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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것이 아름답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월 20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곳 김포는 어느 정도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서울 중동고 졸업식은 별나다고 합니다. ‘개근상’ 수상자를 가장 먼저 호명해서 축하한 뒤, 욕하지 않은 학생에게 주는 ‘바른 언어상’, 친구를 돕고 배려한 학생에게 주는 ‘미스터 중동인 상’ 순으로 시상한다고 합니다. ‘성적 우수상’은, ‘다독상’에 이어 맨 마지막에 준다는군요. 4년 전, 이명학 교장이 부임하면서 새로 정한 순서라고 합니다.
‘나다운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왠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만큼 나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말도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만 세밀하게 잘 아는 것은 바로 나 자신뿐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마저 다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나를 귀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말에서 ‘나다운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은 100%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옛말에 ‘아름’이 ‘나’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선생이 선생답고 학생이 학생다울 때, 의사가 의사다울 때, 내가 나다울 때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다움이 무엇인지 찾고 나를 귀하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 어렵지 않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 말에 ‘값어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값어치 있다는 것은 비싸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치’라는 말은 그 값에 해당한다는 뜻입니다. 만 원어치라고 하면 만원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름답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값에 해당하는 삶을 살면 됩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삶도, 그렇다고 나를 천하게 여기는 삶도 아닙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값어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말은 나답게 살라고 말합니다. 나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내 값을 귀하게 여기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값어치 있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말을 공부했는데 삶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우리의 사고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2005년 2월호에서, 조현용 교수)
●오! 디모데여,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맡기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시오. 지식을 자랑함으로써 오히려 자기의 무지를 드러내는 자들과 어리석은 논쟁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딤전6:20)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으로 물드는 법이다(김수현)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결코 뻔하지 않은 이야기
차인표의 소설을 읽다가, 연기하던 배우를 소설 쓰는 작가로 만든 비결이 궁금해서 그의 강연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매일 일기 쓰기, 운동하기, 금주, 금연 같은 습관을 말했습니다. 어찌 보면 뻔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 느닷없이 크리스마스에 그의 집 벨을 누른 박찬호 선수가 등장합니다. 한창때의 스포츠 스타가 그의 집 거실에서 한 행동은 뜻밖이었습니다. 모두가 술과 음식을 즐기는 흥겨운 크리스마스에 두 남자는 거실에 앉아 명상했습니다. 그는 “성공하려면 남들이 다 누리는 것 중, 반드시 누리지 않는 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내가 이룬 것만큼 내가 하지 않은 것도 자랑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금주나 금연 같은 자제하는 행동이 주변을 바꿔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이것이 보통 사람의 삶과 자신을 다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다 보면 결국 잘 자라, 좋은 음식 먹어라, 운동해라 같은 판에 박힌 말이 대부분입니다. 사람들 반응 역시 그렇습니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거나 “워런 버핏은 콜라에 햄버거 먹고 구십 넘게 잘만 산다.” 같은 반응도 꼭 끼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사실 대부분의 진실은 교과서만큼 뻔합니다. 중요한 건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을 “국민연금처럼 노후에 쓸 근육 연금을 들자!”거나, 노년 의학 전문가인 정희원 교수의 말처럼 “노년 근육 1킬로는 1,300만 원의 가치” 같은 말로 바꾸면 메시지가 피부에 더 와 닿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이 뻔한 얘기를 실천하는 소수와 그러지 않는 다수가 있을 뿐입니다. 같은 70대인데도 뛰는 노인과 누워 있는 노인의 건강 격차는 이렇게 생깁니다. 시간이, 돈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한 겁니다. 차인표의 말처럼, ‘실패는 남이 만들지만, 포기는 내가 한 것’입니다. 도전처럼 거창한 말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출처 ; 백영옥의 말과 글, 백영옥, 소설가)
(물맷돌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3055)
제 목표는 건강한 김창옥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1월 13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곳 김포는 어느 정도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제2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의 멘토는 화이트 목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 무렵, 화이트 목사의 TV 설교를 듣고 감동받은 트럼프가 먼저 화이트 목사에게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뉴욕으로 초대한 트럼프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화이트 목사는 ‘당신의 영혼이 필요하다(I need your soul)!’고 답함으로써 트럼프를 더욱더 감동시켰다고 합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제 강사료는 한 시간에 2만 원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힘들기보다는 재미가 있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그 시기에 돈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반지하방에서 살았는데, 화장실이 집 안에 없어 공동 화장실을 써야 했고, 에어컨도 없고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가는데 길가에 쓸만한 소파가 버려진 걸 보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가면 바닥의 냉기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은 세어서 남들이 볼 때는 가져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져갈까 봐 걱정은 되니까 주변을 계속 배회하다가 연기 연습을 하는 척 배달하는 사람 연기를 하면서 꾸역꾸역 들고 갔습니다. 그냥 걸어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그것 머리에 이고 걸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단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때를 지나오긴 했지만, 저는 한 번도 강연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타강사가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스타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고 강사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건강한 김창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영화배우 일을 곁들여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재미있는 김창옥이 되고 싶어서 배우를 택한 것이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김창옥이고 싶습니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에게는 굳이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제 묘비에 뭐라고 씌어 있기를 바라느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웃고 사람들과 함께 울었던 김창옥, 여기에 잠들다.’ 사람들을 웃겼고 울렸던 김창옥이 아니라, 같이 웃었고 같이 울었던 김창옥, 그러니 제 이름은 ‘함께 웃고’와 ‘함께 울고’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입니다.(출처; 지금처럼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김창옥)
●다른 사람이 행복해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퍼할 때 함께 슬픔을 나누십시오.(롬12:15)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거움을 나누고, 사랑한 기억은 우리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효모리 도모코)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시 한 걸음
‘지루한 천국’보다는 ‘재미있는 지옥’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등바등하는 안간힘과 왁자지껄한 대소동도 삶의 에너지가 충만한 탓이라 여겼습니다. 폐허 위에서 일군 번영으로부터 ‘K컬처’의 만개까지도, 이악스럽게 타인과 경쟁하며 자기 몫을 찾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태어나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이 나라를 꽤나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뚜렷한 사계절’은 기후 위기로 경계가 무너지고(솔직히 사계절이 뚜렷한 게 장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금수강산 옥토낙원’은 기실 자원이랄 게 변변찮은 산악과 분지가 대부분입니다. 누대에 이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외침을 당했으니 보따리 잘못 푼 단군 할아버지를 탓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지정학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라면, 그 이름도 거창하고 거룩한 애국 애족이 아니라 운명애에 가깝습니다. 이곳에 태를 묻은 필연적인 운명을 감수하며, 행위(doing)보다는 존재(being) 그 자체로 긍정하는 일. 쉽게 말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이기에 자식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남들보다 인품이 좋고 재산이 많기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못나고 부족해도 내 자식이고 내 부모이고 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지칩니다. 신년 첫 칼럼을 쓰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지랄 발광 네굽질한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제는 물론 사회 전체에 충격의 잔흔이 낭자한 탓입니다. 계엄과 탄핵으로 고조된 스트레스가 항공기 참사로 임계점을 넘은 듯 지난 세밑만큼 우울한 때는 다시 없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투 다이내믹 코리아’에 욕지기가 났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애도의 시간이 없고 설득의 언어가 없습니다. 남 탓과 종주먹, 그리고 진영의 새된 구호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구무언이요, 침묵만이 가장 현명한 웅변임을 알면서도 마감일에 맞춰 꾸역꾸역 원고를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일지언정 새해를 여는 글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의 절망이 아무리 깊어도 잇몸이 시리도록 사리물고 내일을 말해야겠습니다. 이 환란 중에 나의 비밀한 위로가 되었던 것은 남극 원정대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위치 추적 시스템을 통해 산악인 김영미 대장의 이동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허수아비 같은 적과 맞서 싸우고 있을 때 홀로 자신과 쟁투를 벌이며 그녀는 지금도 남극 대륙을 횡단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록과 함께 세계적인 산악인의 반열에 오른 김 대장은, 지난 11월 무보급 무지원으로 남극점을 지나 레버렛 빙하까지 도달하는 1,700킬로미터의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영하 수십 도의 설원을 하염없이 홀로 걷는 고독한 여정이 이삼일에 한 번씩 SNS에 게시되는데, 그녀는 가도 가도 끝없이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남극의 매력을 ‘정직함’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기술 없이 걷고 또 걷는 것이 남극을 온전히 느끼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그러하기에 고통스러운 여정일지라도 고행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08년 7대륙의 7번째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때 가져갔던 태극기를 펼쳐 들고 남극점 앞에서 활짝 웃는 사진 속의 김 대장을 따라 나도 웃었습니다. 어쩌겠는가.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난마 같아도, 삶은 정직하게 걸어야만 종착점에 닿을 수 있는 운명의 대륙이 아니런가요!
김영미 대장이 좋아한다는 문구는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소설 ‘인간의 대지’의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살린 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다시 한걸음을, 항상 그 똑같은 한 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야.”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시 한걸음을 내디뎌 하루하루씩 살아내야 할 터입니다.(출처 ; 김별아의 문화산책, 김별아, 소설가)
(물맷돌 https://cyw.pe.kr/xe/index.php?mid=a17&document_srl=1142998)
유혹을 이기는 전략
구원받은 성도들이 죄를 짓는 이유는 바로 유혹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그날까지 한 명이라도 더 실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사탄의 유혹에 올바로 대처해야 합니다.
미국의 부흥회 강사 톰 아이젠맨(Tom L. Eisenman) 목사가 제시한 「유혹에 대처하는 7가지 방법」입니다.
1. 내가 어떤 유혹에 약한지 알아야 한다.
2.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늘 회개 또는 자백하라.
3. 의심하고 방심하게 하는 사탄의 전략에 대비하라.
4. 세속의 법이 아닌 비전을 따라 살라.
5. 좋은 습관을 들이라.
6. 내 강점을 통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7. 유혹의 자리에서 도망쳐라.
작은 균열로 큰 댐이 무너지듯이 작은 죄와 작은 유혹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유혹도 말씀에 바로 비추어 물리치는 사람이 끝까지 성공하는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세상의 죄에 맞서 버티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다가감으로 반석 위에 굳건한 믿음을 세우십시오. 아멘!
주님, 늘 깨어있어 주님의 도우심으로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위에 나온 7가지 내용을 참고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유혹을 조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선행을 흘려보내라
집안 환경이 어려웠지만 출중한 재능을 타고난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생은 국가장학생으로 뽑혀 외국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고 뛰어난 학자가 되어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꿈을 펼치게 도와준 나라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은 국가 산업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연구한 최신 기술을 상황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거의 무료로 전수해 주었습니다.
이 회사는 교수의 도움으로 활로를 뚫었고 매년 수백억의 매출을 올리는 강한 중소기업이 됐습니다.
회사가 궤도에 오르자 이 회사의 회장은 교수가 몸담은 대학을 찾아가 무려 50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개인 기부액으로는 한국 역대 최고액이었습니다. 조건은 단 한 가지 “그때 우리 회사에 도움을 줬던 교수에게 기부금 사용의 전권을 줄 것”이었습니다.
나라에 보답하기 위해 베푼 선행이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기부액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사연의 주인공인 카이스트의 교수는 “이 금액을 다시 다른 기업들의 미래 가치 기술을 위해 사용하겠다”라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듯이 힘이 닿는 대로 세상에 선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베푸는 선행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큰 복으로 갚아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복음과 선행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아멘!
주님,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더 큰 은혜로 갚을 축복을 주소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도운 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선물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말씀대로 공경하라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보며 뱃사람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장성한 청년은 큰 선박회사에 취직해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려고 짐을 꾸렸습니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생사를 알 수도 없는 저 먼바다로 너를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두렵구나.
부디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지 않겠니?
뱃사람만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일생의 꿈이었지만 어머니의 진심을 느낀 청년은 다른 일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청년은 “부모에게 공경하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 이번 일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성경에 나온 말씀을 따랐으니,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복을 받을 것이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꿈을 포기한 아들을 생각하며 어머니는 매일 아들의 인생을 놓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청년은 훗날 미국의 독립을 이룬 위대한 장군이자 링컨 못지않게 지금도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정치인이 됐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청년 시절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큰 복을 받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수고로 우리를 위해 헌신하시고, 높은 기도의 제단을 쌓아주신 부모님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 공경하며 섬기십시오. 아멘!
주님, 더 큰마음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며 모시게 하소서.
부모님의 노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정성껏 선물을 준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랑한다면 행하라
공자는 수제자인 자로가 방 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하루는 보다 못해 자로를 불러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내가 가르친 6가지 덕을 잘못 행하면 6가지 폐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자로는 6가지 덕은 배웠지만 6가지 폐는 배우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질게 행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슬기로움을 배우지 못하면 무절제한 사람이 된다.
신실하기를 배우지 못하면 도둑이 되고,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면 가혹한 사람이 된다.
용맹을 배우지 못하면 성급한 사람이 되고
뜻을 관철하기만 하면 고집이 센 사람이 된다.
내가 말하는 6가지의 덕은 방에서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경험이 학문보다 낫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아는 만큼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사람을 미워할 수 없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서원하면서 전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주님의 말씀을 통해 매일 받는 은혜만큼 주님을 위해 행하십시오. 아멘!
주님,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웃과 성도를 사랑하게 하소서.
말과 혀로만 전하지 말고 마음과 행동으로 사랑을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대적할 자를 아는 지혜
케냐에서 가장 큰 교회인 ‘디퍼 크리스천 바이블 처치’의 윌리엄 쿠무이(William Kumuyi) 목사는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지’라고 말했습니다.
흑사병이 중세 유럽을 휩쓸었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병보다 병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지금처럼 흑사병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예방하는지를 알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흑사병을 피하고 치료하기 위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쥐가 흑사병을 옮기는 매개체이며 손을 잘 씻는 등의 개인위생 관리만으로도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오늘날에는 가끔씩 개발도상국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지만 중세 시대처럼 퍼지지 않고 금세 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이 만약 사탄을 대적하지 않고 서로의 사소한 실수를 놓고 잘잘못을 따지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면 사탄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분이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분을 따라야 하는지, 우리가 대적해야 할 존재는 누구인지를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허튼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바쁘게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우리가 대적해야 할 존재는 누구인지를 바르게 분별하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한 분이 누구인지, 어떤 분을 따라야 할지 바르게 분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바르게 양육하라
영국의 교육심리학자 허츠(Dr. R.F. Hertz) 박사는 24개국의 어린이 10만 명을 대상으로 「원하는 부모의 상」을 조사했습니다.
그중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 10가지입니다.
01. 자녀 앞에서 싸우거나 말다툼하지 않는 모습
02. 거짓말하지 않는 모습
03. 질문에 성의 있게 대답해 주는 모습
04. 모든 자녀를 똑같은 애정으로 대해 주는 모습
05. 자녀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모습
06. 꼴찌를 해도 노력을 칭찬해 주는 모습
07.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 주는 모습
08. 친구나 동생 앞에서 꾸짖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모습
09.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대해 주는 모습
10. 모든 면에서 자녀에게 본을 보여주는 모습
아이들은 이제 막 싹이 튼 나무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믿음과 사랑의 양분을 충분히 부어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소중한 한 영혼인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바르게 양육하고자 노력하는 부모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그럼에도 자녀를 위한 기도가 가장 중요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자녀들의 기도 제목을 나눕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더 아름답게 하라
사랑하는 딸과 함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나들이를 나왔지만 공원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즐길만한 놀이기구는 하나도 없었고, 공원 관리를 위해 나온 직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으며 거리를 뒤덮는 쓰레기만 눈에 띄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을 위한 공원의 상태는 비슷했습니다.
사람들은 온 가족이 함께 갈만한 곳이 없다고 불평만 했지만 이 아버지는 언젠가 자신이 아이들을 위한 환상의 테마파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디즈니랜드’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안정적인 목회를 하던 데이비드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는 어느 날 타락하는 뉴욕 청소년들에 대한 뉴스를 봤습니다.
청소년들의 타락을 안타까워만 하던 목사님은 돌연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가만히 있는 제가 문제입니다. 바로 제가 가겠습니다.”
윌커슨 목사님은 바로 모든 사역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고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목사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사역에 뛰어들었고 나중에는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위해 큰 노력을 쏟았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불평만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그곳,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곳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믿으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보내신 그곳, 주님이 보여주시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해야 할 지인과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계획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주님이 진리인 이유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프랑스의 석학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와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종교에 대해 토론 중이었습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콩트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칼라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은 허무맹랑하고 유치한 이야기뿐입니다.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고요. 제가 지금 연구 중인 학문은 기독교보다 훨씬 유익한 종교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칼라일은 매우 합리적인 주장이지만 예수님처럼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나지 않으면 아무도 콩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콩트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전파되고 많은 사람이 믿게 된 이유는 예수님이 정말로 죽었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능력 앞에 사람의 지혜와 논리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아무리 논리적인 종교라 해도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생명력을 지니지 못하고 곧 사라질 것입니다.”
복음의 진정한 힘은 말이 아닌 능력에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말과 더불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능력으로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절대 신뢰하며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나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기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듣는 지혜를 구하라
‘카운슬링’ 기법의 창시자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는 경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경청은 깊이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람의 단어, 생각, 깔려있는 의미, 숨겨있는 의식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지만 때때로 그 밑에는 인간적인 절규가 묻혀 있습니다.”
칼 로저스는 심리 상담의 70%는 ‘듣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Bonhoeffer, Dietrich)는 「성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책에서 마찬가지로 경청의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나가서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세상 사람들은 듣지 않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먼저 들어야 할 때 말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은 결코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의 말도, 함께 하는 동역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음성에도 귀를 막을 것입니다.”
올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사연을 물으셨습니다.
옳은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사연을 먼저 경청하십시오. 아멘!
주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소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먼저 철저하게 경청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삼부자 집회
저와 큰아들 요셉, 작은아들 요한이까지 우리 삼부자는 모두 목회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삼부자 집회를 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습니다. 아마도 삼부자가 목회자라는 점에 호기심을 갖고, 각기 어떤 스타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굼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약 20여 년 전 처음으로 삼부자 집회를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 한인교회들이 저를 초청하면서 "아들들과 함께 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는 저는 이민 1세대, 요셉 목사는 1.5세대, 당시 전도사였던 요한 목사는 이민 2세대를 대상으로 설교했고, 그 이후 몇 차례 국내에서도 삼부자 집회를 하면서 큰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우리 삼부자를 신체에 적용해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시절을 겪어서 배에 하는 설교, 교육학을 전공한 요셉 목사는 머리에 하는 설교 요한 목사는 감수성이 발달해서 가슴에 하는 설교였습니다. 주변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흥미로워하면서 꼭 맞는 해석이라고 공감하셨습니다. 또, 우리 삼부자에 대해 시계에 비유해서 저는 초침, 요셉 목사는 분침, 요한 목사는 시침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바쁘게 사역하는 것을 빗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양하게 창조하셨고, 그 사람에 맞게 사용하는 분이심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김장환 목사의 인생 메모」중에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면 좋겠습니다. 아멘!
주님,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 생가해 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