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코 시들지 아니하나 예언들이라도 끝이 올 것이요, 방언들이라도 그치게 될 것이며 지식도 끝나게 되리라. 이는 우리가 부분 적으로 알고 또 부분적으로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오면 그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13:8~10)
본문은 민수기 12:6~8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희미한 꿈이나 환상으로 계시했지만 모세는 그들과 다르게 하나님과 대면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증거하고 있음이라.(요한복음 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인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방언이나 직통계시와 같은 기적을 원한다면 ‘너는 그러한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들에 경청하지 말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아시고자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명기 13:3), 이와 같이 이러한 더러운 꿈을 꾸는 자들도 육체를 더럽히며 다스림을 경시하고 권위있는 자들을 비방하는도다(유다서 1:8)’입니다.
은사주의는 교회의 권위와 절대적 진리에 대하여 다른 기초를 두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언, 방언, 꿈, 환상들을 기초로 두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행하는 자들의 생각을 믿는 것은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적을 일으키는데 설마 거짓된 교리를 가르치겠냐며 되물을 것이며 기적을 일으키는 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영적권위를 공고히 하는 성직자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은사주의의 기적은 마치 로마 카톨릭이 성경과 교회의 권위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들 역시 성경과 기적을 동등한 권위로 둡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과 마찬가지로 성령에 대한 교리의 깊이가 없습니다. 설령 그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학 공부를 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영성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교리적인 토론보다는 초교파로 하나됨만 말하며 마치 로마 카톨릭의 레노바레운동, 뜨레스띠아스운동처럼 직접적인 성경말씀이 빠진 신비적인 처험의 간증과 CCM을 사용하는 열린예배, 관상기도가 주로 이루어집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아직 온전한 것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방언은 그치지 않았고 예언도 그치지 않았다고 말하며 온전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해야만 온전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온전한 것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이 교회의 권위로 외경을 용납하는 것과 요셉스미스가 계시를 받아 몰몬경을 펴낸 것과 통일교의 원리강론이나 신천지의 보혜사론과 마찬가지로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더하는데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어질 수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입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로는 부정하지만 분위기와 마음이 그쪽으로 가는 건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ㄷㄹ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베드로후서 1:19~21)
그러나 우리는 확실한 계시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의 원인은 로마 카톨릭이 성경 외에 교회의 전통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을 외쳤습니다. 히브리서 1:1~3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전에는 구약시대에 선지자를 통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지만 사도시대에 최종적인 계시가 완성됨을 말합니다.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요한복음 1:1) 그분이 진리이시며(14:6)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1:14) ‘아무도 어느 때나 사람이 하나님을 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독생자,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요한복음 1:18 한글킹제임스성경)’이십니다. 요한복음 14:7~10에서 그분을 안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고 하셨는데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하시지 그리스도께서는 책망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완성된 계시가 있는데 기적을 달라고 말하는 것은 빌립과 같은 믿음없는 행동입니다. 주께로 돌아서면 수건이 벗겨지며 주의 영광을 봅니다.(고린도후서 2:16~18) 베드로는 성경이 변화산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습을 목격한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역시 고린도전서는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갈라디아서 이후이며 고린도후서와 로마서 이전이므로 바울의 초기서신입니다. 그러므로 초기 교정서신인 고린도전서(1:27~28)에 나오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와 기적과 병 고치는 은사와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여러 가지 방언들이 있지만 중기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4:11에서는 병 고치는 은사와 여러 가지 방언들이 없으며 후기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사도와 선지자들이 없으며 심지어 바울이 디모데보고 포도주를 위장약으로 쓰라고 합니다.(5:23) 은사주의자들이 온전한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현된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온전한 것이 성경의 완성인 이유는 요한계시록은 교회시대의 끝과 7년 대환란과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천년왕국과 사탄의 마지막 반역과 백보좌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인 영원세계까지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지 마라는 것을 요한계시록에만 국한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신명기 4:2, 잠언 30:5~6, 요한계시록 22: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