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골 딱새 이웃
박경선(안젤라- 대곡성당)
남편은 거처를 정할 때 옛사람들이 살림터를 고르듯 수화(水火)와 오곡, 풍속과 산천의 아름다움을 살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퇴임을 앞두고 시골집을 찾아다닐 때는 그런 거창한 기준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그저 도심에서 멀지 않고, 흙을 만지며 소일할 수 있는 텃밭과 나무, 흐르는 강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그런 마음으로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니다가, 소나무가 울타리를 둘러싼 푸른 잔디 정원을 만났다. 순간, 우리는 여우 골의 홀림에라도 빠진 듯 마음을 빼앗겼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덜컥 집을 샀다. 남편은 전지가위와 잔디 깎는 기계를, 나는 손님을 맞아 음식을 나눌 커다란 쟁반과 식기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둘러보니 나뭇가지 사이에도, 처마 밑에도 새들은 이미 이곳을 제 집으로 삼아 살고 있었다. 도시의 새장에서 키우던 앵무새가 날아가 버린 기억이 났다. 사료를 챙기고 새장을 부지런히 청소해 주었지만, 녀석은 자유를 원했다. 이곳의 새들은 사람이 공을 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자유롭게 살며 아침마다 노랫소리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어느 주말, 일주일간 비워둔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부엌 쪽에서 무엇인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어라, 딱새가 어디 숨어 있었지?’ 새가 떠난 자리를 따라가 보니, 부엌 앞 신발장 위에 놓인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 둥지가 있었다. 메추리알보다 작은 분홍빛 알 여섯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딘가에서 물어온 하얀 실오라기와 마른풀을 오밀조밀 엮어 만든 둥지는 폭신한 솜이불 같았다. ‘어디서 저 실을 찾아왔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텐데 제 보금자리를 어쩌면 이리 정갈하게 지어놓았을까.’ 감탄도 잠시, 걱정이 앞섰다.
‘왜 하필 사람 발길이 오가는 신발장 위였을까.’ 우리야 걸음을 조금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집 안팎을 제 영역처럼 오가는 고양이가 문제였다. 나는 고양이 밥그릇부터 텃밭 쪽으로 멀찍이 옮겨놓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하며 딱새 눈치를 살폈다.
6월이 되자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정원의 자두나무 한 그루도 붉은빛을 띠며 익어가기에 주말을 맞아 친구들을 초대했다. 잘 익은 자두 맛을 보여주고 싶어 다가갔지만, 나무 아래에는 씨앗만 소복이 널려 있었다. 새들이 먼저 알고 한바탕 잔치를 끝낸 뒤였다. ‘주인 몫도 조금 남겨주지.’ 서운함이 스친 것도 잠시, 이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물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얻은 열매를 내 것이라 여겼던 마음이 민망해졌다. 자연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진짜 주인들이 제 몫을 챙겨 간 것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풍요롭고 편안해졌다.
스무날쯤 지났을까. 신발장 위 둥지에서 마침내 알이 깨어났다. 연노란 부리가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갈색 솜뭉치 같은 새끼들이 몸을 포개며 꼬물거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것들이 어미의 날갯소리만 나면 입부터 쩍쩍 벌렸다. 딱새 부부는 먹이를 물고 와서도 곧장 둥지로 들어가지 않았다. 맞은편 대추나무에 앉아 한동안 고양이와 사람의 기척을 살핀 뒤에야 비로소 날아들었다.
7월로 접어들자, 무화과나무에 초록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둥지 속 새끼들도 날로 몸집을 키워갔다.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녀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미가 침입자가 오면 죽은 척하라고 가르쳤나 봐요.”
내 말에 남편이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세상 사는 법을 가르치듯, 어미 새도 살아남는 지혜를 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새끼들은 어미가 날라 주는 먹이를 부지런히 받아먹었다. 힘센 녀석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순한 셋째 녀석은 뒤로 밀려나 고개만 삐딱하게 내밀곤 했다. 새들의 세계에도 나름의 질서와 삶의 무게가 존재했다. 먹이를 나르는 어미의 간절함과 둥지를 지키는 경계심을 보며, 집이란 결국 ‘서로를 기다리고 온기를 나누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여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파고들었다. 어릴 적 살던 집,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던 옛집들 역시 저 둥지처럼 따뜻한 솜이불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어느 날 아침, 집 안이 유난히 조용했다. 무심코 신발장 위를 올려다보니 둥지가 비어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휙 날아올랐고, 곧이어 다른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라갔다. 딱새 형제들이었다. 아직 비행이 서툰 듯 낮게 날다 가지에 앉아 숨을 고르더니, 이내 푸른 하늘을 향해 차례로 몸을 던졌다. 좁은 종이상자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들이 온 하늘을 품에 안는 순간이었다. 빈 둥지만 남은 마당에 허전한 바람이 드나들었다. 자식들을 떠나보냈을 때처럼 마음 한구석이 휑해졌다.
가을이 익어가는 9월, 차마 빈 둥지를 치우지 못한 채 정원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까치들이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대왕 소나무로 날아들었다. 이장님네 마당에 말려둔 통통한 땅콩을 물고 와 소나무 가지에 앉아 까먹고 있었다. 이장님이 수확한 땅콩을 나눠주러 오셨을 때, 까치가 놓친 땅콩을 주워 먹었다고 이실직고했다.
“하하하, 선생님네가 베풀며 사니까 까치가 알아서 나눔을 해주는구먼요!”
이장님의 농담에 함께 웃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땅콩 몇 알이 아니라, 자연의 신세에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기쁨이었다.
짐승과 새들에게 마당을 내어주고 마음의 풍요를 얻는 이 생활이 참 좋다. 먼 훗날, 정원 한가운데 든든하게 서 있는 대왕 소나무 밑동에 한 줌 재로 스며들어 잠들어도 좋겠다. 내가 흙이 되고 나무가 된 그날에도, 작은 딱새 한 마리 날아와 가지 끝에 정갈한 집을 짓고 까치가 땅콩을 물고 와 종알거리며 놀아준다면, 돌아가는 길이 절대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2026년 9월 22일. 15쪽
박경선 약력
◉ 등단: 새한신문에 수필 당선(1987년),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당선(1993년),
아동문예에 동시 당선(1994년).
◉ 저서: 수필집 『섬김밥상 행복교육』 『김대건』 전기 등 26권 출간
◉ 수상: 청구문학상, 영남아동문학상. 한국어린이문학상. 대구문학상. 황조근정 훈장
◉ 현재: 교육 타임즈사 『교육과 사색』 월간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