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지: 강촌 유선대 우벽
참석자: 김영도, 목영관, 권용득, 김도미
아마도 잡설이 더 많을 등반기입니다.
강촌역에서 8시 30분 집결. 저는 30분쯤 일찍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누워있었습니다. 강촌역 앞 카페 사장님과 안면을 이제 텄는데, 영도 대장님이 이야기를 듣더니 “겨울에 구곡폭포 올 때 온다고 말씀드리라” 하셔서 잠시 뇌가 정지했습니다. 저는 과연 빙벽을 할 수 있을까요. 언제? 선배들의 빙벽등반에 따라와서 개떨듯 떨며 커피만 종일 마시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올해 빙벽반을 가보겠다!라며 얼렁뚱땅 야심을 가지긴 했지만 이 날 뒷풀이에서 빙벽등반의 실제에 대해 듣고 로망이 와진창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기등반 장소는 강선봉 가는 길목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유선대 우벽입니다. 길목에는 쫄쫄 하는 약수터 크기이긴 하지만 얼굴 정도 씻을 만큼의 개울도 있고요.
이슬비가 내릴 수도 있다고 해서 약간 염려를 했는데, 비는 오지 않는 대신 습하고 더워서 조금 지치더라고요. 그래도 산밑보다는 시원하지요.
다른 등반팀들이 없어서 전세를 냈습니다. 개념도 상 우벽의 왼쪽 작은벽(초심A~초심B)까지의 공간이 강선봉 산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쉼터이기도 해서, 널찍하니 벤치가 네 개쯤 있기도 하고요.
먼저 등반을 시작한 곳은 그 옆에 있는 그리움길이었습니다. 첫 피치는 김영도 선배님 선등, 권용득 선배님 세컨, 저는 김 말자씨.
1P 5.10c/A0
2P 5.8
3P 5.10a
예상대로 저 턱을 넘어가는 게 제게는 아주 많이 어려웠습니다… 원래 그리움길을 마치면 걸어서 내려올까 하며 신발을 매달고 갔는데 쓸모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턱 위의 퀵을 잡으며 올라 갔고, 용득 선배님이 혹시나 싶어 김도미를 위해 남겨준 아래쪽의 퀵 회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깜냥에 굴욕적일 것도 없지만 여하간 굴욕스러워하며 퀵을 잡고 올라가자 아래에서 지켜보던 영관 선배님이 “괜찮아, 인공등반(A0)이야!”라고 외쳐주셨습니다. 저는 또 입만 살아서 “위로가 되지는 않습니다…“라고 했네요. 그렇죠…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두어야….
제가 겨우 겨우 첫피치를 마쳤을 때, 영도 대장님이 나머지는 먼저 올라가보라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안전… 괜찮을까…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을 텐데, 예전에 용득 선배님의 후기에서 읽었던 게 기억나더라고요. “그 다음은 쉬워” 그 말에 멘탈 수습한 등반 후기였더랬습니다. 이미 첫 피치에서 쭈그렁 된 김도미 멘탈의 조각모음을 의도하신 빅픽쳐 아니었을까. 못할 걸 억지로 시키시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떠듬떠듬 선등 비스무리한 걸 했습니다. 두번째 피치는 개념도 난이도대로 쉬웠고, (거의 다 올라가서 왼쪽 편에 붙어있는 마지막 볼트를 뒤늦게 찾는 바람에 솔잎 밭이 되어버린 바위를 쟈그맣게 트래버스…) 소나무에 얼렁뚱땅 슬링을 걸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싶어도 딱히 머리에서 나오는 묘안이 없어서+시간을 더이상 지체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대로 후등(권용득) 빌레이를 봤고요. 그것이 빅웃음을 드렸을까 아니면 이놈을 또 선등 시켜도 될까 싶으셨을까.
2피치는 그렇다 치고, 3피치를 또요?
“끝을 봐야지.”
그렇게 또 3피치를 갔습니다. 그 다음에 했던 101동과 난이도는 같은데(5.10a) 체감상 3피치가 더 쉬웠습니다. 중간에 언더홀드를 잡고 올라서는 곳이 3피치에서 (그나마) 까다로운 구간이었는데, 아주 까다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등반 완료.
설악산 유선대의 그리움 둘 릿지에 가보고 싶어졌어요.
용득 선배님의 101동(5.10a)
머리 위의 턱을 넘어가는 것이 어려웠는데, 용득 선배처럼 팔을 벌려서 홀드를 잡고 일어서는 게 안되더라고요. 발도 불안 손도 불안. 한번 더 뻗어서 오른쪽 위 홀드를 잡으려니 그것도 불안.
영관 선배님은 다르게 등반하셨는데, 고렇게 따라하니까 어찌저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 부상에도 불구하고 101동 두 번 등반하신 영관 선배… 감사합니다. 어케 올라가나 집중해서 보느라 정작 영관 선배님 등반 사진이 없네요…
영도 대장님의 시동(5.11b)
저 구간이 크럭스였던 것 같습니다. 몇 번 자세를 고쳐보시더니 돌파-
용득 선배님의 102동(5.10b)
크랙에 손을 넣으면 되기는 하는데 아직 물이 있어서 손이 줄줄 미끄러졌습니다. 우얏든 등반완료-
저는 101동을 겨우 마치고 났더니 슬슬 하산할 시간. 마지막으로 102동을 하고서 퀵 회수를 하기로 했는데 결국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등반하기 전, 선배 세 분이 모기에 물려가며 퀵 회수를 시연해주셨는데… 이 여파로 손가락 부상자를 포함한 모두가 등반을 한 번씩 더 하게 되는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벼려야 할 것도 많습니다. 등산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산을 하다보니 무척 더운 날이었더라고요. 모기 걱정이나 했지 이렇게까지 더운지 몰랐습니다. 역시 산이 최고야.
영관 용득 선배님의 이 사진은 사실 제가 두 분의 옷이 꽤나 커플룩 같아서 찍어드린 건데… 용득 선배 상의의 은은한 민트빛이 사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네요.
강촌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과 여러분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몰래 한 장 남겨뒀습니다.
즐거운 등반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야유회에서 뵐게요! :)
첫댓글 필력이 어마어마 하십니다. 생생한 등반후기 잘 봤습니당!
시간 날 때 종종 카페에 있는 예전 등반기들 찾아보고 있는데요, 쾌차하셔서 바위를 날아다니시는 모습 얼른 보고 싶습니다:)ㅎㅎ
무척 더웠지만 생생한 후기 덕분에 즐거운 등반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마지막에는 영관 선배가 대체 뭐 보고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참고로 호주에서는 쿼카랑 셀카 찍는 게 유행이래요...
더위에 약한데, 끼적이다보니 그래도 엄청 좋았다 라는 결론이 되었습니다ㅎㅎ 쿼카가 무척 큐트하네요…:)
좋은 등반후기!
멋진 사진!
모두 훌륭 합니다.
고맙습니다.
용준 선배님! 다음 등반과 야유회에서 뵙겠습니다😀
폭염과 모기의 공격에도 굴하지않고 등반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후기 내용도 최고 ㅎㅎ
굴… 했습니다만ㅎㅎ 고생은 선배님이 하셨죠ㅎㅎ 앞으로 좀 더 고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빙벽 등반만의 매력이 있으니 해보면 좋아.
해보면 좋겠지요? 그런데 맨바위가 이런데 빙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ㅎㅎ 선배님들께 언제 입학상담을 해야할까봐요ㅎㅎ
와~ 생동감 짱 입니다
거미부인 선배님! 곧 산에서 야유회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