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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 인도/섭리
제 목 : 앞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성 경 : 창 24:1~9
찬 송 : 375장
저 자 : 이삼규 목사
출 처 : 20240915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창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 24: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창 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 24: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 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창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 24: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우리는 스피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빨라야 좋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인터넷도 핸드폰도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음식도 빨리 나와야 손님이 좋아합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빨리 빨리”입니다. 어떤 동네에 ‘시엘로’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문을 열었습니다. ‘시엘로’는 스페인어로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이 커피숍은 문을 열자마자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미리 주문하고 가서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마시는 커피라서 천국 커피라고 합니다.
그런데 빨리 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일까요? 빨리 가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요? 너무 빨리 달려서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 소중한 것들을 놓치기도 합니다. 계획대로 성취했다고 승리한 인생은 아닙니다. 인생의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방향과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빨리 달리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분주한 우리 앞에 가끔 장애물을 두어 걸음을 멈추게 하십니다. 삶이 멈춰 섰다면 신앙이 바른지 점검해 볼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걸음을 멈추게 하셨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멈춤을 통해 새로운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종을 불러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구하되, 가나안 족속이 아닌 자신의 고향 친족 중에서 택하라고 지시합니다(1~4절). 부패한 가나안 족속 출신의 며느리를 얻을 경우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을 더럽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삭 또한 부패한 아내의 영향을 받아 타락할 가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늙은 종에게 이삭을 데리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말 것을 반복해 당부합니다(6,8절). 이삭은 약속의 후손이기 때문에 약속의 땅(가나안)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삭이 결혼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아브라함이 부름 받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다가 세상 사람들처럼 약속 없는 자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종은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그에게 맹세합니다. 아브라함은 인생 최고 중대사인 결혼을 위한 일이라 해도 이삭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고 거듭난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옛 생활로 돌아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 비록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더디 성취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나라를 소망하며 그분의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한 자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맹세로 선택을 위탁함
아내를 잃은 아브라함은 이제 독자 이삭의 결혼으로 관심을 돌리고 그 일을 진행시키기 시작합니다. 이삭의 결혼은 이삭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신뢰하는 늙은 종에게 이삭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을 맡깁니다.
√창 24: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창 24: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 24: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창 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라고 시작합니다. 사라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시점으로, 아브라함의 나이 140세 즈음입니다. 그러면 이삭의 나이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백세에 이삭을 낳았으니까 이삭도 40세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노쇠함으로 인해 이삭의 결혼을 서두릅니다. 그 당시 40세이면 아주 노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결혼 문제가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행하기 위해 신중하게 다룹니다.
그 신중함은 이삭의 배우자를 고향 친척 중에서 고르게 한 것과(4절), 이를 철저하게 수행할 충성스러운 노복과 환도뼈 맹세를 한 점(2절)에서 잘 드러납니다.
2절에 나오는 ‘늙은 종’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종’이라기보다 ‘관록이 붙은 종’이라는 뜻으로, 다른 종들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종들의 수장’을 의미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의 청지기 제도에 따르면 늙은 종(엘리에셀)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소유물과 집안 모든 일을 관할하는 권한을 가진 신뢰할만한 종이었습니다. 늙은 종이 맹세하기 위해 손을 넣은 아브라함의 ‘허벅지 밑’은 엉덩이와 연결된 넓적다리로 남근(男根)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강력하고 엄숙한 맹세를 할 때 취하는 방식으로, 불복종 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 만큼 아브라함은 아들의 혼사 문제를 두고 종에게 신중하게 이행할 것을 다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신중하게 구했던 일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가나안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을 많이 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았던 가나안 족속은 매우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문란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불륜이 높은 나라가 태국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문란한 가나안 사람의 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가나안 족속과 통혼을 금지함으로써 하나님 뜻을 따르길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하신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통해 그들의 우상숭배 습성이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게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고후 6:14).
성도들은 친구나 동역자 그리고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모든 관계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배우자와 직장을 선택할 때는 더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신앙은 우리의 삶과 신앙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모든 판단을 맡기고 간구할 때 앞서서 길을 비춰 주시고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이삭을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창 24: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창 24: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창 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창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 24: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이삭을 고향으로 데려가지 말라는 것은 곧 아내 될 여인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오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듯이 이삭의 아내 될 여인도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의 고향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상징하며, 언약의 자녀 이삭은 참 언약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또한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모든 성도’를 예표 합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이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려는 자는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다시 말해 세상을 사랑하면서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을 구하기 위해 늙은 종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사자를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격려합니다(7절). 이것은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르심을 받은 이후 70여 년 세월을 통해 경험한 믿음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자의 발걸음을 사자를 통해 부족함이 없는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 23:3).
여러분!
예전 생활로, 세상으로 돌아가 싶을 때가 없으셨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말씀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성도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승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요 언약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대로 성령께서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보증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는 때때로 죄악의 본성이 옛 자리와 사망의 길로 이끌 때 주저하지 말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선포하고(롬 8:2),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대적해야 합니다(빌 2:10).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가는 길 앞에 사자를 보내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담대히 나아갈 때 천사들을 보내 지켜 주신다는 시편의 노래를 기억해야 합니다.
시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보내면서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7절)라는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귀한 예물을 가지고 낙타 열 필을 끌고 길을 떠난 종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나홀의 성에 도착합니다. 아브라함이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4절)고 했기 때문에 목적지는 분명했습니다.
이제는 아브라함의 친척을 찾아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처녀를 수소문할 차례입니다. 종은 낙타들을 성 밖 우물곁에 꿇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고대 우물가는 많은 사람, 특히 여자들이 오가는 장소였기에 그곳에서 남녀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물가는 그 마을의 여인들을 만나기에 최상의 장소일 수 있지만, 하란에 아브라함의 친척만 사는 것도 아니고 우물가에 나온 여인들을 보고 이삭의 신붓감을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종은 아브라함이 말했던 하나님 여호와를 떠올린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물을 좀 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물을 줄 뿐만 아니라 낙타들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는 여인을 하나님이 정하신 자로 알겠다고 기도합니다. 모든 상황에 이런 기도를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종은 하나님이 사자를 앞서 보내시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입니다.
√창 24:15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가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메고 등장했습니다. 타이밍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였으니 종이 기도했던 시험만 통과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창 24: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창 24:17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창 24:18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창 24:19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리브가는 심히 아리따운 처녀였습니다. 종이 기도한 것을 그대로 하겠다고 리브가가 대답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응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종의 기도는 즉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기도가 신속하게 응답되는 비슷한 상황을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단 9: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단 9: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단 9: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을 받아 그에게 알리러 왔다고 가브리엘 천사는 말합니다. 이 모든 경우는 이들의 기도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리브가는 늙은 종의 부탁을 듣고 물을 마시게 했을 뿐만 아니라 종이 기도한 대로 자진해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물을 엄청나게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서 길어야 합니다. 물동이 하나 채워가는 것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종이 끌고 온 낙타가 10 필이나 되었습니다. 최소한 열 번은 왕복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리브가는 건강한 처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를 묵묵히 주목하면서 그녀가 과연 하나님이 정하신 이삭의 신붓감인지 신중하게 따져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나면 바로 관계를 맺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일단 그녀에게 수고의 감사 표시로 적지 않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선물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녀의 가문을 확인하고 나서야 종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놀라며 경배와 찬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면 놀랄 수밖에 없고 경이감에 사로잡혀 찬양하고 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 24: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창 24: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종의 행보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아니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늙은 종의 맹세는 아브라함의 자녀와 가족 모두 거룩한 백성으로서 신앙의 대를 이어 가게 하겠다는 사명감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앞서 행하심으로 이삭의 아내를 준비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고, 진작부터 예비해 놓으셨던 리브가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에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대를 품고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