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라(大栅栏)
북경에는 大栅栏이란 골목(胡同)이 두 곳이나 있다.
한 곳은 북경의 천안문 광장 남쪽 前门에 위치해 있고 다른 한 곳은 서장안가(西长安街) 쌍탑(双塔) 동쪽에 위치 해 있다. 이 두 골목의 글자는 똑 같지만 발음은 전혀 다르다. 전문前门에 위치한 곳은 따스라라고 하며 쌍탑에 위치한 곳은 글자 그대로
따짜란(大栅栏)이라고 한다.
前门에 위치한 따스라는 북경에서 가장 유서 깊고 번화가로 소문난 곳이다. 그 유명한 동인당同仁堂도 바로 이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북경에 갔던 사람이 따스라도 가보지 못했다면 아예 북경에 갔댔다는 얘기도 꺼내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처럼 따쓰라는 북경에서 전통이 있는. 유명한 골목이다.
북경에는 우리와 친척같이 지내는
장용성张勇誠이란 한족 분이 살고 있었다. 너희들은 그분을 예예(爷爷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북경나들이를 몇 번 다녀 올 수 있었다. 할아버지 댁은 천안문과 아주 가까운 지안문地安门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에는 구경거리가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 바로 따스라다.
어느 날 우리는 너 할아버지를 따라 따스라를 구경하게 되었다. 너 할아버지는 대대로 북경에서 살아 왔기에 북경에
한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따스라는 중국어 발음으로 따짜란이라야 맞다. 따짜란은 큰 울타라는 뜻이다.
따스라는 자금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청나라 초기에 이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치고 관리했다는데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따스라 골목 입구에는 大栅栏이란 팻말이 꽂혀 있었다. 나는 너의 할아버지에게 따스라라는 이름이 궁굼하여 물어 보았다.
- 아저씨, 이 골목은 글자대로라면 따짜란인데 왜 따스라라고 합니까?
나의 질문에 너의 할아버지는 흥미진진한 역사의 에피소드를 얘기 하셨다.
내용은 이렇다.
청나라의 아무께 황제가 하루는 행차차 前门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제는 골목의 시끌벅적이는 소리에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황제는 슬그머니 어가御驾 밖의 세상을 엿보았다. 황제의 첫눈에 들어 온 것이 바로 大栅栏 이란 팻말이었다.
황제는 수행신하에게 물었다.
- 이곳이 따스라인가?
황제는 글자를 잘못 읽은 것이다.
석 자 중에 大자만 맞고 뒤에 두 글자는 틀리게 발음 한 것이다.
- 항상마마,
이 곳은 따짜란입니다.
수행신하가 민망해 하며
얼른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황제가 하는 말이 기상천외 했다.
- 짐이 따스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부아첨에 길들여진 신하가 허리를 깊숙히 굽히며 말했다.
- 황상마마, 황송하옵니다.
이 곳이 바로 따스라입니다.
그 때부터 이 골목은 따스라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둔갑 했다.
너 할아버지는 이런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마치고 나서 현실을 비꼬는 의미심장한 얘기도 빼놓지 않으셨다.
-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뭐가
있소. 지금도 공산당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해야지 솔직한 얘기를 했다간 큰 일 나는거 아니오.
너 할아버지의 얘기가 진실이라고 해도 공산당 천하에서는 친구에 대한
백퍼센트의 신뢰가 없으면 그런 얘기를 하는것은 절대 금기 사항이었다.
그만치 우리의 친분은 두터웠다.
너 할아버지께서는 그 황제의 이름도 알았지만 너무나 오랜 적 얘기라 내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그 후에도 따스라의 기원에 대해 알아 보려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봤으나
어디에도 너 할아버지가 하셨던 얘기는 찾을 수 없었다.
너 할아버지는 고인이 되신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생전에 그 분과 함께 했던 세월이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