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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동양철학을 말한다 - 이케다 다이사쿠 · 로케시 찬드라
"석존의 삶을 추구하는 불교적 인간주의 사상"
"법은 스스로 넓혀지지 않는다. 사람이 법을 넓히기에 사람과 법(人法)이 함께 존귀하다"는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서의 문구 중 하나이다.
불법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이 문구는 종교상에 있어 자칫 교리에 가려져 등한시될 수 있는 신도, 즉 인간의 가치를 최대로 찬탄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종교에 있어 자신들의 법과 인간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인간의 가치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임이 분명하리라.
불법은 인간주의, 생명주의, 우주주의를 표방하는 철학 중 하나이고 이 책은 그러한 불법의 철학을 바탕으로 로케시 찬드라 박사와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이라는 두 철학자의 대담을 엮고 있다.
사실 배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이 책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이 책의 내용이 나와 정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①나는 이 책에서 '불법철학의 실천단체'라 일컬어지는 창가학회의 신도이다.
②나는 이 책 『동양철학을 말한다』의 주제와 맥을 같이 하는 '법화경-평화와 공생의 메시지전'의 도슨트다.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독자라기보다는 '평론가'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되도록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짚어가며, 함께 납득해가는 방향으로 이 책을 바라보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관련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1장부터 15장에 걸쳐, 두 철학자의 개인적인 체험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불교의 인간주의적 철학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나아가 불교적 관점을 통한 미래의 범지구적 생명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불교가 '동양철학'을 대표하는 근거가 무엇인가?”였다.
이 책은 동양의 실용적 인간주의 학문의 내용을 담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불교'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인, 인도인 학자의 철학적 대담이니 '동양철학을 말한다'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발상이고, 불교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과감히 '동양철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영락없는 문화 사대주의이다.
이는 두 철학자의 '철학에 대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두 철학자는 기독교, 유교, 바라문교를 거론할 때 '교리'보다는 '인간의 생에 어떠한 의미,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를테면 유교를 그저 고리타분하고 관료주의적인 사상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궁극적 도리의 극치를 확립하고, 이에 기반하여 인생의 천명(天命)을 수행함으로써 '현실속의 삶과 초월적 가치를 동시에 지향하는 사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는 두 철학자가 철학의 가치를 이론 쟁이가 아닌, 생활 속 실천에 두기 때문이다.
모든 철학과 종교들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정의한다는 점에서 '인간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두 철학자는 불교의 인간주의적 가치관을 통해 동양사상이라는 거대 주제를 포괄적으로 논할 수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대한 온라인 서평을 보면 한가지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두 학자간의 오가는 '칭송'(?)에 대해 호불호가 대단히(!) 크게 갈린다는 것이다.
호평하는 쪽은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에서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이고, 불평하는 쪽은 '너무 심하게 서로 띄워주기 식이다.'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서평을 보면 '부담스럽다'라는 쪽이 아무래도 대세인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두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도문화국제아카데미의 이사장인 로케시 찬드라 박사는 부처가 태어난 땅인 인도인이자 불교계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태권도계의 전세계 1인자인 한국인'이랄까. 말하자면 정통성과 학문적 권위에 있어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것이다.
불교계의 이 인물이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을 유달리 찬탄하는 것은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이 불교의 본래 정신인 '만인성불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단체인 창가학회의 회장이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불교단체 중에, 왜 굳이 '창가학회가 만인성불을 실천한다는 것인가'라고 한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실천여부라고 할 수 있겠다.
광선유포란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라는 법화경 약왕보살품에 나오는 단어로 불교의 '이상적 사회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불교계에서는 일명 '이상적인 세상'을 그린 또 하나의 단어로 유명한 것이 '극락정토'가 있다.
이 두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극락정토는 '부처가 데려다주는 곳'이고, 광선유포는 '부처의 법을 '내가 직접' 알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자는 '부처에게 데려달라는' 즉 부처에게 '의지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부처의 법을 행동하고 알린다' 즉 '내가 부처와 같은 행동을 한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극락정토와 광선유포의 차이는 '부처를 기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부처의 삶을 살 것인가'의 차이라고 보아도 좋다.
찬드라 박사는 "대승불교는 '석존(부처)이 산 것처럼 살아라.' '석존의 본질에 다가가라'는 운동입니다."로 간단히 정의하고, '부처의 삶을 살아가는 운동' 인 광선유포를 지향하는 불교단체는 창가학회라고 단언한다.
경건한 종교인에게 있어, 참된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찬드라박사의 '찬양(?)에 가까운 덕담'은 대승불교가 회귀하고자 했던 본질인, '부처의 삶을 살아라.'를 현대에서 실천하고 있는 단체인 창가학회에 대한, 불교인으로서의 경의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광선유포는 단순히 다른 종교대신 '불교를 많이 믿어라.'는 사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세상 사람들 모두 모두가 소중해요'와 같은 상호존중운동에 더 가깝다. 굳이 정의하자면 상호존중세계평화범지구적생명주의운동이랄까.(헥헥) 이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여기선 짧게 줄이고자 한다.)
이 책의 한 가지 특징이라면, 모든 사상들을 철저히 실용주의적으로 분석하고 인간의 '내재된 가능성을 발현하는 기제'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인생은 고(苦)이다' 내지 '마음을 비우는 종교'라고 느껴지는 불교, 예의범절을 따지고 관료적으로 느껴지는 유교를 실용적인 학문으로 설명하는 것은 철학에 무지한 현대인들에게 대단히 새로운 관점을 시사한다.
책에서는 위대한 철학들을 인간의 드라마로 재해석함으로써, 관념론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철학 하나하나에 내재된 '인간 행동의 본질'에 주목하고 있다.
가령 이 책에서는
'범천이 석존에게 세 번 간청해서, 석존이 불법을 알린 것'을 '석존이 내적갈등과 번뇌를 뿌리치고 용기를 내서 민중에게 다가간 것'으로 해석하고,
석존의 '불교유포활동'은 '제자들이 석존을 대신해서 스승과 같은 홀로 서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공자의 논어는 '신비주의를 멀리하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라'는 철저한 인간사(事)의 철학으로 그려지고 있다.
책의 철학들은 하나하나 관념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현실적, 실천적, 행동적이라는 점에서 두 철학자가 공유하는 가치관이 '행동하는 철학'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입문자'에겐 여러모로 어려운 책인게 사실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이미 깊이 있는 연대가 형성된 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제3자인 독자들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장이나 기본 배경지식을 깔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부분은 관련 용어를 아는 것을 떠나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난해하기 그지없다. 드라마로 치자면 배경설명을 하는 초중반을 잘라먹고 바로 본론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불법의 인간주의, 생명주의 사상을 근거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다차원적인 접근법은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겐 풍부한 영감을 낳을거라고 생각되나, 모르는 사람들에겐 난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관련 내용들을 사전으로 찾아가며 읽더라도, 단기간에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철학관이라는 것이 자신의 기심에 온전히 자리 잡기까지는 이른바 '관념의 소화'라고 할 만한 일정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조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명화, 명저라는 것은 보물이 그득하게 쌓인 창고와 같은 면이 있다.
자신의 그릇이 10 이라면 10만큼을 느낄 수 있고, 100이라면 100만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두고 온 보물이 많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당신의 손에는 이미 두 손으로 안기도 힘든 만큼의 보물로 가득하니까.
그와는 반면, 배경지식이 깔려 있다면 이 책에서 보물을 구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인데 불법의 철학에 대해 참으로 절묘한 문구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불교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당신의 신체는 그대의 감각과 존엄의 전당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당신이 인간의 보편성과 보편적인 인간상을 구하는 곳입니다. 안으로 눈을 돌립시다. 당신은 부처입니다.' 자기실현은 부처의 진수입니다." - 로케시 찬드라, 8장 석존의 깨달음 中
이 문구는 모든 사람들은 부처가 될 수 있음과 동시에, 부처의 '자기실현적인 모습'을 명확하게 나타낸 것이다. 만인성불이라 하여, 모든 사람들은 부처-라고 이야기해도 '이미 당신은 부처입니다.'라고 해버리면 더 이상 현실 속에서의 발전이 없다.
찬드라박사의 이 같은 발언은 모든 사람들의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밝힘과 동시에, 불법의 진수는 '종교적 희생'이나 '포기'가 아닌 자기자신의 가치의 실현, 즉 자체현조(自體顯照)임을 밝힌 것이다.
이 '자기실현'에 대해 찬드라박사는 꽤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불교의 목표는 '성불' 다시 말해 자기실현, 자기완성입니다. 자기실현은 관념론이나 일시적인 위안이 아닙니다. 현실세계에서 자신에게 즉(卽)하여 인간적 가치관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또 타자에게 봉사함으로써 인간적 가치관과 대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인간혁명을 뜻합니다."
이는 찬드라 박사가 실용적, 현실적 관점을 추구하는 인물로 불교의 가장 중요한 의의를 '인간의 가치창조'로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개인의 체험에 의거하여, 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불법의 진리인 자비, 평등, 인간의 가능성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모든 파트에선 하나같이 불법의 묘리인,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내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8장 석존의 깨달음 - 인간의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석존을 허구적인 존재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한계와 괴로움을 극복하는 '투쟁하는' 석존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찬드라 : 석존의 성도라고 하면 왠지 정적의 이미지가 늘 따라다니는데 실제는 다릅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투쟁이었습니다. 성도에 이르기까지 석존은 인생의 아픔, 고뇌, 고생, 눈물을 오랜 기간 숙려하고 깊이 명상해야 했습니다. 석존은 마의 유혹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케다 : "불법은 승부입니다. 부처를 '승자'라고 합니다. 마와 맞서 싸우는 투쟁 없이 깨달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석존의 불전인 '랄리타비스타라(Lalitravistara)에서 석존은 자신을 두고 '내 정신은 하늘에 부는 바람처럼 완전히 해방되었다.'라고 선포한다. 그저 비유적인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석존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고 무한한 우주의 생명력을 자각한 부처'로서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찬드라 박사와 이케다 회장의 대담에서 석존은 영원불멸, 천지창조의 힘을 가진 신(神)이 아니다. 현실의 갖가지 고난과 괴로움과 치열하게 싸우며, 하늘에 부는 바람과 같은, 강인하고 자유로운 생명력을 가진 존자(尊者)인 것이다.
찬드라 박사는 이 석존이 가진, 우리 모두가 가진 '부처의 생명력'을 아주 멋있는 시적인 언어로 표현해냈다. 단언컨대, 이 책의 주제를 가장 멋지게 그린 문장이라 생각한다.
찬드라박사의 멋진 한마디를 통해, 불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을 설명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이케다 : 불전에 '일념에 억겁의 신로를 다하면'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게는 위대한 스승과 신뢰하는 동지와 사랑하는 벗이 있었습니다. 스승 슬하에서 동지와 함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찬드라 : 확실히 인간은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케다 선생님은 그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서 아름다운 '영원'을 찾아내셨습니다.
PS1: 개인적으로 이 책은 많은 분들에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교조적인 부분을 배제하려고 했으나, 책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전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표현 등이 분명히 있었다.
모쪼록, 표현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어려운 것은 나 자신의 부덕의 소치^^; 임을 밝힌다는, 양해를 구하는 메시지로 이 글을 마친다.
PS2: 여담이지만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공자의 '하늘'에 대한 정의였다. (불교는 그래도 많이 아니까^^;)
일체의 궁극적, 완성형, 이상향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하늘'이라는 초월적 대상을 정하여, 이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당대 얼마나 획기적인 사상인지.
틀림없이 '인생을 초월한 위대한 사명'을 확립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실로 위대한 지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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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담용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