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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대신사의 영부사상과 무극
(1) 동학의 태극과 궁궁의 영부31)
동학의 동경대전에도 태극이라는 말이 한번 나온다. 최수운은 경신득도(서기1860년4월)시에 님(hanallim;당시 천주에 대한 순한국어, 이하 천주로 씀)과 중요한 문답을 갖는다. 이 문답의 현장에서 바로 태극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천주)에게 영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그 형상은 궁궁이니,
나의 이 영부를 받아서 사람의 질병을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서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포덕문6장>
오유영부 기명선(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 수아차부 제인질병
수아주문 교인위아칙 여역장생 포덕천하의
수운의 득도시에 천주는 자신의 소유물인 영부(Yeongbu;the Spiritual Talisman)와 주문(chumun;Formular)을 위와 같이 내려 주었다. 천주는 영부와 주문을 나의 것(오유,수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영부를 태극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궁궁으로도 설명한다. 여기서 동학의 태극은 궁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암시를 받을 수 있다. 필자는 이를 태극형 영부와 궁궁형 영부로 나누어 태극과 궁궁의 의미32)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궁궁을 태극의 상대개념으로 본 것이다. 궁궁은 태극→음양→사상→팔괘라는 역학적 사유구조에 대한 돌연변이로 나타난다.
1) 태극형 영부 : 음양 대대의 일생이법
영부에서 태극이 갖는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동양의 음양론을 대표하고 있는 주역의 태극관에 잠시 눈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 역에서 태극을 설명하는 말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의 18자이다.
주회암은 이 “역유태극”에 대한 주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가 매양 둘을 낳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역은 음양의 변하는 것이고,
태극은 그 이치다. 33)
주회암은 이전 시기의 태극관과는 달리 “역유태극”을 태극의 일매생이 즉 일생이법의 자연의 이치라고 보았다. 또 그는 ꡒ역유태극ꡓ에 대해 역과 태극을 분리하여 규정하고 있다. 즉 “역은 음양의 변하는 것이요(역자 음양지변), 태극은 그 이치이다(태극자 기리야)”고 했다. 다시 말해 음양지변의 태극적 이치에 의해 역에 양의, 사상, 팔괘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팔괘는 삼재의 상이 비로소 갖추어지는 것”으로 중요시하였다. 따라서 주회암은 태극을 64괘를 구성하는 최고의 이치로 이해한 것이다.
이상을 통해 주역에서 말하는 “역유태극”은 송대 성리학에 이르러 64괘를 구성하는 일생이법의 자연원리로 해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4-8-16-32-64의 생성원리가 “역유태극”의 태극인 것이다.
그러면 이 태극의 일생이법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바로 음양이다. 이율곡도 이 “역유태극”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음양이 변화하고 바뀌는 가운데 태극의 리가 있다”34)고 말하고, 태극과 음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저 음양의 량단은 순환하여 그침이 없어서 본래 그 시작이 없다.
음이 다하면 양이 생기고, 양이 다하면 음이 생긴다.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함에 태극은 있지 아니함이 없다.
이것이 태극이 만화의 추뉴와 만품의 근저가 되는 까닭이다35)
율곡이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함에 태극이 있다”는 말은 역전의 “일음일양지위도”(계사 상5장)에 근거한 말이다. 음양이 비록 서로 상반되나 일음에는 반드시 일양으로, 일양에는 반드시 일음으로 대대성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 운동에는 “보편적인 변화법칙”36)과 질서정연한 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주역에서 말한 “역유태극”의 태극은 “음양이 대대하며 일생이법으로 만물을 생생하는 소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수운에게 있어서 태극은 “오유영부”라는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천주(천주)에 근원하고 있다. 즉 동학의 태극형 영부는 비인격적 천이 아니라, 인격적 천에 근원한 것으로써 음성과 양성으로 존재하는 천주의 형상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울러 만물의 본질이 음과 양의 두 기운일 뿐만 아니라, 일생이법의 음양 대대적 원리로 만물을 생성하고, 선약으로 만물을 양육하는 것을 의미해주고 있는 것이다.
2) 궁궁형 영부 : 음양중 통일의 일생삼법
그런데 수운은 주역의 “역유태극”의 태극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부를 태극 또는 궁궁이라 하였다. 태극으로 영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면 구태여 궁궁을 중복하여 말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태극에 궁궁을 더한 것이다. 태극 하나만으로는 천주의 영부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궁궁이라는 말을 더하여 영부를 완전하게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궁궁에는 태극에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민간 신앙에 오랫동안 유포되어 온 정감록의 “양궁”이라는 말에서 궁이 처음 보인다.
대개 세상에서 몸을 피하자면 산에도 이롭지 않고,
물에도 이롭지 않고, 양궁이 가장 좋다.37)
또 도선비기에도 “산불리 수불리 이어궁궁”이란 말이 나온다. 역시 산도 아니고, 물(강)도 아닌 다른 땅(지대)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수운은 이런 비결류의 궁궁에 반해 그 대안으로 새로운 이재궁궁을 언급한다.
세상구경 하였어라 송송가가 알았으되
이재궁궁 어찌알고 천운이 둘렀으니 <몽중노소문답가 5>
그러면 궁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일단 궁궁은 영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비태극적 요소(의미)를 함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태극과 같은 의미의 궁궁이라면 수운이 구태여 동어반복을 하면서까지 “태극, 또는 궁궁”이라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태극이 가지고 있는 음양적 요소와는 다르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닌, 다시 말해 양도 아니고, 음도 아닌, 제3의 어떤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제3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동학을 삼태극으로 설명하는 김상일의 지적은 주목할 만 하다.38) 특히 고문헌중에 천부경이 있는데, “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39)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 ‘무가 낳은 삼극’은 천태극, 지태극, 인태극으로 상징된다.40)
그렇다면 동학의 경전에서는 어떠한가? 삼태극적 논리를 찾아보기 위해 수운의 음양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음과 양이 서로 고루어 비록 백천 만물이
그 속에서 조화로 나오지마는
오직 사람만이 가장 신령한 존재이다 <논학문1>
음양상균 수백천만물 화출어기중 독유인최령자야
수운은 이 음양론에서 백천만물이 조화로써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음양이 상균 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음양상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아직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있다. 다만 이를 기존의 역학적 술어로 보면 음양대대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는 정-반에 대비될 수 있는 양-음이라는 개념은 나오지만 제3의 개념 또는 합적 개념이 명확하지 않지만, 필자는 여기서 수운이 말한 “기중”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기중”이라는 말을 통해 수운은 앞에서 말한 제3의 개념 또는 합적 개념에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하려는 것 같다. 이전의 음양론과 다른 새 음양론을 다음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운이 설파하고자 한 음-양에 이은 기중, 즉 제3의 개념은 노자의 도덕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업고 있으면서,
양을 안고 있는데, 충기로 조화롭게 된다.41)
이와 같이 이의 대림개념에 멈추지 않고, 새롭게 나아가 또 다른 삼의 개념으로 노자는 발전한다. 수운도 ‘음양과 그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기중’을 통해 또 다른 의미의 삼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궁궁이다. 혹 이 삼을 삼태극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수운은 먼저 쓴 양태극이라는 말과의 중복을 피하여 삼태극이라고 하지 않고 새 천도를 강조하기 위하여 궁궁이라는 새 말을 썼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현재 한국의 수운교와 천도교에서 사용하고 궁을기가 이러한 관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영부도라고 본다. 궁을기는 중을 중심으로 좌우는 완연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태극기가 상양 하음의 이원적 구조를 이루나, 궁을기는 좌궁, 우궁에 그것의 연결고리인 중이 있어 삼원이 된다. 따라서 궁궁형 영부는 삼극적으로 존재하는 천주의 존재양식을 설명하는 동시에 음-양-중은 만물의 본질이 되고, 일생삼법으로 만물생성원리가 되는 것이다.
부4-1좌궁,허중,우궁→부4-2 무극의 원→ 부4-3 영부도
여기서 궁궁과 궁을과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경전에도 궁궁과 궁을이 다르게 나온다. 영부에는 우형궁궁이라 했고, 불사의 약을 말할 때는 궁을기형이라고 했다. 궁궁은 궁궁을을에서 나온 말로, ‘궁궁을을’을 약칭할 때는 궁궁 또는 궁을이라 한다. 다만 필자는 음양의 조화 관계를 강조할 때는 궁을이라 쓰고, 태극의 상대개념으로는 궁궁이라고 쓴 것으로 본다.
(2) 동학의 무극대도와 무극
역전의 문장이 “역유태극, 시생양의”로 시작하는 것과 같이, 동경대전은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으로 시작한다. 두 경전의 본문에 묘하게도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동학의 두 경전중에, 먼저 동경대전에는 태극이라는 말 이외에 “범천지무궁지수, 도지무극지리”(논학문18), “무극지대도”(통유문)라는 말과 같이 무극이라는 말이 2회 나온다. 반면에 용담유사에는 태극이라는 말은 나타나지 않으나, 무극대도이라는 말이 십여 차례나 나온다는 것이 특이하다.42) 자세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릇 천지의 무궁한 수와 도의 무극의 이치가 모두 이 글에 실려 있으니..(논학문18장)
㉡ 무극의 대도를 닦아서 천주 덕을 펴려는 마음을...(통유1)
㉢ 만고없는 무극대도 여몽여각 받아내어(도수사1장)
㉣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용담가4)
㉤ 만고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창건(견)하니(권학가9)
㉥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 닥친 줄을 (용담가4)
당시 조선의 성리학 체계하에서 무극은 태극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태극보다 앞서는 그 무엇도 언급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들에 의하면 무극은 태극의 동일체이며, 태극의 본원성을 수식해주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극을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조선이었다. 그럼에도 수운은 무극을 노래하고 있다. 무극의 대도이며, 무극의 이치이며, 무극의 운수라고 말한다. 그동안 무극의 운이 막혔다가 이제야 무극의 운이 돌아왔다는 강렬한 주장을 편다. 과거 조선 500년 동안 무극의 운이 막혔으나, 이제 5만년 동안 새로운 무극의 운이 밀어닥쳤다는 말이다.
수운은 동경대전에서는 영부로서 태극을 말하고, 용담유사에서는 새로운 대도로서 무극을 말하였는데, 이처럼 수운이 무극과 태극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송송가가 알았으되 이재궁궁 어찌알고
천운이 둘렀으니 근심말고 돌아가서
윤회시운 구경하소..... 만고없는 무극대도
이세상에 날것이니 너는또한 연천해서
억조창생 많은백성 태평곡 격양가를
불구에 볼것이니 이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 <몽중노소문답가 5>
여기에서 우리는 “이재궁궁”, “무극대도”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무극대도에 의해 비로소 이재궁궁은 실현된다는 말과 같다. 이재궁궁의 근원이 무극대도라는 말이다. 이는 궁궁의 근원이 곧 무극임을 일러주는 것이다. 앞에서 궁궁은 일생삼법의 삼태극이라 했고, 태극은 일생이법의 양태극이라고 했다. 따라서 동학의 무극은 일반적 의미의 양태극의 근원일뿐만 아니라, 이 양태극과 함께 삼태극의 근원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동학의 무극은 주렴계의 ‘무극이태극’관에서 벗어나 음양 양태극외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음양중 삼태극을 제시하고, 그 양태극과 삼태극의 동시적 근원임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극과 영부는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 앞에서 동학의 영부는 음양을 본질로 대대적 구조를 이루는 태극의 이와 음양중을 본질로 통일적 구조를 이루는 궁궁의 삼이 묘합적 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삼은 불상리 불상잡같이 이이삼, 삼이이의 묘합속에 천도의 무궁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이와 삼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연-기연이기도 하다. 이 이이삼, 삼이이의 묘합적 형상이 곧 영부인 것이며, 그 묘리가 곧 무극인 것이다.
이를 역학적 원리로 보면, 태극을 역전의 “일음일양지위도”로 설명할 수 있다면, 궁궁은 역전의 “음양불측지위신”(계사 상5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진은 일음일양과 음양불측에 대해 “전자가 (일음일양이라는) 음양적 질서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면, 후자는 음양적 질서로서 인식할 수 없는 불가측한 영역”43)이라고 했다. 음양대대적 원리로는 인식할 수 있는 질서의 세계가 태극이라면, 음양으로 인식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궁궁인 것이다. 특히 궁궁은 이율곡의 말처럼 혼돈이전의 아득한 세계를 지칭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수운이 말한 무극의 의미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무궁조화의 뜻이다
태극과 궁궁, 즉 이이삼, 삼이이의 묘합속에 전개되는 천도의 무궁한 조화를 상징한다. 수운이 주문의 자해에서 밝힌 “조화자 무위이화야”인 것이다. 주문속의 조화는 음양회합 충화지기44)이며, 대조화45)로 영생불멸이다. 또 수운이 주문에서 말한 조화정이란 ‘음양의 이치’가 바르게 정해진 것을 뜻한다. “천지역시 귀신이오 귀신역시 음양인줄...”(도덕가1)이라 한 것같이 천지, 귀신, 음양이 한 원리로 순환하는 이치 즉 무왕불복지리(논학문8)이며, 무위이화인 것이다.
② 태극(또는 궁궁)보다 먼저 있는 근원자이다
수운은 태극과 무극을 구별하고 있다. 무극을 태극지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수운은 영부를 태극, 또는 궁궁의 형상이라 말함으로써 영부를 받는 사람마다 영부의 근원을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수운은 역사속에 숨어버린 무극을 영부의 태극 또는 궁궁으로 찾아가도록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무극을 찾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궁궁과 태극으로 무극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즉 무극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길이 있다. “태극→무극”과 “궁궁→무극”이 그것이다. 이는 기존의 “무극→태극→음양”이라는 단선논리를 거부한 것이다. 다시 말해 “무극→궁궁→음양중”이라는 또 하나의 복선논리를 갖는다는데 동학의 특징이 있다.
③ 인격적으로는 천주이다
“무극의 대도를 닦아서 천주의 덕을 펴려는 마음을 애석히 여긴다”46)(통유1)는 말에 의하면, 무극은 천주(님Hanallim)의 비인격적 표현일 뿐, 무극은 인격적으로 곧 천주(또는 천부)를 상징한다. 즉 동학에서는 궁극 실재에 상대적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뜻에서, 또 극이 없이 본원에서 통일된 절대로서 무극(또는 무극대도)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④ 유불선을 다 포함하는 대도이다
수운의 제자인 최해월은 “오도 사유 사불 사선 실칙 비유비불비선야 왈만고무지 무극대도야”라 했다. 천지 음양 일월 유불선의 근본을 처음으로 밝혔다는 의미에서의 대도이다. 김용옥은 아예 동학은 곧 무극대도라고 단언하였다.47)
(3) 동학의 관점에서 본 무극도설
필자는 동학의 관점에서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비판적으로 재조명하여 새로운 의미의 무극이태극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필자가 명명한 도설은 다음의 ‘무극도설’이다. 태극은 무극에 근본하기 때문에 동하는 것이다. 음양양의와 천지인삼재에 의해 우주는 생성과 존재구조를 이룬다. 천지인은 심극점에서 유기체적 통일성을 갖는다. 인간이 심극점에 바로 설 때, 무극, 태극과 함께 황극이 될 수 있다. 동학과 역학이 만나 새로운 음양, 천지인을 구성한다. 무극도와 그 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극이태극동 무시무종 적연창창 변개시광 동정혼원
동극이정 정극부동 일동일정 호위기근 부음이포양 분음분양 양의립언
일음일양지위태극동야 양변음합 생천지이수화목금토 음양지원 지기지령 벽세순포 사사섭명 풍우한열 성세사시 조화무궁야
고오행일음양야 음양일태극야 태극지본무극야
무극지진 태극지동 이오지정 묘합이응 음양상균 궁을기중 건도성남 곤도성녀 인온교감 화생만물 천지인지심 지호극처
무극지진 생생자연 불생불멸 무왕불복야
태극동 도지성야 품물유형 개물갑탁 득생이각정성명야
음양지의 궁칙변 반본일체 건남곤녀 수심정기 이중무화 무대무차 지어탈극야
유인재어기심극지중 사여합덕 참찬화육 칙최령자야 가위황극지대인의
시고 성음양지도 정삼재지리 출오행지수 어사가견의
5. 결 론
역전의 “역유태극”(계사 상11)에 근거하고, 주렴계의 “무극이태극”으로부터 비롯된 성리학의 태극논의는 주회암에 의해 무극논의의 단절을 가져왔다. 무극이란 본래 노자의 “복귀어무극”에서 유래한 말로 어둠을 지키는 것, 즉 무극은 어둠의 근원을 상징하고 있다. 필자는 주역에서의 무극의 존재가능성을 “역무사야”(계사 상10)에서 찾아보았다. “적연부동”과 “감이수통” 사이의 경계를 가볍게 간과할 수 없듯이 무극과 태극사이를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주렴계의 태극도설은 주회암이 태극지외(무극)를 부정했던 독선이 아닌, 렴계의 시각으로 되돌아가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주역과 역의 본질에 대한 탐구도 재시도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역서에 “태극자는 도야요, 태극은 무극야”라 하였지만, 그 말미에 “미형미현자는 불가이명구니 칙소위역자 과하여재아?”고 자문자답하며 역을 배우는 자가 이를 마땅히 알라고 경계하였던 것이다.
동학의 “오유영부, 기형태극, 수아차부”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태극은 아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나 아는 태극이전의 어떤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또 “천지무궁지수, 도지무극지리”(논학문18)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도지무극은 말 그대로 동학의 천도는 천지음양에 근원한 천도일 뿐만 아니라, 오 아의 천주에 근원한 무극지도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도가가 극이상(즉 무극)을 말하여 존재세계에 관심을 두었다는 말은 한편으로 유가와 같이 극이하의 가치세계에는 무관심하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체에 대해 웅십력은 “만리를 구비하고 있는 존재의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만선을 함하고 있는 가치의 근원자”라고 언명하였는데,48) 이런 본체론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동학의 무극은 태극만의 근원자가 아니라, 태극(즉 양태극)과 궁궁(즉 삼태극)을 동시에 하나로 회통시키는(일극회통), 모든 존재와 가치의 궁극적 본원자로 이해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동학은 극에서 극이상을 바라보면 무극(즉 무극대도)이며, 극이하를 바라보면 태극(즉 태극영부) 또는 궁궁(궁궁영부)이나 결국 극은 무극으로 회통해 있는 것이다. 동학은 “무극이태극”이라는 고정된 역학적 단선사유에서 벗어나 “무극이궁궁”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즉 무극의 생성론에는 “무극→태극→음양”이라는 단계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극→궁궁→음양중”이라는 새로운 단계론도 있다는 것이 동학의 영부가 시사하고 있는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수운이 창도한 동학의 무극은 이전 시기에 나온 유가나 도가의 무극과 달리 “무궁조화의 뜻, 태극 또는 궁궁보다 먼저 있는 근원자, 인격적으로는 천주, 유불선을 포함하는 대도”의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출전: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제14,15집, 2003.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