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우석이가 올해 5학년이 되면서
축구 은사개발반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을 해서 들어갔습니다.
학교대표 축구부에 들어간 것이죠.
우석이의 축구에 대한 몰입은 재작년 2010년 월드컵 축구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작년 아빠캠프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사실 그날은 비가 와 별이 없었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에
자기의 장래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해서 나는 그날 분위기 상 겉으로는 그러냐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니 엄마가 가만 두진 않을 걸....'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4학년 초에 축구 은사개발반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떨어지고 나서
더욱 우석이는 축구에 집착했습니다.
방과후 비가 오는 날에도 운동장 주변을 서성이며 이미 뽑힌 아이들이 축구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어느 날은 자기네 반 애들로 축구팀을 만들어 축구은사반 애들한테 한 게임 붙자고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었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 자기 혼자 다시 오디션을 보았는데
자기 말로는 무지막지하게 잘 봤다고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디션에서 3대3 미니 게임을 해서 자기 팀이 5:0으로 이겼는데 그 5골을 모두 자기가 넣었다고 자랑했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날 아내가 담당 체육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는데,
우석이가 부모 몰래 오디션을 봐서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전화였습니다.
아내는 당연히 "No"였습니다.
피아노 학원도 가야하고, 영어학원도 가야하는데 무슨 축구냐는 것이었지요.
엄마의 입장을 전해들은 우석이는 그래도 설마 했는데 엄마의 강경한 태도에 그냥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황을 전해들은 아내의 직장 동료(선생님들, 도우미 선생님들)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냐고 아내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두 아들을 다 축구 은사반에 보낸 어느 학부모는(한영이, 준영이 엄마)
축구부에 들어간 아이들이 얼마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반듯한 생활을 하는지 모른다고 마구 자랑하는 통에
귀가 얇은 아내는 다시 체육 선생님께 전화를 걸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들을 다시 합격자 명단에 넣어 발표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 간발의 차이, 체육 선생님의 배려로 우석이는 드디어 축구 은사반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며칠 뒤 백넘버 21번을 단 유니폼을 맞춰 입은 우석이가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문 앞에 서 있다가 나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음~, 아빠가 좋아하는 숫자 21번이군' 하며 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주었습니다.
'왜 아빠는 21번을 좋아해요?" 묻길래
"내생일이 8월 21일이거든, 그래서 21이란 숫자는 나에게 너무나 친숙한 숫자지.'하고 말해 주었더니
우석은 더 신나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 드디어 우석이가 속한 학교 대표팀이 수원시장기 대회에 나간다고 아내가 전화를 해줘서
얼른 차를 몰고 경기가 있는 영흥공원 잔디구장으로 갔습니다.
3달 전부터 프리랜서가 되니(실직자 수준의) 이런 자유 시간이 있어 좋구나 생각되었습니다.
하얗게 유니폼을 입은 우석이네 팀 아이들이 게임전에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등번호 21번이 금방 눈에 들어와 나의 시선은 거기에 계속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양팀의 선수들이 코치를 중심으로 빙 둘러 서서 작전 지시를 받고 운동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등 번호 21번은 운동장으로 나가질 않고 벤치 쪽에 저학년 아이들과 나란히 줄지어 않아 있었습니다.
후보 선수인 것이지요.
같이 따라 온 동생 윤석이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형아가 5학년 중 유일한 후보선수야."
첫경기 20분씩 전후반 40분이 끝나는 호각소리가 났습니다.
경기 결과는 1:0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친구들이 뛰는 모습만 지켜봐야 했던 등번호 21번 선수는 아이스박스를 혼자 끌고 우리편 응원단이 있는
관중석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박스를 왜 궂이 저녀석이 끌고 다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석이 나와 동생을 발견하고 시익 웃었습니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내의 지시대로 우석이와 윤석이를 피아노 학원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태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마치 축구 전문가라도 되는냥 코치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축구에도 '조커'라는게 있어. 히든 카드라고도 하지. 전반전에는 벤치에 앉아 힘을 비축하는 거야.
그리고 후반에 교체되어 경기장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 일을 내는거지.
만회골 아니면, 역전골을 만들어 내는 선수야. 그 기회를 최대한 살려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 보이는거지.
우석, 너의 역할은 바로 그거야. 그러니 벤치에 앉아 있더라도 딴 짓을 하지 말고 게임을 계속 읽고 있어야 해.
어디가 구멍인지, 상대 선수중에 누가 어리버리한지를 파악하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바로 그 구멍을 찾아 뚫고 달리는 거야."
두번째 경기가 있는 날도 오전에는 대전에 가서 일을 하고
불야불야 달려 경기장에 갔습니다. 오후 4시 10분, 8강전이었습니다.
이 날도 등번호 21번 선수는 경기 내내 벤치를 지키고 있다가 경기가 끝나자
아이스박스를 끌고 우리편 관중석으로 왔습니다.
게임 결과는 0:0 무승부여서 승부차기로 가서 5:4로 간신히 이겼습니다.
우석이 또 시익 웃으며 내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아빠, 우리편 골키퍼가 저쪽 팀 마지막 키커의 볼을 잡아내는 것을 보았어? 멋 있었지?
난 기도하느라고 눈 감고 있었기 때문에 못 보았어.
나도 기도로 저 경기장에서 우리 팀 선수들과 함께 뛰었거든...."
야! 이것 참, 전 세계인이 보는 신앙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릴 내용의 문장을 얘가 구사를 했습니다.
"엄마한테 자신있게 할 말이 있어. 난, 기도로 함께 뛰었다고..."
어제 후보선수라는 말에 짱난다는 엄마의 반응을 의식하고 오늘은 어떻게 말할까 아이가 맘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4강전이 있는 날, 엄마들이 주축이 된 응원단에 아빠가 때마다 나타나는 것이
너무 실업자 티 내는 것 같아 축구장엘 안갔습니다.
어제 우석이가 가장 친하다는 동료선수 경진이가 내 뱉은 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내일은 너나 나나 뛸 수 있을거야. 이기면 결승까지 2게임을 뛰어야 하거든. 그러면 한번은 기회가 올거야"
경진이의 예상대로 우리 우석이도 운동장엘 한번 나서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빙빙 돌았습니다.
오후가 되어 아내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우석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 가라는 지시입니다.
체육 선생님께 전화를 해보니 오전 게임에서 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오후에 게임이 없다고 했답니다.
차를 몰아 집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운동장엘 갔습니다.
우석이가 안보였습니다.
학교로 딴 차를 타고 가버려서 서로 길이 엇갈렸습니다.
학교로 가서 기다렸더니 우석이가 스포츠 백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시익 웃더니 "오늘 후반전에 교체 선수로 들어가 8분정도 뛰었어" 라고 말합니다.
나도 모르게 반색을 하며
"만회골이나 역전골은 못 넣었니?"
"저쪽 골키퍼가 엄청나게 잘 하는 선수야. 도저히 안돼."
" 너 몇번이나 공잡아 봤니?"
"볼 터치 말이지? 한 열번 정도? 패스도 많이 했어."
"그래, 장하다. 어쨌던 데뷔전을 치렀구나. 그런데 그 역사적인 순간을 이 아빠가 놓쳐구나.
어쨌던 넌 조커야, 히든 카드야. 언젠가 나타나는 인생역전의 순간을 놓치지 말고 꼭 찾아 먹어야 해. 알았지?"
비록 후반 교체선수였지만 운동장에 나섰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스포츠는, 특히 단체 경기는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 대표 농구선수였던지라
그렇게 줄곧 느껴왔습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을 배우는 것, 그리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것, 솔선해서 뭔가 좋은 일을 해보려는 하는 것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지요
우석이도 며칠 사이 인생을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좋은, 값진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남이 뭐라던 의연하게 반응하며 시익 웃을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녀석이 기특합니다.
첫댓글 우석이의 말이 어쩜 그리도 감동적인지요...
공원이 영통 3단지 뒤에 있는거죠류를 발견했더랬죠
"엄마한테 자신있게 할 말이 있어. 난, 기도로 함께 뛰었다고..."
틀림없이 우석이는 아주 아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거예요.
중기초 축구부의 넘버원 이 우석
아, 그리고 영
지난 화요일날 점심 먹고 산책하다가 거기 축구장까지 갔었는데
무슨 대회를 하는지 축구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게 아마 그 대회였나 봅니다.
저는 그 날 버섯 찾는다고 산책나갔답니다.
축구장 근처에서 새로운 버섯 한
점심 시간에 버섯 찾으러 꽤 멀리 오셨네요. 숲속에 예쁜 인조 잔디구장이 있더군요. 아카시아, 밤꽃 향기가 마구 날리는...
안에 있기가 넘 심심해서리
지난 주부터 야산 부근이나 공원으로 산책나가고 있답니다.
시간 되실 때 점심이나 같이 드시죠^^
이 글을 읽으며서 괜히 눈물이 글썽글썽 하네요.....
아이들이 엄마의 맘을 어찌나 그리도 잘 아는지....
엄마입장에서 보기에 대견하고 사랑스런 우석이네요...
우석이가 멋진 주전이 되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우석 파이팅!!!
참, 영흥공원은 우리 시은이네 유치원에서도 산책을 자주 나가는 공원이랍니다 ^^
멋진주말 되세요^^
ㅎㅎ 저희 교도소도 법무부장관배 축구대회에 7월2일 참가합니다.
저는 골키퍼고 백넘버는 짭빱으로 따낼수 있는데 아직 안 정했습니다. 전 20번을 제일 좋아하고 안되면 21~23번까지 좋아합니다. 제 고등학교때 번호들이라서요,,,ㅎㅎ
참고로 저는 얼마전 전직원 체육대회서 저희과 주전 골키퍼로 나섰지만,,,,우승1순위팀에게 계속 공격만 당하다 1:0으로 졌습니다. 참고로 그팀이 1등을 했고 다른팀들은 다 3실점씩 했습니다. 그바람에 골넣은 선수보다 제가 빛이 나서 소장님 이하 전직원이 칭찬을 해주더라구요..ㅎㅎ 졌지만 기분이 좋아졌고 이번 대회에 우선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양보에 미덕을 보이고 어린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기위해 1등팀 골키퍼에게 네가 주전해라, 내가 후보할께, 라고 하고 저는 자진 후보로 대회에 참가합니다. 저희 팀의 이름은 소망fc랍니다,,ㅋㅋ
법무연수원에서 시합하는데 한가하신분 구경오셔서 응원부탁드립니다, 저또한 우석이처럼 기도로 응원하렵니다.!
근데 우석이 참 잘하던데 다른 중앙애들 실력이 만많치 않은가보죠? 언제 저희 소망fc와 중앙초딩과 한판해야겠는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