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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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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2026년 설날 가정예배 설교문
장코뱅 추천 2 조회 356 26.02.17 07:54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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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26.02.17 09:02

    첫댓글 여호수아24:15

    <호크마 주석>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임 라 베에네켐'(* )은 직역하면 '만일 너희의 눈에 악하다면'(if it is evil in your eyes)인데, 곧 이말은 '내키지 않거든'(if you are unwilling to-, RSV, Living Bible). '바람직스럽게 보이지 않거든'(if-seems undesirable to you, NIV)등의 뜻으로 의역될 수 있다. 이와같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것이 내키지 않거든'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되 결코 억지로나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실과 진정으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 임종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을 새롭게 다지기 위하여 분명한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즉 그는 언약을 갱신함에 있어서, 어중간한 태도를 단호히 배격하고 이방의 우상이냐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냐를 확실히 결정하도록 백성들에게 촉구하였던 것이다. 사실 신앙에 있어서 어중간한 중립(회색)지대란 있을 수 없다(왕상 18:21).

  • 작성자 26.02.17 09:02

    또한 양쪽 다 택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마 6:24). 왜냐하면 우상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부정한다는 것과 같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곧 모든 우상을 배격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빛과 어두움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고후 6:14-16).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종교는 유일신교(唯一神敎)이지, 결코 일신교(一神敎)가 아닌 것이다(신 6:4 주석 참조). 즉 다른 많은 신들 중에 '여호와'도 하나의 신이며, 그중 비교적 뛰어난 신이란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오직 '여호와'(Jehovah) 그만이 홀로 참신이시고, 다른 나머지 모든 우상들은 한낱 돌이나 나무, 쇳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독교적 유일신교인 것이다(사 45:20;렘 10:5).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한 뒤 지체없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것은 결코 백성을 선동하려거나 또는 위협하려는 목적에서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전생애를 통해 몸소 체득한 바 스스로 우러나온 신앙고백일 뿐이다. 즉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비교할 가치나 머뭇거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지체없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 뿐이다.

  • 작성자 26.02.17 09:03

    자세한 내용은 본장 14-28절 강해, '여호수아의 촉구와 결단'을 참조하라.

  • 작성자 26.02.17 09:07

    여호수아24장

    <호크마 주석>

    2. 백성들의 맹세(24:14-28)
    지금껏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하여 회고한 여호수아는 이제 마지막으로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즉 자신과 자신의 집은 이처럼 이스라엘을 권념하신 하나님을 섬길 터인데 백성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그러면서 하나님만을 섬기고 이방신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이방신을 따르고 하나님을 버릴 것인지 결단하라고 촉구한다. 이에 백성들은 자신들도 여호수아처럼 이방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고 굳게 맹세한다(14-18절).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러한 백성들의 맹세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순간적인 결단은 쉽게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나안 땅에는 이방 종교와 풍습이 뿌리 깊게 산재해 있던 터라, 이들이 늘 유혹과 위협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불순종에 따르는 저주에 대하여 경고를 발하면서까지 맹세의 신중성을 강조한다(19-23절).
    그런데도 백성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만 섬기리라 맹세하니 이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증거한다. 그리고선 백성들의 맹세를 기념하기 위하여

  • 작성자 26.02.17 09:07

    하나님의 성막 곁 상수리나무 아래에 증거의 비석을 세운다(24-28절).
    이상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호소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할 것을 굳게 결의한 것은 우리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결의는 여호수아가 들려준 회고담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전심으로 공감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신앙은 단순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직접 피부로 절감하고 눈으로 목격함으로써 체득한 것과 다름없는 확신에서 비롯된 신앙 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한다는 우리들도 우리의 전존재가 그분을 체험하고 그분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성숙된 신앙을 견지해야지 결코 관념적, 일시적 감정에 치우친 절름발이 신앙을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호수아의 촉구와 결단 - 본문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길 것을 권면한 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생각들면 이방신과 하나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촉구하는 장면이다(14-16절).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얻릉 수 있다.

  • 작성자 26.02.17 09:08

    (1)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세상 중 양자 택일만 있다는 사실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우상도 섬기지 않는 종교적 중용의 길이나 혹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종교적 혼합의 길을 허락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는 곧 우상을 섬기는 자이다. 이왕 하나님을 섬길 바에는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고 당신을 섬기는 자를 원치 않으신다(마 6:24 ; 고후 6:15-18).
    (2) 그 선택은 지금 이 시간에 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호수아는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15절)고 하였다.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미루면 그만큼 자신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선택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금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지금과 같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바로 오늘 이 시간이 참 종교를 선택할 최선의 시기이다(고후 6:2).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마음이 변하기 전에 선택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토기장이는 진흙의 반죽 상태가 가장 좋을 때 자신의 원하는 모양대로 토기를 만든다.

  • 작성자 26.02.17 09:08

    진흙이 굳어 버린 다음에 모양을 만들려고 할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만사에는 때가 있다(전 3:1). 선택해야 할 시기에 선택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선택하려고 할 때는 이미 때가 늦다.
    (3)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단력이 없이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주위의 상황을 보아가며 눈치껏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주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를 움직일 능력이 없어서 바닷물이 흘러가는 대로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해파리와도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늘 주저하거나 머뭇머뭇 하기만 하는 사람은 결단력 있게 행동하지 못한다. 환한 대낮이 되었는데도 어디로 여행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면 그는 결코 유익한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항해사가 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하면 1등 항해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주위 환경에 좌우되거나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자신의 이성과 신앙의 소리에 길을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 작성자 26.02.17 09:08

    늘 두 갈래 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분명한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정진할 때 인생의 진보가 주어지는 것이다(빌 3:13, 14).
    (4) 여호수아는 올바른 결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방신과 하나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집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였다(15절). 그는 백성들이 자신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나서 자기의 생각을 표명하지 않고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었다. 그의 결심은 단호하고도 엄숙했다. 그의 말은 마치 백성들이 모두 우상 섬기는 것을 선택하고 자기에게까지 우상을 섬기라고 권유해도 나는 끝까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는 이와 같이 과단성 있게 결단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였다. 이 사실은 여호수아의 지도자로서의 일면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의사, 목사, 스승, 부모의 행동은 그들의 지도와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국가의 통치자들이 어떻게 결단하여 행동하느냐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 작성자 26.02.17 09:09

    크게 영향을 받는다. 통치자가 악한 길을 가면 백성들도 악한 길로 걸으려 할 것이고 선한 길로 가면 백성들도 선한 길로 걸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여호수아의 바른 선택과 결단력은 모두 지도자들과 사람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기독교 가정에서의 부모의 책임 - 우리가 본문에서 유의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15절)고 말한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면 누구든지 이 여호수아와 같이 그의 가족의 신앙생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한 몸이 되게하여 가정 제도를 세우신 이래 가정은 인간 사회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그 가운데 특히 가장(家長)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창 2:18025 강해, 창조론에 나타난 성경적 남녀 관계>. 온 가족은 아버지가 결정하고 행하는 대로 따르게 된다. 만일 가장이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면 가족들도 그를 본받아 신앙생활을 착실히 하게 되지만 가장이 우상을 섬기면 가족들 역시 우상을 섬기게 된다. 이런 점에서 여호수아가

  • 작성자 26.02.17 09:09

    가정을 포함시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한 것은 가장으로서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전체적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가정이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가르친다. 가정은 사회에 있어서 가장 작은 기본 구성단위이며 또한 가장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러 왔으며(눈 2:41-51). 모세가 그토록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그의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출 2:1-10).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장소이다. 이 가정이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잘 담당하여 모든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충만한 생활을 하게 되면 태양이 빛을 비추듯이 그들 모두는 세상에 빛을 환하게 비추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부모된 자들 특히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자라나도록 지도해야 하는 신성한 책임이 있다 하겠다<삼상 2:11-26 강해, 부모의 자녀 교육>.

    하나님의 거룩성 - 브라이첸(Vreichen)에 의하면 '거룩'이란 개념은 구약에서 가장 중심적인 요소라고 하였다. '거룩'을 뜻하는

  • 작성자 26.02.17 09:10

    히브리어 '코데쉬'(* )는 항상 거룩한 하나님이나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거룩하게 된 사람들과 때와 장소와 사물들에만 사용된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도 본래는 거룩하지 않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거룩하게 된다'(Ringgren). 이제 여기서는 하나님의 거룩성에 개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거룩은 단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은 하나님 당신의 신분(Selfhood)이며 당신 주장이다. 다시 말해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의 본질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거룩을 따를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지존자이신 것이다(삼상 2:2 ; 6:20 ; 욥 25:5).
    (2) 이 거룩은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별성을 뜻한다. 하나님의 거룩은 당신을 천사들과 구별시킨다(욥 4:17, 18 ; 15:14). 이러한 거룩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의 거룩은 인간의 죄에서 분리되는 것 뿐만아니라 죄에 대한 그의 증오와 적대감을 나타낸다(신 32:4 ; 합 1:15).

  • 작성자 26.02.17 09:10

    인간이 자기의 죄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보았을 때이다(사 6:3-8).
    (3) 그러나 이 거룩이 피조물에 속한 것과의 구별을 뜻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그분의 초월성과 동등시하는 것과 그분의 내재성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어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은 그의 거룩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이 지고하게 나타난 것이 그의 사랑이다. 호세아 예언서에서 우리는 거룩의 개념이 사랑의 개념으로 숭고하게 승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자기의 부정한 아내를 사랑하고 그녀를 다시 따뜻한 가정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는 호세아의 지극한 애정은 길잃고 헤매이는 죄많은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반영한다(호 1:1-3:5).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은 인간의 죄악과 반대되면서도 이 거룩하지 못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26.02.17 15:22

    잠시 읽고 명절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은혜를 얻고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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