명의 방위 군인들이 의야 해 하며 나를 쳐다본다.
“분대장이 누군가!?”
“어디서 오셨습니까!?”
“31사 헌병대서 근태 점검 나왔다!”
근데, 이 방위들 별 의미를 깨달지 못 한 것 같다.
역시 군기가 빠졌나보다.
그러다가는 물렁하게 다뤘다간 내가 당할 수 있구나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제가 분대장입니다.”
“근무 현황판 가져와봐!”
현황판을 가져온다.
“오늘 근무자 몆명이야!”
“6명입니다.”
“현재인원 몆명이야!”
“8명입니다”
“2명이 왜 남아!”
“전체 집합시켜!”
난 내가 가짜 헌병이기에 정신없이 몰라 쳤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속전속결로 해결을 해야 한다.
집합하는 도중 분대장이 나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신분증 한번만 보여 주십시오”
“자 여기”
오래 쳐다본다.
“뭘 그렇게 오래 보는가!”
그러고 귀 방망이 후려 쳐 버렸다.
“너”
"옛!”
“기준”
“반팔 간격 일렬종대로 회쳐 모여!”
“이 세끼들 동작 봐라!”
내가 여기서 지날 떠는 것은 무서워서 그런다.
똥개가 부시럭 거림에도 밤에 짖은 것은 무섭기 때문에 짖는 것이다.
난 내가 가짜 헌병 행세를 하기 때문에 엄청 무섭기 때문........
“차렷”
“열중 쉬엇”
“앉어”
“일어섯!”
“너” “옛!” “이병 김00!”
“뻬트콩 같은 새끼가 왜 건들거려!”
“부동자세의 목적 한번 외워봐!”
차려 자세는 군인의 기본자세이다.
고로 내로는 군인정신이 충일하고 ......
“그런데 아는 세끼가 왜 그렇게 건들 거려”
그러고 귀 방망이를 후려 쳐 버리고 쪼인트을 까버렸다.
지금 무기고에서는 한 참 매 타작이다.
근데, 숨어있던 모사꾼, 바람잡이는 매 타작소리가 숨어있는
장소에 깊은 밤 고요를 깨고 타작 하는 소리가 잘 들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는 좋다고 킥킥 거리며 웃었다고 한다.
지 동료가 디지 게 얻어터지고 있는데.....
참 인간들이 비정하다.
“오는 근무 조 아닌 두 사람 나와!”
한 사람은 백용호 1년 선배 한 사람은 모름
“너”
“옛 일병 백용호”
“왜 집에 안 갔어 화투쳤지?”
“아닙니다.” “아니야? 다 첩보를 입수 했어!”
“이자식이” 귀 방망이 한 데 후려 갈겼다.
“다음 너”
“옛 이병 김 00”
“너 근무조가 아닌데 왜 퇴근 안했어?”
“왜 퇴근을 안 해 자식아!” 귀 방망이 후려치고 쪼인트 까임
“분대장!”
“옛 김00!”
“내일 아침 8시에 헌병대 차가온다 저 두 사람 태워간다
기다리고 있어라 알아 어 몰라 어!”
난 완벽하게 장악을 하고 장동무기고로 순찰 간다고 하고 걸어서 내려가는데
분대장이 시계를 하나 준다.
돈 가진 게 없으니 이거라도 가지고 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라고 하면서
“자식아 너 구속되고 싶어! 구속되기 싫으면 빨리 가져가!”
여기 까지는 완벽하게 나의 연기가 성공을 한다.
난, 군 체질도 아닌데 이런 행동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장동으로 내려가는 척 하며 수상한 남자와 합류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수상한 남자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며 좋아라고 떠들며 감촉 같이
속았을 거라고 날리다.
그건 착각이었다.
성공을 했다면 자기들이(주환 동현이) 해결사로 나서서 해결 하려 했다.
그런 시나리오도 있었다.
근데 아침에 헌병대 차가 와서 광주 31사로 가서 조사를 받은 다고 생각
하니 구속 될 수 있다고 하니 겁이 나서 그들이
급히 돈을 구해서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장동까지 따라 갔는데
내가 없더란다.
그래서 백용호가 분명 어디서 많이 본사람 내가 생각할 땐 분명 청용사람 같다.
했단다.
그날 저녁 샿샿히 청용을 뒤지고 다녔단다.
그래서 알아 버렸다.
오늘도 이장 집 앰프에서는 나를 찾는 소리가 귀전을 울린다.
“아~아~ 알려드립니다. 백종봉씨 께서는 지금즉시 방송실로
오십시오.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난, 등산가도 아닌데 또 산으로 도망을 가야 한다.
낮에는 산에서 살고 밤에 내려 왔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어느 정도 화가 풀리고 잠잠 해 지면 그때 가서 해결을
하려 했다.
날마다 분대장하고 다른 한 사람과 같이 와서 날 잡부로 다녔다.저녁이면 수상한 남자들과 만나 어떻게 해결 할지 의견을 나누웠다.
드디어 가겠다는 날짜를 정해 줬다.
다음날 밤 날 대리고 분대장외 딱 가리 수상한 남자 그리고 나 5명이
깽변뚝을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은근히 분대장을 위협을 했다.
“날 건들면 아마 봉림 분소 방위병들은 살아남지 못 할걸”
“알고 보니 도리 짓고땡도 하구 근무도 개판 이더구만”
“모든 걸 알고 있는 날 건들면... 죽을려면 무슨 짓을 못 하겠어!”
“아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서 그러니까
너무 개념 치 마시요”
난, 철저하게 방어막을 쳤다 왜! 내 죄가 넘 켰다 사칭, 위조, 폭행
드디어 도착을 했다.
우선 막걸이 두 병 안주 약간 전방에서 사서 방으로 들어갔다.
1년 선배 백용호가 보인다.
인상 팍 쓰고 있다.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주면서
“선배님! 선배님께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많이 맞은 사람이 오메! 이라고 본께 사람이 얆전하게 생겼구만 무슨 사람이
미친 개만치로 날뛰고 그랬당가”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랑께 누구 지시를 받고 사람을 고로케 패부런는지 후닥 말해 보랑께!”
분대장이 그만 하라고 제지를 시킨다.
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이 문제는 그냥 여기서 덮자고 단호하게 얘기 했다.
여기서 문제를 노출 시켜봤자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
그전에 주환이 해결사로 나서 분대장하고 조율된 것도 있다.
결론을 얘기 하자면 문제를 만든 것도 주환 이고 해결도
주환 역할이 컸다.
결자해지 [結者解之] 지라 할까
며칠 지나 또 수상한 두 남자가 나를 찾아 왔다.
난 겁이 난다.
또 무슨 수작을 벌리고 싶어서 그러는지.
“야! 종봉아 분소에서 축구한번 하 잖디”
“야!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 싶다냐! 그렇게 맞아 놓고”
“나 같으면 다신보고 싶지 않을 건디”
“그랑께 돈 내기를 하잖다.”
그들은 심심하면 축구를 자주 했나보다.
나에게 당한 것도 좀 값아 주고 돈도 좀 따먹고 축구로 하면
자신을 했나보다. 난, 그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응 해 주었다.
분소 팀은 주환이 주장이고
청용 팀은 내가 주장을 맡았다.
급한 대로 팀을 꾸렸다.
청용에서 공을 잘 차는 애들이 (상문선배동생) -용필 (순식 동생) - 해수,
(정수 동생) - 경수
주축이 되어 난, 감독겸 골키퍼 맡고
돈도 꽤 크게 걸었다.
게임이 시작되어 팽팽하게 일진일퇴 을 거듭하며
후반 끝날 무렵 까지 점수가 나질 않았다.
그러데 수비수 경수가 점수가 나질 않자 승부수를 띄웠다.
우리 측 하프라인을 넘어 우측 나인 타고 쏜살같이 수비수를
2명을 젖히고 중거리 슛 팅 그냥 골 망으로 들어간다.
그대로 게임 끝
정수동생 경수는 코 흘리게 코 밑에 항시 하얀 게 붙어 있었다.
그런 애가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양 그룹에 입사 하여
동양그룹 린나이 개열사 사장이다.
난, 수상한 남자들이 또 나를 찾아와서
또 수상한 짖을 하자고 할지 몰라 겁이 나서
돈 팔천원만 갖고 추운겨울 서울로 도망을 쳐 버렸다.
그래서 지금 까지 서울서 살고 있다.
이 사건은 37년이 지난 것 같다.
그때 나에게 별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리면서 지금 까지 재미없는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오래 전 일을 자세히도 기억하고 있구먼 ㅎㅎㅎㅎ
그것도 즐거운 추억이지 않겠는가 ㅎㅎㅎ
교장 설 연휴 날 보내고 있는지....
떡국은 잘 먹었고
먹기가 정말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먹으니 한 살 더 흐미~~그럼 몇 살이지 ㅎㅎㅎㅎ
새해는 결심 한 것 좀 있는지?
옛말에
해가 게으르면 날씨가 더워지고
달이 게으르면 추워서 못 살고
군주가 게으르면 나라가 못 살구
가장이 게으르면 집안이 가난 한다고 하는데
이번 정초에 게으름을 열심히 팔아
을미년 새해는 게으름이 없는 생활로 가정이 윤택
해 지도록 노력 하자 구요.
난, 지금도 철이 없지만, 옛날 철이 정말 없는 것 같아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다닌 것 같아서 ㅎㅎㅎㅎ
지금 관점으로 본 다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정말 이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어 진거지.
그 시절 병력 관리 체계나 무기고 관리가 너무 허술하기도 했고.
한 개인이 무기고을 급습해서 병력을 유린하구 농락을 한다는 것은
큰 범죄를 저질은 거지 세상에 알려 졌다면 큰 사건이 될 수도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덮어 져서 나에게 행운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이기에 한 번씩 추억하게 되네.
혹시, 님들께서 오해 할까봐 걱정도 되고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정신세계의 비롯된 하나의 꾸임일 뿐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해 해 주길
바라네.
그리고 잘 못된 지난 일에 대해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된
된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하구
또 글을 재미나게 멋을 부리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친구에게 넘기는 듯
하는 내용도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구
근데, 이것저것 따지면 글이 안 돼......
그래서 글쓰기가 참 어렵네. 교장^^^
남는 설 연휴 잘 보네시게나..........
우리 사이에 무슨 형식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생각나는대로 쓰는 게 좋은 거지 ㅎㅎㅎ
고향을 가지 못해 좀 그랬지만 그런대로 좋은 시간 보내고
잠들기 전에 카페가 궁금하여 들렸더니 역시나 모범생들은
자취를 남겼구먼~
고맙네!!!
정말 말로만 들었던 얘기를 글로 풀어 읽으니 새삼 스럽군 누구에게나 잊지못할 추억은 있기마련이지!!!좋은추억 잘 간직하시게....
아름다운 추억의 그림이 청용에서 봉리까지 훤하게 그려지네그려....그리고 그 아름다운 달밤의 갱변뚝... 나에게도 갱변뚝의 추억이 새록새록 하이.. 난 친구처럼 와일드하진 않지만 로맨틱한 추억이 몇건있었지..ㅋㅋㅋㅋㅋㅋㅋㅋ
엊그제만 하더라고 엄동설한 이더니만 입춘을 지나니
봄에 기운을 느껴지네. 막내 성~
우리가 유년시설이나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깽변의 추억을 빼고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깽변은 우리들의 낭만과 추억이 설어있는 우리들의 놀이터였지 안나 싶네.
발원지 월곡리 에서 시작하여 우산을 지나면서 노루목 계곡에서 흐르는 물과
만나 대평리 계곡에서 흐른 물과 합쳐지면 봉 림 에서 제법 큰 냇물이 형성되어
청용리 앞을 지나면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냇물을 보면서 유년기를 보냈지 않나 싶네.
겨울이면 물이 얼어 스케이트도 타고 여름이면 물장구치고 수영도 하며 고기도 잡고 물새알도 줍고 석정리 물이 많은
@백월주 신동원이 보에서 입수하여 고기 총 쏴고 놀다 싫증나면 금산 보까지 가서 물 행기에서 다이빙하며하며 놀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네 막내성!~
오 유월 삼복더위 청용 다리 위쪽에서 더운 여름밤에 여인들이 목욕을 하면 뚝 밑에 숨어서 짓궂은 애들과 같이 훔쳐 보던 생각도 나는 것 같고 깽변은 우리들의 생명이요.
어머니의 젓줄 인데 지금은 가잿등 농공 단에서 폐수를 버려 물이 맑지를 안 더이다. 막내 성~~
깽병뚝에서의 로맥틱한 추억을 얘기 함 해보시게 글구 장동 슈퍼집 첫 사랑 얘기도 궁금하기도 하구
마음속에만 담아두지말고 너무도 많이 흘러버린 세월을 흔적들을 털어 놔 보시게 막내 성~~
시간이 나거든 추억보따리 펼쳐 보시게 ㅎㅎㅎ
참 그 시절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우리가 자랐던 그곳은 유난히도 이야기 거리가 많았지?
추억을 더듬어 가면서 하나씩 들추어 보자구 월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