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4,25-33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9월 들어 첫 번째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튜브 동영상이 나가질 않습니다.
사실은 딴 데 갈 계획이 있어서 실시간 방송을 취소했는데, 이렇게 비 내리고 태풍 오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녹음으로 음성으로만 주일 강론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군중들과 같이 길을 가는데 갑자기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좀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는 무수한 군중을 생각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요?
이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를 기를 쓰고 죽자 살자 쫓아다니는데 왜일까?
아마 대부분 사람은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관심이 있어서 쫓아다닌 건 아닐 겁니다.
메시아인지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능력이 있는 마술사처럼 아픈데 병 낫게 해주는 사람,
아무튼 능력자이기 때문에 쫓아다녔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을 함께 가면서 길거리 설교를 하십니다.
아마 예수님으로서는 이 사람들에게 첫 단추를 잘 채워줘야겠다는 마음이 드셨을 겁니다.
그래서 참 뼈아프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했을 때 과연 알아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아마 이 말뜻을 거의 몰랐을 겁니다.
예수님 따라다닌다고 하는 것은 그저 복을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어마어마한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 누가 알아들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얘기하신 이 말은 한마디로 압축하면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도 없고 나를 따라다닐 자격도 없다.’입니다.
여러분들 만일 지금 이 시대에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하고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다 죽인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끝까지 천주교 신자로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십자가 갖다 버려라.’ ‘성상 부셔라.’
이런 명령이 나라에서 내려졌다고 한다면 어떡하실 겁니까?
쉽지 않겠죠?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작년에도 순교자 성월이 있었고, 내년에도 분명히 순교자 성월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세례받고 해마다 순교자 성월이 지나가는데 순교자처럼 살고 계십니까?
순교자들의 정신이 무언지를 알고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얘기하신 ‘순교하지 않으면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여전히 예수님은 그냥 나에게 복 주시는 분 그런 분으로만 끝나고 있다면 기복 신앙이겠죠.
순교자 첫 주일을 지내면서 순교자들의 정신에 대해서 제가 몇 가지로 요약해봤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상황으로 볼 때는 천주교는 사교로 인정이 되었기 때문에
순교자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도저히 신앙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분들의 뛰어난 순교 정신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첫 번째로 순교자들은 생활 전체 삶 전체가 순교였습니다.
예비자 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교리를 배웠습니다.
권력 앞에서 폭력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한 준비를 늘 해왔다는 얘기죠.
일생에 단 한 번의 성사를 받기 위해 사제를 기다렸던 분들이고,
단 한 번의 미사 참례를 위해서 수백 리 길을 걸어서 사제가 계신 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사제와 신자들은 동네 외인들이 잠들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다가, 밤이 돼서야 호롱불이 새어나가지 않게끔
불빛을 막으면서, 사제도 큰 소리로 못하고 작은 소리로 경문을 외우면서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세례받고 처음 드리는 고백성사와 성체성사,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사제를 앞에 두고 미사를 드릴 때
그 감격은 어떠했겠습니까?
눈물 때문에 성체를 제대로 넘길 수나 있었을까요?
아무튼 수백 리 길을 걸어서 신부님이 경상도에 계신다고 하면 전라도 신자들이 장사꾼처럼 변장하고
며칠이고 걸어서 찾아갑니다.
그리고 목자를 만난 양들은 신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한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겠지요.
또, 정든 고향과 재산을 다 뺏기고, 박해가 올 때마다 깊은 산속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삽니다.
제가 7년 동안이나 사목했던 배티 순교 성지, 지금이야 차가 다니지만, 옛날에는 첩첩산중 소백산맥의 줄기였습니다.
신유박해를 맞이해서 경기도 충청도 또 전라북도 쪽에 있는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서
깊은 산으로 깊은 산으로 모이다 그 소백산맥까지 오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천주교 신자 행세를 할 수가 없었지요.
약초를 캐러 온 사람,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 등의 행세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의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가 다 교우들이지만 서로 교우들인지도 몰랐겠죠.
그런데 이상하게 해가 중천에 뜨면, 나무를 캐다가도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옵니다.
삼종 기도하러 들어갔다. 나오는 거겠죠.
서로서로 좋은 의미로 의심을 합니다.
‘혹시 저 사람 천주교 신자 아닌가?’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나무작대기로 자기 앞에다가 십자가를 급니다.
그것을 바라본 다른 이들도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긋고 아니면 물고기를 그립니다.
다 천주교 신자들이었던 것이었죠.
서로 부둥켜안고 그때서야 자기 소개합니다.
‘형제님, 저는 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온 베드로올시다.’
‘저는 대전에서 박해를 피해 온 안토니오올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교우촌이 배티 성지 근방에 15개가 있었던 겁니다.
한국에서는 제일 많은 교우촌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최양업 신부님은 사제 서품을 받고 여섯 번의 시도 끝에 조선에 입국하여,
그 당시 주교님으로부터 한국의 첫 번째 본당 신부로 임명을 받고 배티로 부임을 하십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첫 번째 본당이 바로 배티인 겁니다.
하지만 최 신부님은 열다섯 군데, 그 근방에 있는 교우들만 사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한국에는 한국 신부는 딱 한 명이었죠.
전국에서 한국 신부님 최 신부님을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그래서 일 년에 8천 리씩을 걸어 다녔던 겁니다.
서울-부산 왕복 세 번 반이 되는 그 거리를 걸어 다니시면서 전국의 120개가 넘는 천주교 교우촌을 혼자서 사목하시다가
과로로 길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사제도 순교의 삶이었고 신자들도 순교의 삶이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렸고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연명하였지만, 교우들끼리 서로 돕고 의좋게 살았습니다.
서로 충고하면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의를 위해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렇게 어느 한순간만이 순교의 삶이 아니라 눈 떠서 잠잘 때까지 매일매일의 삶 전체가 순교였던 겁니다.
순교자들의 정신의 두 번째, 이분들은 이웃사랑 실천에 뛰어났습니다.
극심한 가뭄과 탐관오리들의 착취, 늘 항상 쫓기고 빼앗기는 신세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교우들끼리 서로 돕고 위로하며 살았습니다.
외인들은 보릿고개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도, 교우촌에서는 절대로 없었다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죠. 빵의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또 감옥 안에서도 큰 사랑을 보였습니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와도 교우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도 얻어맞아서 뼈가 살 밖을 뚫고 나와도 무릎을 꿇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우들은 고문 중에 절대로 다른 교우들의 이름을 불지 않았습니다.
벗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어떤지를 행동으로 보였던 겁니다.
순교자들의 정신 세 번째, 날로 깊은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스스로 교리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성서를 읽었고 배운 것을 말과 글로써 남에게 전달하려 했었습니다.
고문 중에도 선교를 하려고 애썼습니다.
관장 앞에서 해박하게 교회를 변론했습니다.
복자 김시우는 중국 고사를 들어서 관장을 가르치다가 창피하게 하자 턱을 부수는 고문을 당하고 죽었습니다.
사실 순교자들의 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비유는 좋은 환경에서 배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선교사에게 배웠고, 구하기 힘든 한글 영적 서적을 통해서 스스로 교리 공부와 성서를 읽었던 겁니다.
절대로 하느님에 대하여 무식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던 겁니다.
이렇게 간단히 순교자들의 정신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생활 전체가 바로 순교였다.
두 번째 이웃사랑의 실천에 뛰어났다.
세 번째 하느님을 알기 위하여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배웠다.
목이 잘리는 그 순교의 순간이 우리 생애에는 안 올지 모릅니다.
지금 얼마나 종교가 자유롭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영적 순교를 해야 합니다.
영적 순교의 출발은 분노하는 것, 화나는 것 참는 것입니다.
화날 때 참는 것은 다른 말로 다른 사람의 밥이 되라는 얘깁니다.
또 다른 말로 바보가 되라는 얘깁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자기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고 회개하는 척하지만, 형식으로 다 끝납니다.
내 탓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순교라는 것은 남편의 탓이 아니라 내 탓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남편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의 탓이 아니라 남편인 내 탓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밥이 되는 겁니다.
어려운 이들의 밥이 되는 겁니다.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밥이 되는 겁니다.
한국의 많은 순교 성인 성녀들이시여!
이 환란의 시대, 어둠의 시대, 영적 빈곤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후손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냉담하지 않고,
배교하지 않고, 매일매일 분노하는 것 참고 다른 사람의 밥이 되고 바보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저희들을 위해서 전구 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사셨던 그 세 가지의 열매 맺는 영성,
삶 전체를 순교로 알고 살게 해주시고, 이웃사랑 실천에 게으르지 않게 해주시고,
틈이 날 때마다 하느님을 알려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들의 그 아름다운 정신을 저희들에게도 전달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아멘
강복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2022년 연중 제23주일 (9/04)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