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끄는 사람/행 20;7-12.
베를린에서 2시간 반 내지 3시간을 가면 비텐베르그 성이 있습니다. 바로 루터가 농촌 목회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평민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귀족들만 다니는 귀족 교회가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그 귀족교회 정문에 종교 개혁을 위하여 95개 조항을 붙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그 동안 이 성은 공산권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이 통일되면서 이 곳은 온 세계인들의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일년에 680만명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만도 70만명이 찾아 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교회 강대상 우편에 루터 묘까지 있습니다. 한 명이 이 곳에 와서 루터 책을 사고, 차를 마십니다. 10만원씩만 쓴다고 하여도 일년에 이 곳에서 사용하는 돈은 6,800억원이 됩니다.
이 곳은 루터 거리, 루터 대학, 루터 까페, 루터 레스토랑등 모두 루터이름뿐입니다. 이 곳 주민 3만명은 대대로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이들입니다.
나는 루터 묘를 붙들고 기도할 때에 <사람을 끄는 사람>이라는 말이 영감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을 끌 수가 있을 가요?
본문을 보면 바울은 분명히 사람을 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드로아에서 7일을 머믈렀습니다. 그 곳에 있는 성도들과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내일은 바울이 떠나는 날입니다.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바울은 수많은 사람을 끌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 지를 암시하는 말씀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8절에 등불을 많이 켰는 데.....등불을 많이 켰다는 것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9절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라는 말씀속에도 사람이 많았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가에 걸터 앉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의 설교가 길었습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 하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가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떠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떠들었다는 말을 보니 스데반을 죽일 때 수많은 군중이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행22;23)라고 하였는 데 그 군중들의 떠드는 것과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떠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12절에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는 데 그 사람들도 무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바울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느 곳을 가든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목사는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성도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교회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영화도 사람을 끄는 영화가 성행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람을 끄는 사람일까요?
바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사람을 끄는 사람인 지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귀로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바울은 귀로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끈 것은 무엇인가 할 말이 있고 온 사람들은 바울로부터 무엇인가 들을 것이 있어서 모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나는 칼기를 폭파시켰던 김 현희와 같이 논산지방 감리교 연합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월요일 밤부터 목요일 밤까지 집회인 데 수요일 오후 2시에 김 현희가 오게 되어 있고 나머지는 내가 인도하는 집회입니다. 내가 집회를 인도하는 시간에는 600석 교회가 보기 좋게 찼을 뿐입니다. 가득 차지 못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 현희 오는 시간에는 온통 그 주변에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경찰이 동원되고 난리였습니다.
나는 집회 앞자리에 앉아서 “나는 무엇인가?”라고 허탈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들려 줄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끕니다.
귀에 줄 것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몰려 듭니다. 따뜻한 말을 하여 주는 사람을 사람들은 찾아 갑니다. 용기있는 말을 하여 주는 사람을 사람들은 찾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흠모하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 95개 조항을 걸어 놓은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었다면 1520년 <독일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출판한 것은 종교 개혁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지금까지 제도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 놓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만인 제사장론>을 선언한 것은 종교개혁의 원자폭탄이었습니다. 루터는 그 책에서 4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1. 모든 성도는 세례받는 순간 제사장이 된다.
2. 성직자와 성도는 같은 제사장이기에 계급이 있을 수 없다
3. 성도는 이제부터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할 필요가 없다.직접 하나님께 비밀 회개가 가능하다
4. 성직자와 성도는 기능면에서 구분될 뿐이다.성직자는 말씀 선포의 직능을,성도는 세속직분을 감당하여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때 온 유럽은 루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유럽의 시선은 루터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갔습니다.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말을 들려주는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일본 최고 제약회사 가네보 회사 회장 미타니야스토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많이 받았기에 그는 제약회사 사장이면서도 일본 전역에서 강사로 그를 부르고 있습니다. 들을 것이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난리들입니다.
그는 그 회사의 인사 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근하기만 하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상에 성경을 펴놓고 읽었습니다. 회사에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였습니다. 얼마 후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종교 활동을 하지 말아라.”
그는 회사에서 쫓겨 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선언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나를 배반하는구나!”
그리고 성경을 읽는 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는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회사를 쫓겨 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
마음에 평강이 찾아 왔습니다. 그 후 그는 직장에서 더 열심히 전도하고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성실성을 인정받아서 승진을 거듭하였습니다. 드디어 그 회사의 경영을 총 책임지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지나온 이야기를 알고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였습니다. 그는 회사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인생을 멋지게 살고 감동있게 산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2.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바울이 사람을 그렇게 많이 끈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울을 따라 다니면 언제나 눈으로 볼 것이 많았습니다. 바울에게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따랐습니다.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 데 바울에게는 언제나 표적이 따랐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창가에 걸터 앉았다가 죽은 유두고를 살렸습니다. 19장 바로 앞장에서는 가는 곳마다 바울이 희안한 기적이 따르고 있음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
이렇게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끌게 됩니다. 루터가 500년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고 있는 이유는 그에게도 기적이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따랐습니다.
몇 년전에 하이델베르그에서 유럽 연합 집회를 인도할 때 루터가 재판을 받은 웜스 국회에 가본적이 있습니다.그런데 그 국회로 들어가는 길을 <루터 바움 스트라세>라고 부릅니다. 루터가 재판을 받을 때 한 할머니와 천주교인이 길거리에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주교인은 루터는 배반자라고 못박으며 열을 내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루터가 맞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길가운데 꽂으면서 말했습니다.
“만일 루터가 올바르면 이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다.”
며칠이 지났습니다.길가운데 꽂아둔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그 나무는 세 명의 어른이 팔을 벌려야 잡힐 정도로 굵고 큰 나무가 되어 길 가운데 있습니다. 그 나무를 루터나무라고 말하고 그 거리를 루터 거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따르는 사람은 사람을 끌 수 있습니다.
덴마크에 갔더니 덴마크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국부 영웅은 그룬드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신성한 직업인 농업을 강조하면서 온 국토에 농산물을 심기를 권하였습니다. 전 국민이 온 농토에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가물어서 모든 땅이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룬드비 목사님은 기도를 선포하고 온 국민이 기도하는 데 1842년 4월 16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에는 해마다 4월 16일을 기도의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기도의 날이 있는 나라를 처음 보았습니다. 덴마크가 35,000불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는 일등국가가 되었습니다.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끌게 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교회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ICM교회입니다. 지금 주일낮 45,00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그렇게 많이 모이는 이유도 기적이 늘 따르는 눈으로 볼 것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카스텔라노스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데 중풍병자 12명이 나란히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났는 데 안수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아직 신유의 역사가 한번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카스텔라노스 목사님은 중얼거리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나는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겠나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중에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중풍병자가 간절하게 사모하는 눈빛이 닥아 왔습니다. 그는 영감적으로 그 사람을 하나님이 지목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앞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그 곳으로 쏠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 주기를 원합니까?”
“걸어서 가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그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 왔는 데 그가 휠체어를 밀고 나갔습니다. 그 후부터 이 교회가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3. 손에 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본문에 사람들이 바울 주변에 모인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7절에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떡을 떼러 모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송별파티하러 모인 것입니다.
그러나 송별파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내일 떠날 것이니까 일찍 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부흥회를 인도하고 마지막 날이니까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였습니다.그러나 바울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밤중까지 설교가 계속 되었습니다. 밤중이 몇 시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유두고 청년이 졸은 것을 보니 상당히 오래 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진심의 사랑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끌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이 신는 구두는 앨런 에드먼드입니다.
이 구두 회사의 경영자 존 스톨렌워크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가지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1.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파악한다.
2. 고급 구두가 아니라 최고 구두를 만든다.
3.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기업이 된다.
이런 철학으로 미국 최고의 구두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고 구두 회사가 되기까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984년 불이 나서 공장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터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구두를 만들던 직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허탈함속에 말했습니다.
“다 두 손을 드세요.”
모두가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 때 그가 말했습니다.
“구두 만들어 놓은 제품이 다 타버렸습니다. 구두를 만들 가죽도 다 탔습니다. 공장도 탔습니다. 그러나 구두를 만들 두 손은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사원들에게 분명한 철학을 주었습니다. 용기를 주었습니다. 희망을 주었습니다. 힘을 주었습니다. 그 회사가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그 회사 구두를 사신으려고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마다 몰리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끌어 당겼습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돈이 아쉬울 때에는 그에게 가서 빌려 쓰고 갚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의 집은 항상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으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한 사람만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화가 났습니다. 그를 만나 물었습니다.
“왜 당신만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을 빌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당신에게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그러면 내 재산을 반을 주면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당신 재산의 반을 주면 당신과 내가 재산이 같은 데 무엇 때문에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그러면 다 주면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당신 재산 다 주면 내가 당신보다 부자이고 당신은 빈 털털이인 데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당당한 그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온 동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신유의 은사로 병든 사람을 살렸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죽은 유드고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두 여자가 출연하였습니다. 사실은 원수지간입니다. 한 여자가 알콜 중독자로 운전을 하다가 마주 앉아 있는 다른 여인의 딸을 치어 죽게 하였습니다. 가해자 여자는 딸을 셋 두었습니다. 그러나 알콜 중독되어 세상을 멋대로 살아가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딸을 죽였지만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오히려 술을 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찍이 주님이 나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용서받았으니 용서하여야 합니다. 나는 내 딸을 치어 죽인 저 여자를 용서함으로 주님의 용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나는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눌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용서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고양이는 따뜻한 곳에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뜻한 사람, 무엇인가 주는 사람에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끄는 사람, 사람을 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고 어떤 교회가 사람을 끌 수 있을 가요?
1. 귀에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2. 눈에 볼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3. 손에 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