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이동해 내일의 일정을 소개하며 각자의 방으로 안내했지만, 함께하고 싶은 마음 어쩔 수 없어 간단한 맥주와 다과를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밤이 깊어서야 부부끼리 꿈나라 여행을 즐기고 아침을 맞았다. 편안한 잠자리 덕분에 여느 때보다 더 즐거운 모습으로 해장국집으로 향하는데, 예약한 집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바로 옆집으로 가서 뼈다귀해장국 우거지해장국 새끼보국밥 등을 주문해 맛있게 아침을 열었다. 새끼보국밥은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나오는 태반과 탯줄을 재료로 만드는 향토음식이라 색다른 맛을 기대하고 먹어봤지만 내 입맛에는 안 맞아 아쉬웠다.
수만리들국화마을을 지나 화순의 젖줄 위에 생긴 호수 서성제로 향한다. 서성제는 화순군청 동쪽 가까이 자리한 큰 호수로 동천이 흐르는 험한 계곡지형이 완만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1967년에 제방을 쌓으면서 호수가 생겼다. 호수로 뻗은 좁은 길을 지나면 비통함을 달래려 세운 정자 환산정이 있다. 환산정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천 류함 선생이 통곡하며 은거하려고 세운 정자다. 류함 선생은 청나라를 상대로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 의병장 조수성 청감대장과 함께 의병부장으로 활동한 인물로 이곳에서 오랑캐를 다 무찌르지 못함을 통곡하며 우국의 한을 삭였다고 한다.
환산정 앞 나무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니 화순 ‘군민의 노래’ 한 구절인 “산이나 골짜기나 어디를 가나 도처에 문화의 향기 넘치고 조상의 의로운 뜻 높이 받들어 묵밭을 일구듯이 땀을 흘린다. 마을마다 얼굴마다 정다운 고향”이 썩 잘 어울리고, 호수에 생긴 반영도 너무 아름다워 한참 명상에 잠겼다가 화순적벽으로 향한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60호인 화순적벽은 중국 양자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이름했는데, 1984년 상수도 보호구역에 묶여 출입이 금지됐다가 지난해 10월부터 개방됐지만 미리 예약해 제한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을 몰라 동복호의 아름다운 절경과 화순적벽 망향정 등을 뒤로한 채 호수를 돌아 물염정으로 향한다.
조선 중·명종 때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이라는 사람이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언덕 위에 세운 정자 물염정에 올라 소나무숲 속의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 단애의 풍치를 정자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선이 노닐던 선경 속으로 빠져들게 할 만큼 멋진 절경을 연출한다. 방랑시인인 김삿갓은 이곳 화순에서 생을 마치기 전에 물염정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 해 정자 근처에 동상과 7폭의 시비 등이 조성돼 있다. 동복유격장 앞을 지나면서는 초급장교 시절 극기훈련으로 힘들었던 기억을 새롭게 해 온몸에 새로운 힘이 불끈 솟는 듯했다.
동복면을 지나면서 도원서원과 동복향교도 들렀는데, 도원서원은 숙종 14년에 도원(道源)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도원서원으로 불렸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됐으나 초계 최씨 후손들에 의해 1975년 유허비가 세워졌다. 동복향교는 동복현의 관아터였던 동복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월송마을의 향교산이라는 얕은 구릉 위에 정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창건 이래 한 번의 폐교와 세 번의 이건을 거듭해 다른 향교와 같이 중수와 보수를 하면서 학교기관으로 향유들의 집결지로서 활동을 계속해 왔다.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에는 ‘삿갓동산’을 조성해 놓았는데, 이는 김삿갓이 35세 때인 1841년에 전라도로 내려와 광주에서 무등산 장불치를 넘어 꿈에도 그리던 화순적벽을 보고 “無等山高松下在 赤壁江深沙上流(무등산이 높다하여도 소나무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하여도 모래 위로 흐르더라!)”라고 풍자시를 짓는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1863년 3월 29일에 57세를 일기로 동복면 구암리 창원 정씨 사랑채에서 사망해 구암마을 동편 동뫼등에 초장됐는데, 3년 후에 차남 익균에 의해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와석리로 이장됐다. 김삿갓은 생전에 동복을 세 번이나 찾았고 6년간 머무르면서 많은 흔적을 남겼기에 동상과 시비를 건립해 유적지 문화콘텐츠사업 등을 병행해 화순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선 시인인 김삿갓에 빠졌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라 벌써 점심시간이 많이 지났다. 시골길을 달려 전원회관으로 들어서는데 이 시간에도 손님은 만원이다. 짱뚱어탕과 짱뚱어전을 시켰는데, 짱뚱어를 삶은 국물에 된장을 풀고 붉은 고추 간 것, 무청시래기 애호박 대파 등을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국간장과 다진 마늘·생강을 넣고 간을 맞춰 다진 풋고추를 고명으로 얹어 나온 짱뚱어탕은 제철이 아니라도 맛이 일품이고, 짱뚱어전도 추가해 먹을 정도였다.
짱뚱어탕 맛에 젖었다가 오래전 좋았던 기억으로만 가득했던 운주사를 찾았다. 운주사의 창건과 천불천탑의 건립은 통일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풍수지리설에 의하며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하루 밤낮에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 갈 무렵 일하기 싫은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날이 샌 줄 알고 모두 하늘나라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됐다고 하며,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서울이 된다고 전해온다. 운주사를 끝으로 함께했던 벗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광주로 향하는 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순 고인돌유적을 둘러보며 화순이야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