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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구걸하는 벌레들
어제 밤에는 초가지붕을 날려 버릴 듯한 雪寒風이 몰아 치 드니 방안에도 한기가 들어와 눈을 뜨니 어둑새벽인가 보다. 小寒이 지난 터라 추위가 猛威를 떨치며 힘겨루기를 하는데 冬將軍과 맞서 이겨 보려 는 듯 새벽 未明에 모자라는 잠을 애써 쫓으며 부스스한 얼굴로 신문을 한 아름 안고 첫 버스의 문을 열고 들 어스는 나이 지긋한 학생,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본 후 乘客 한사람을 멀거니 바라본 후 다시 車에서 내린 다. 요사이 며칠간은 매운 추위 탓인지 첫 버스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그러자니 신문팔이는 空치는 때가 만어서 주머니속이 먼지가 날 지경이니 상이 찌푸려진다. 주 섬, 주 섬 新聞을 모아서 옆구리에 끼고 停留場 옆 時計塔을 쳐다보고, 눈길에 시선을 둔 채로 감발을 고친다.
校服에 校帽를 눌러 쓰면서 “안녕 하십니까? 차가운 날씨에 여행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본 학생은 同族相爭 와중에서 가족을 잃고 혈 혈 단신으로 배움이 그리워 한 푼, 두 푼을 선생님들을 의지하며 新聞 팔이로 生計를 잊고 학업을 영위하는 苦學生입니다. 귀찮다 생각마시고 한 장씩 팔아 주시면 큰 은혜로 알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演劇 臺本을 외우듯이 시계탑 옆을 돌아 스며서 계속 음 조리고 있다. 서울 가는 차, 원주 가는 차를 맴돌며 차문을 때렸으나 손에든 신문은 별로 줄지를 않는다. “오늘은 그만 팔 아야 되 겠구먼, 추워서 旅行도 하기 싫은 가보지?” 신문을 街販臺에 훌쩍 던진 후, 유엔 점퍼를 끼어 입고(덧입다) 시청 건축 豫定지 옆 다 쓸어져 가는 바라크(일명, 하꼬방)건물의 출입문을 잡아 당겨본다 전쟁중에 거의 쓸어 질것 같은 廢 倉庫를 개조하여 창문은 문풍지를 바르고 그나마 설한풍은 면 하여 태극기와 칠판을 붙인 채로 넓고 반듯한 쭉쟁이 松板은 冊床으로, 좁고 튼슬치 못한 송판은 椅子로 不動의 一列 의자에 앉어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경청하든 배움의 터전이기에 시간이 나면은 자연스레 발걸음이 이곳으로 向한다. 所謂 00고등공민학교란다. 동족상쟁 속에서 여름, 겨울피란을 다 격 다보니 학업일수를 다 맞힐 수 없는 관계로 5.6학년을 짧은 일 년으로 2년 課程을 마치고 卒業하였으며 집안사정이 여의치 못한 학생은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나이들은 관계로 고등학교 입학자격은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길이 기에, 미션계통의 배움을 나누어 주는 00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여 속성을 밟는 나이 많은 학생이다. 배울 욕심은 많은데 머리가 따라 주지 않는 劣等生 이지만 그래도 배워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혹독한 환경과 인심을 해쳐나간다. 다시 가판대 들려 이제는 양담배, 껌, 초콜릿 등 을 移動 街販袋에 주섬주섬 담아 다방 문을 들어섰으나, 시간이 이른 탓인지 난로가 옆 테이블 만 몇몇 손님 있을 뿐 다방아가씨의 미소만 따른다. 다음 다방으로 또 다음.....
한참을 쏘다니다가, 추위 속에서도 모닥불의 온정이 그리워 슈산보이(깨꾸닦기,shoe shine) 친구들 옆으로 자리를 옮겨보니, 모닥불의 따듯한 열과 인정이 어울려 마음이 훈훈하여 진다. "아! 추워! 올겨울은 유난이 추운가보다, 어때, 구두 닦아 달라는 분들도 없지?” “응! 별로야, 다방마담들이 우리가 다방 출입하는 것을 좋아 하지 않으니 점점 더 힘들어.. 형은 양담배 잘 팔려? 고생해도 형은 보람이라도 있잔 어? 배움의 목적이 있으니까....” “안되겠다, 올 방학에는 양구나, 화천, 인제 등으로 도붓장사를 나가야되겠어, 고생은 되어도 촌에서는 성냥, 물감, 양잿물 등이 잘 팔리니까 또 이익도 괜찮고 하니까, 같이 자취하는 친구들과 같이 일찌감치 떠나야 될 것 같다. 갈 동안은 너희들에게 국민학교 학과(과정)를 우리가 아는 만큼 계속 가르쳐 줄 테니까, 오늘 저녁에도 꼭 와! 나간다!” 터덜거리며 그 자리를 뜬다. 1954~58년 까지는 전쟁폐허 속의 한국경제는 농, 어업 외에 산업이라고는 전무한 상태며 市場 形成 化도 미군과, 한국 군인이 배치된 한정된 장소에 시장경제가 生成됨으로 고학생들과, 막벌이꾼들의 立場은 고려할 여유가 없는 상태라 생사 여부는 본인의 意志대로 삶을 꾸렸으니 고생이라는, 그런 말이 奢侈가 아닐까? 나라 살림은 國際聯合의 援助物資에 좌우대든 시대 였으니 말해서 무었하리....
휴전이 되고나서의 나라의 안위는 물론이지만 친족 간에도, 친구 간에도 安否를 모른체 지나다가 객지에서 만나면 고아가 된 친구도 있고 사상도 모르는 우리들이 친척의 連坐罪 에 묶여 빨갱이로 변하여 遊離乞食하는 지인도 많았으니 배움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할 처지였는데, 그나마도 고생은 되나 사회에서 冷待는 하지 않으니 늦었지만도 아침저녁을 이용하여 신문과, 양담배 이동판매, 방학동안의 먼 거리 도부장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작년 겨울방학인가 보다, 部隊가 자주 이동하다보니 단골 將校들도 자기부대와 동행하여 떠나가고, 고객이 없으니 담배와, 책등의 판매로는 학비는 물론 쌀독도 비어 두 친구와 같이 걸낭을 어깨에 메고 막 담배, 통 성냥, 양잿물, 물감 등....온 갓 판매 품목을 낭속에 넣은 체, 最前線의 오지와, 군인가족이 거주하는 부대 주변의 外泊地등 촌락을 배회하며 서 나오지 않는 고학생 장타령을 시작한다.
“안녕 하십니까? 저희는 당국에서 진짜고학생 이라는 認證을 받고 물건을 파는 학생입니다. 지겨웠든 피난살이에 가족을 잃고도 향학열에 들떠 고생을 무릅쓰고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오니 십시일반으로 팔아주시면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풍각쟁이 인양 絮說되며는 기꺼이 사주시는 분, 가짜 학생이라는 등 하시며 벌래 보듯 하시는 분, 심지어는 바지랑대 로 거지 쫓듯 위협하시든 분, 까지도 언젠가는 일~이회의 단골이 되어 반갑게 맞이 하여주신다. 엄동설한에 너무 고생한다고 집으로 불러서 따뜻한 점심을 차려주시고 심지어는 가다가 먹으라고 감자떡 까지 싸서주시든 그 인정에 목 메이든 때도 있었고, 전일 기거하든 마을에서 재차 기거하기 미안해서 해 떨어질 무렵에 마을을 떠나 간 것이 겨울 낮의 길이를 잘못 재고 마을의 방향을 잃어 헤매다 가 많은 시간이 경과한 후 깊은 밤중에 눈 속에서 밝은 불빛이 보이는 외딴집을 어렵게 찾아 가니 雪上加霜으로 初喪집이라, 피로한 몸을 가눌 길 없어 밭에 세워둔 집 가리 속을 헤집고 들어가 서로 부둥켜 않고 토끼잠을 잔일도 있었는데. 恨스러운 일이야 왜? 없겠나만, 고생 할 바에야 목적 있는 고생하자는 일념으로 檢定考試를 목표로 삼고 둔한 자기머리를 사정없이 군밤을 먹인다.
누군가 얘기하기는 우리세대 젊은이들이 이 지구상에서 제일 불행하게 태어난 젊은이들 이라고,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말들 한다지만, 思想도 모르고 격은 同族相殘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이렇게 멀 정 하게 살아나지 않었 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짊어질 나무가 많다면 적은 바소쿠리 나무라서 무엇 하며 버겁다고 불평해서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왕 우리가 지고 갈 짐이라면 미련스럽게라도 지고가야지 되겠기에 누굴 원망 말고 살자고 작은 공화국을 세워 나이 지긋한 학생들의 공부방(자치방)을 꾸려 보았다.
나이든 젊은이 들이 하나~셋, 넷 재끼장(공책)을 하나씩 들고 (구두약이 잔뜩 때 묻은 옷은 벗어 버리고) 머리수구려 공부방에 들어와서, 각자 앉은뱅이冊床 하나씩을 안고 공책을 펼쳐 놓는다. 지금부터 젊은이들의 공민학생과(자립) 고등공민학생간의 밤공부를 같이 시작한다.ㄱㄴㄷㄹ, ㅏㅑㅓㅕ, 1+-+- 우리는 가난하고, 기회 없어 못 배웠으니 남 잠잘 때 잘 수 없고, 쉴 때 쉴 수 없다. ㄱㄴㄷㄹㅁ, 국민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학생이지만 이제는 4,5학년의 실력을 갖추 운 것 같어 가르치는 우리도 마음이 흐뭇하여진다. 비록 晝耕夜讀 하는 신세들이나 배운다는 公同目標가 있으며 미래의 희망을 향하는 동기생이며 고집통들이 아닌가.
未盡학생 만이 불우해야 된다는 것과, 공민 학생은 꼭 나이가 많아야 된다는 표준은 없다. 우리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전쟁을 격 다보니 미 진학 상태에 처하였다가 늦게 공부 하자니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이며, 戰爭中에 천애 고아가 되어 없어져 버린 호적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지식만이라도 쌓자는 일념으로 늦은 공부를 시작 한 것이지, 내 이웃과, 내 동창들은 부모 슬하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조기 합격하는 공부 잘하는 동급생도 꽤 있다. (일후의 자랑이나 S대 과수석한 학생도 있고, 교수, 선생님, 경찰서장 까지 배출 하였으니.. ) 우리같은 인생살이는 하루살이며 배움은 늦동이나 장래의 포부만은 커야 되지 않겠는가? 개으르지 말고, 졸지도 말고, 시간을 아껴 ㄱㄴㄷㄹ,ㅏㅑㅓㅕ, lesson one......
참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운 동절 이였다, 그래도 지나간 날을 돌아보면 모진 고생도 다시찾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며, 배움의 길이 순탄치만은 안했는데, 그 길이 자랑스러움 보다는 배움의 길 중에는 그런 외진 길도 있었다는 人生談일 뿐이라, 昨今에도 음지에 못 배운 설음에 서러워하시는 공민학생여러분(까막눈) 들은 용기를 가지시고 배움의 의지를 망설이지 말고 펼치어 나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보았다. 현재 같이 문명의 이기가 발달 되었으며 국가의 보조와 제정이 충분한데 문맹자라는 낙인을 찍힌다는 것이 억울하지 않은지? 서슴치 마시고 배웁시다. 하며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앉은뱅이 책상위에“책속에 길이 있다”는 표어를 걸었든, 그때의 친구들은 만날 길이 없지만, 우직한 머슴애들의 글자 터득하든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다시 오지 않은 그날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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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의 글을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그 시절 어렵게 공부하신 많은 분들이 있기에 지금 나라 가 잘살 수 있는 사회 인가합니다.
그시기를 도라 보면 참으로 힘들고 어려움 도 많았지요... 교회에서는 성경 구락부라는 배움 터도 있고 ... 좋은 글 잘 읽고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