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장식적인 수사를 피하고 명징한 이미지와 행간의 미학에 유념하라
작성자:情人 박재근 작성시간:2025.08.11 조회수:7 댓글0 5, 장식적인 수사를 피하고 명징한 이미지와 행간의 미학에 유념하라
시만큼 언어적 수사에 민감한 장르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에서 언어적 수사는 옷과 같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보이듯이, 시 또한 수사적 표현에 따라 느낌이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화려한 옷이 모든 사람의 몸에 맞는 것이 아니듯이 불필요한 장식적인 수사법이 때로는 그 시를 망칠 때가 있다. 시에서는 화려한 수사법보다는 오히려 명징한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시에서 명징한 이미지는 그 시의 구심점이 되어서 단순한 주제를 중의적으로 전경화 시켜준다. 대부분의 좋은 시에는 명징한 중심 이미지가 존재한다. 좋은 시는 그러한 중심 이미지를 구심점으로 체험과 상상력을 짜임새 있게 조화시키고 확장시켜나간다. 이미지는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간접화시켜서 보여줌으로써 설명에 갇히기 쉬운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시의 행간과 행간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산문적 진술은 화자가 대부분의 상황을 직접 진술하기 때문에 행간과 행간 사이의 긴장감이 없다. 하지만 시는 생략과 침묵과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행간과 행간 사이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러한 시적 긴장감은 시적 화자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이 행간 사이에 무수히 숨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급 독자는 시인이 설명하지 않고 행간 사이에 감추어 놓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시의 묘미를 느낀다. 압축과 생략이 시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 유인서「꽃 먼저 와서」전문
6. 계산된 논리보다는 자유로운 연상(상상력)을 활용하라
시의 길은 쭉 뻗은 고속도로나 아스팔트길 같은 것이 아니다. 시의 길은 오히려 꾸불꾸불한 시골길이나 출렁이는 물길과 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한눈에 빤히 보이거나 쉽게 측량되지 않는다. 현대화된 길은 이미 계획된 설계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이지만 시골길이나 물길은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시의 길 역시 자연에 가까운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시는 친자연적이다. 우리는 종종 이미 계획된 논리를 바탕으로 시를 쓰려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씌어진 시는 너무 논리적이어서 풍부한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빤한 알레고리 시에 머물거나, 머리로 쓴 작위적인 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논리적인 시는 새로움과 놀라움이 없다. 물길은 늘 요동하면서 수시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의 마음도 물길과 같다.
인간의 마음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마음은 물길보다도 더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그러므로 시를 쓸 때는 계산된 논리를 버리고 시상을 자유로운 연상에 맡겨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자연 속에는 무한한 상상력이 숨어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이러한 숨어있는 상상력을 캐내어 자아와 타자 사이의 동질성을 발견하고 이를 중심적인 주제나 이미지로 응집시켜나가는 것이다. 상상력이 깊고 넓은 시는 바다와 같은 심오함이 있다. 작은 냇물은 가뭄에 말라서 없어지지만 바다는 죽지 않는다. 바다 속에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저희에게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주옵시며 나날이 낯선 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 세상에 서게 하소서 의도대로 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옵시며 상상력의 홀시가 생을 가득 떠돌게 하소서 회고는 노쇠의 증좌임을 믿사오니 사물에서 과거를
연상하지 않게 하옵시며 밤벌레처럼 유년을 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희망으로 시를 끝내지 않게 하옵시며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 있듯이 영원토록 살갗처럼 시를 입게 하소서 - 박현수「시작법을 위한 기도」전문 |
첫댓글 너무나 좋은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