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도 깨우는 밀교의 주문 같은 시를 - 유안진
이 한 편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고 선언할 수 있는 시를,
쓰고 나선 죽어도 좋다 싶은 시를, 다시 더 쓸 필요가
없다고 절필하게 하는 시 한 편을 써보고 죽고 싶다.
죽을 때도 그 한 편을 외우면 행복하게 죽게 되는
그런 시를, 죽은 자도 일으키는 밀교의 주문 같은 시를,
독초의 꽃처럼 눈길만 마주쳐도 까무라치게 하는 시를,
첫 구절만 읽고 나도 홀연 기절하게 되는 시를 쓰고 싶다.
매운 고추보다 더 맵고 아린 시를, 한번 읽고나면
인생을 바꿔버리게 하는 시를, 쓰고 나서도 읽고 나서도
몇 달씩 잠 못들게 하는 시를 써보고 싶다.
사랑과 평화와 정의 자체이신 신(神)을 뜨거운 눈물로
체험시키는 시를 써보고 싶다. 소원과 실제는 늘 어긋
나고 어긋날수록 비극은 더 기막힌 비극으로 자라가는,
소원은 언제나 소원으로 끝이나고, 비재 박덕한 나는
시인이라는 이름만으로서도 감지덕지 불운과 불행에
눈물겨운 감사를 곱씹어야 할 뿐이니, 시인에게서
이보다 더한 재앙이 다시 있을까?
만 번에 만 번을 더 낮추고 감추고 눌어 잠재워서 시를
쓰는 나 자신 하나만이라도 쓰고 나서 시인이기를
작파해 버리고 싶어지지 않을 만한 정도쯤만이라도,
시가 영영 나의 재앙이요 불운이라는 불길한 예감
만이라도 들지 않게 되는 그런 시를, 정성을 더 바치면
보다 나은 작품 하나 쓸 수 있을 거라는 눈물겹도록
갸륵한 희망이라도 갖게 해주는 시를 쓰고 싶을 뿐이다.
쓰고 나면 갑자기 가슴이 짜아해지는 시를, 쑥향기
풍기는 쌉싸롬한 시를, 가슴에 깊어지는 우물 하나
파주는 시를, 겨울 햇살처럼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뿐인
작고 작은 겸손이라도 감격스런, 사랑이라도 사모치는
눈물로 어룽져 번지게 하는 고정도의 소망에나마
목을 매고 싶다.
시신(詩神)이여! 어디서 듣고는 있는가?
그래도 비웃는가? 제발 낯 돌려 날 좀 봐! 나 아직도
정녕 싹수 있는 시인인가? 내가 쓰는 시로 하여
눈물방울만큼이라도 나 사는 세상이 맑아지고 밝아지고
따스해지는가? 그 정도만이라도 바라고 바라면서
쓰고 싶어라.
첫댓글 是是昰多 是是昰多, 詩詩昰尼羅 詩詩昰尼羅!하고 내 주문을 외워 봅니다.
앞의 두 자는 '바를 시'字고 세 번째 글자는 '옳을 하'字입니다.
신새벽에 주신 말씀, 기억해 두겠습니다.
환절기에 건안하시기 빕니다 _()_
죽은 이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주문 같은 시에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선생님, 저는 좋은 시를 써보자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읽는 일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절필하게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시는 꿈에도 싫고.... 그러나 산나물도 되고 독사도 되는 시는 꿈꾸고 싶은... ..
좀 무더웠던 것 같아요.. 본격적인 환절기니 휴지를 벗으로 삼고 지내고 있네요..
-산나물도 되고 독사도 되는 시..... 오늘 밤 잠자리에 들때까지 머릿속에 뱅뱅 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멀고 먼 길이지만 평생 같이 해줄 친구처럼,
'시를 모르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공감합니다. 그 말이, 그 이야기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때 詩가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길가에는 언제나 꽃이 피는 것,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 조차도 神의 노래, 그 음율들 속에 나를 실어 보는 거룩한 순간에 시를 낳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 밤, 가슴을 두드립니다 _()_
동산시인님이 써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스님, 그간 건안하신지요?
(저는 좋은 시인의 시향을 가까히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