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다 부 동 전 투"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등 탐방..,"
"칠곡(漆谷)은 한국전쟁(6.25)의 격전지였습니다.
칠곡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1950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남(南)과 북(北)이 처절한 혈투를 벌였습니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칠곡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낙동강 전투의 자국들이 상처처럼 곳곳에 남아 있으며,
그 숫한 슬픔의 흔적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전적비와 기념관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 의 실상을 알리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낙동강변에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이 자리하고 있어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장소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칠곡의 명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팔공산에서 바라본 칠곡방향)
(다부동전적기념관과 야외전시장)
(야외전시장~전차와 장갑차)
(M48A2C 전차)
(M113장갑차)
(나이키 유도탄)
(비행기 F~86F : SABRE / 전투기)
(헬리콥터~UH.IH 헬리콥터)
(HAWK~호크 미사일)
"다부동전적기념관~~1981년 유학산 기슭에 전적비 겸 기념관을 세워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다부동전투를 되새기게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1사단장 육군 준장 백선엽 호국구민비)
"6.25 당시 제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1년 4월
주민들이 칠곡군 가산면 다부1리에 세웠던 호국구민비로서
2003년 8월 29일 기념관으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전투(1950, 8, 1~9, 24)는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축한 최후의 저지선~
(마산~왜관~낙동리~영덕~240km)으로 대구로 진출하려는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구국(救國)의 격전지였습니다."
"1981년 정부는 다부동전투를 기리는 전적비 겸 기념관을
유학산 기슭 다부동에 세웠습니다."
"당시 양측의 전투장비와 상황을 설명하는 모형들이 진열된 기념관을 한 바뀌
돌아도 왼일인지 답답한 가슴은 허전하였습니다."
"불어오는 겨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차라리 유학산 연봉을 올려다 보는 것이
다부동전적기념관의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다부동전투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다부동전투"
(구국용사 충혼비)
(구국경찰 충혼비)
(전시된 사진으로 보는 다부동전투)
~~~(다부동전투~조지훈 종군시)~~~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받아 /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동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 그것을 또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 /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다부동 전적지 야외전시장)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바라본 낙동강)
"다부동전적지에서 가까운 곳에 한국전쟁의 격전지 낙동강이 많은 사연들을 안고
칠곡 왜관읍 앞을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칠곡보에서 바라본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낙동강방어선의 최전선 칠곡의 *왜관* 과 *다부동* 은
당시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있던 대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 하였기 때문에
북한군은 대구 점령을 목표로 끊임없이 왜관과 다부동 일대를 공격 하였다고 합니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서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의 계기가 된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재조망하는 공간입니다."
(야외전시장)
(낙 동 폭 포)
(칠곡호국평화기념관)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낙동강방어선전투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호국평화체험의 장으로서 기념관 외형은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습에서 착안하였다고 합니다."
(55m 대형 태극기 게양대와 유엔참전국 국기)
"절제절명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칠곡(漆谷)*,
바로 이곳에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기 위하여 추모와 체험, 교육 여가가 어우러진
호국평화체험공간,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을 건립하였습니다.
"기념관 옆의 넓은 호국광장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평하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칠곡의 모습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많은 관람객이 기념관에 입장하기 전 수많은 호국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공간입니다."
(기념관 라운지의 조형물)~~코로나 19 관계로 전시실은 관람 불가
(구멍 난 철모)
(기념관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칠곡보)
(왜관지구전적기념관)
"칠곡 왜관 일대에서 북한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던 국군과 미군을 기리기위하여
1978년에 건립된 기념관으로 야외에는 대형 무기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왜관지구전적비)
(전적기념관 야외전시장)
(칠곡보 : 漆谷洑)
"6.25전투 현장이었던 낙동강에는 고속도로, 철도, 국도가 지나가는
다리가 새로 놓였으며, 이제는 서로 적이되어 죽어간 무수한 동포들의 피로 산하(山河)를
물들인 낙동강전투의 상징물로 그렇게 서 있습니다."
(낙 동 강)
~~~(다부동전투 개요)~~~
"다부동전투는 1950년 7월 29일 미 제8군사령관 워커(walton H.walker)중장이 **한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기면 수많은 전우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라고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를 명령함으로써, 한국군 제1사단이 1950년 8월 1일 낙동강을 도하한지 3일이 지난 4일에 낙정리
(다부동 북방 43km)에서 시작되었으며 같은해 9월 16일 개시된 반격작전의 일환으로 다부동 북쪽11km
지점의 천생산을 탈환한 후 작전을 소탕한 9월 24일에 끝났다.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7월 21일 수안보 전선사령부까지 내려와서 8.15광복절 행사를 대구에서
거행하겠다는 망상하에 대구공략을 위해 북한군 5개사단(3사단~성주, 10사단~고령, 13사단 ~상주, 15사단~
선산, 1사단~효령)을 투입하여 총공세를 펼쳤으며, 이에 아군은 **왜관 303고지(자고산)~328고지~518고지~
(숲데미산)~839고지(유학산)~다부동 중구동** 에 이르는 Y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공방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때, 8월 16일 유엔군은 B~29 폭격기 98대를 칠곡 약목 및 구미3공단 지역 일대에 투입시켜 융단 폭격을
감행하였고 북한군 13사단 기갑부대 T~34잔차와 미 제25사단 27연대 M~26전차와의 최초 전차전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55일 동안 이곳 전투에서 아군은 10,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 하였고 적군은 17,500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던 전투가 *다부동전투* 였다."
(다부동전투 팜프렛 에서 옮김)
"청 풍 명 월~~다부동 전적기념관, 칠곡호국평화기념관 탐방............................................,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