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구속사 강해
기근에 대한 야곱의 각성
1. 기근에 대한 야곱의 새로운 각성
요셉은 형들의 자루 속에 양식을 가득 채우고 그들이 가지고 온 돈을 같이 넣어 보냈다. 그들이 길을 떠나 객점에서 우연히 나귀에게 곡식을 주기 위해 자루를 풀어 보았을 때, 자기들의 돈이 그냥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되돌아가서 사실을 고하기에는 가나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와 식솔들이 더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서둘러 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제들은 야곱에게 이르러 그동안 있었던 사실을 고하고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 빨리 베냐민을 데려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곱은 옛날 요셉이 없어진 것처럼 시므온도 없어진 마당에 이제는 베냐민마저 없어진다면 더 이상 삶에 대한 소망이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정색을 하며 한사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창 42:38).
그러나 계속된 가뭄은 야곱으로 하여금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 양식을 사오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양식을 사오라고 권했다. 유다는 야곱에게 나서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다시는 양식을 사올 수 없다고 말한다(창 43:4-5). 그리고 유다는 만일 베냐민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내어놓겠다고 함으로서 야곱의 마음을 달랬다. 그러자 야곱은 마음을 바꾸어 값비싼 예물을 준비하여 유다의 손에 들려주며 애굽에 내려가 총리에게 드리고 양식을 사오라고 하면서 베냐민을 동행하도록 하락해 주었다(창 43:13-14). 유다의 설득이 야곱에게 효력을 미친 것이다.
야곱이 이처럼 자식을 잃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야곱의 집’에 대한 강한 집착력 때문이었다. 야곱의 집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약속을 담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되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따라서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그 약속이 실현될 가능성을 그만큼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에서 야곱은 자식들의 생존을 그처럼 관심 있게 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은 이미 요셉과 시므온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베냐민까지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전 식구가 기근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야곱은 새로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2. 구속사에 대한 야곱의 이해
성경은 양식을 사러 아들들을 다시 보내기로 작정한 야곱을 가리켜 갑자기 ‘이스라엘’이라고 호칭하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언뜻 보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호칭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야곱으로 줄곧 불려지던 이름을 여기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야곱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고자 한 것은 지난번 사온 양식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처음 양식을 사러 보낼 때의 야곱의 마음과 이번에 양식을 구하고자 하는 야곱의 마음이 사뭇 다른 곳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야곱이 양식을 사러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낼 때의 정황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창 42:1-2).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가나안에 임박한 기근에 대하여 야곱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것 같다. 때문에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낙관적인 측면에서 기근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근이 갈수록 심해지고 지난번에 구입해 온 상당한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은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야곱이 머물고 있는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 35:11-12)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야곱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특별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기근이 들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야곱과 그 가족들이 주려 죽을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야곱의 식솔들이 기근을 이기지 못하고 생존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야곱은 지금 가나안에 임한 기근의 의미에 대하여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어 기근이 가나안에 이르도록 허락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럴 때 야곱이 할 일은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려 사리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자신이 당한 사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때문에 야곱은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을 차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담담한 자세로 기근을 대처해 나갈 방안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곱은 미미하게나마 요셉의 생환을 기다리던 마음을 정리하고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겠다던 고집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오히려 야곱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길을 떠나는 아들들에게 축복하기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과 양식을 얻는 일에 있어 만일 자식을 잃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담대히 말하고 있다.
이상을 보면 야곱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재차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는 것은 당장에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한 즉물적인 사고방식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야 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편을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결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성경은 야곱이 양식을 구하는 일에 있어 하나님의 약속을 신앙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사리를 분별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야곱은 기근이 임한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는 야곱의 축복은 매우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야곱의 예언적인 축복은 후에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형들에게 밝히고 아버지를 모셔 오게 한 것으로 성취된다. 그러나 지금 야곱에게 있어서 베냐민과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기로 작정한 것은 심각한 결정이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는 말의 원문에는 ‘자식’이라는 말이 없고 단순히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로 되어 있다. 따라서 야곱의 심정은 전적으로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에 의해 되어질 것뿐이지 인간으로서의 야곱은 아무 것도 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약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지 그 이상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야곱의 신앙고백이 이 말 속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예장 서울노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