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3:1-2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 칼빈
본 시편은 통합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영광에 대한 인식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되고 또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그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시다고 선포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풍파와 요동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바라고 평안한 마음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자기 백성을 결코 속이지 않으신다는 선언이 나옵니다.
1. 본문 1절은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입니다.
저자가 앞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이는 마땅히 돌려야 할 하나님께 속한 권능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에게서 사악하게 하나님의 권위를 박탈하는 처사는 빈번히 경험하는 두려움과 떨림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무적(無敵)의 권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권능은 우리에게서 맹렬히 다가오는 모든 시험을 물리쳐 하나의 무적의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선지자가 여기서 가르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에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패로 적대 세력을 막아내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방패로 막아낸다면 제 아무리 무섭다 한들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을 자기 원하시는 뜻대로 통치하신다는 이 사실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다음에 ‘권위와 능력을 입으시며’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다른 존재로부터 이끌어 온 어떤 요소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실제적인 결과와 확실한 체험을 통하여 인간을 통치하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의를 보여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세계를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을 입증합니다.
단순히 세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섭리를 입증하기에 족할 것입니다.
시편 93 편
하늘이라는 천계가 매일 운행됩니다.
또 그 구조가 광대하여 다 알 수 없습니다.
또 그것들의 자전과 공전 속도를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움직이는 조화 속에 아무 충격이나 혼란에도 부딪치지 않습니다.
태양은 매일 회전하므로 그 진로가 달라지나 해마다 정확히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우주의 공간을 떠돌고 있는 모든 혹성들은 각기 제 위치를 유지합니다.
그 공간 안에 작은 지구가 제 괘도를 따라 자전하며 공전하며 제 위치를 지킵니다.
이제 이 부분에서 칼빈의 오류 한 부분이 나타납니다.
“지구가 공간에 매달려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떠받쳤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위의 하늘들이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운행되고 있는데도 무슨 수로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까?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정시켜 굳게 세우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강조를 나타내는 불변화사 אף(아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칼빈이 지구는 우주 공간의 일정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다 일정한 질서를 따라 조화 있게 움직이고 있다는 천동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것은 칼빈 당시의 사람들이 받아들였던 지배적인 우주관이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혹성들이 공전을 하며 지구 자체도 자전을 한다는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을 갈릴레오(1564-1642)가 망원경으로 입증하기 전에 칼빈(1509-1564)이 본 주석의 집필에 착수한 것이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해석자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변질되고 오염된 전체 사상체계 중에 가끔 쓸만한 것이 섞여 있는 경우이지만 칼빈의 경우는 보석꾸러미 중에 한 두 부분이 상이한 것이 박혀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칼빈의 이 부분적인 착오는 성경의 권위에 전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 착오의 책임은 성경에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칼빈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은 지동설을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갈릴레오에게 사약을 내린 배심원들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책임을 성경 말씀에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지와 고집에 돌려야만 할 것입니다.
시편 93 편
2.본문 2절은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비 되어 있사오며’로 읽습니다.
그러나 그 두절을 한 문장으로 보면 문맥과 일치됩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계시므로 주의 보좌도 그때부터 세워져’ 혹은 ‘예비 되어 있나이다’ 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 말씀이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한 단순한 주장인 것처럼 결부시킵니다.
시편 기자는 분명히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항상 권능과 위엄으로 옷 입고 계신다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보좌”는 제유(提喩 ; 일부로 전체 혹은 특수로써 일반을 나타내는 수사학의 표현법, 또는 그 반대를 나타낼 경우도 있다) 법으로 정부의 임무 혹은 권능을 뜻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하여 적용되는 바 사람에게서 이끌어 내어 하나님께로 돌려지는 상징들을 전달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 찬양을 돌림으로써 시편 기자는 사실상 이제까지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거나 아니면 멸시하려는 의도에서 제창되어 온 모든 터무니없는 사상들을 일축합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정부의 보좌에 앉으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분의 존재를 포기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시편 93 편
시93:3-5 여호와여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리는 세상국가들이 일으킨 동란들을 말씀합니다 우주의 분위기는 혼탁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것은 “큰 물들”(세상국가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그 혼탁한 공기는 사라지고 신선한 분위기가 대입(代入)될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인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특수 은총, 곧 복의 정점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특수은총은 그의 “증거”(계시(啓示)하시는 말씀)와 그의 “집”(교회)의 영구성(永久性)을 말합니다.
1. 본문 3-4절은 “(3)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4)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큰 물결의 소리를 인하여 바다의 물결이 두려우나 여호와는 훨씬 더 두려우시니이다 - 칼빈)” 입니다.
본 절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다양한 의미들이 부착되어져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원수들이 교회에 대하여 가한 맹렬한 공격과 그 원수들의 공격을 제시하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암시로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취해야만 하며 상징적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갖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3,4절을 비록 많은 물소리가 두렵고 바다의 물결은 더 두려우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보다도 더욱 두려우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시인은 여러가지 중에 한 간단한 예증을 제시함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하나의 두드러진 예증, 곧 그의 웅장하신 위엄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에게 감명을 끼칠 수 있는 예증을 위해서라면 큰 물과 바다의 요동 외에 다른 것을 더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시편 29편 3, 4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뇌성을 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물소리에서와 흉융한 바다 물결에서도 그의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93 편
여기에 하나님의 대조가 의도된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면 본 절 하반부는 여기 언급된 모든 두려움이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위엄을 생각하게 될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추출될 수 있는 의미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세계가 맹렬한 요동으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하나님의 통치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장에라도 그의 권능으로 그것들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본문 5절은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입니다.
지금까지 시인은 창조 사역과 섭리적 통치에 하나님의 뛰어나심을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주는 도리를 알려주신 일에서 나타난 자기 택하신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탁월하신 선을 말합니다.
시인은 본 절을 주의 율법의 절대적 신뢰성과 진실성을 찬양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모든 나라들에게 차별 없이 제공된 보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시인은 즉시 주의 집이 영원히 지속될 영광으로 장식되리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세계 모든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그의 교회 안에 영생의 언약을 두시고 주로 거기서 그의 영광이 빛을 발하도록 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시인은 이런 보화를 그 밖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히브리어 נאוה (나아바 ; 바람직한) 를 마치 시인이 ‘성전의 장식이 값진 것이었다’ 고 말한 것처럼 번역합니다.
그러나 문법상의 구조에서 ‘날들이 장구하리라’ 는 말은 영구한 연속을 뜻합니다.
우리는 주의 진리가 계속 세대를 통해 충실히 보전되도록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사59:21)는 이사야의 언급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