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오늘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 1007년 첫 주일 귀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오늘 드린 이 찬양처럼 올해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잘 예배하고 찬양하는 귀한 승가대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이 사람 보시면서 새해 인사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네 올 2025년 이 한 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2024년도는 지났습니다. 저물었습니다. 죽었습니다. 떠났습니다. 2024년도는 더 이상 우리에게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잘한 일이든 잘못한 일이든 다 잊어버리시고 새로운 출발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에 어떤 마음으로 여러분 맞이하십니까? 오늘 어떤 자세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2025년도가 밝았습니다만 무엇이 달라진 것이 있던가요? 어떤 변화가 있던가요?
보면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이 있고요. 또 여러분 얼굴에 주름이 하나 더 있을 겁니다. 외형적인 변화는 사실은 점점 더 약해져 가고 또 점점 더 세트해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심령, 우리의 속사람이 더욱더 강건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바라보고 소망할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인 줄을 믿습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도 분명히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아무리 변화를 준다 할지라도 새로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11살밖에 안 된 아이가 어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머니 좋은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일까요? 그렇게 묻자 그 어머니 집사님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감자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큰 감자를 하나 꺼내서 보기도 좋고 해서 반찬을 하면 맛있겠다고 해서 그걸 반을 쫙 깔렸습니다.
근데 그만큼 안에 다 쓰고 있는 겁니다. 그 아이가 이 다 썩었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교훈을 주기를 보았지 그 모양은 좋은데 속이 다 나쁘면 그건 좋은 게 아니란다.
반면에 그 모양은 좀 부족해도 볼품이 없어도 속이 깨끗하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란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 마음이 깨끗하고 예쁘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아이에 대한 설명을 너무나 잘해주었다고 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겉은 좀 볼품이 없어도 그 속이 참되면 좋은 그리스도인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마음이라는 것이 이 사람의 의지, 이 감정의 자리입니다. 일들을 지혜롭게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마음에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 잘 알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이런 모든 일련의 이 감정적 요소도 마음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의지적 결단 역시 마음에서부터 출발이 됩니다. 마음이 잘못되면 그 행동도 잘못될 수밖에 없고, 마음이 선하면 그 행동은 선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보다 더 깊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령이 잘될 것을 잘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이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뭐라고요? 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8절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누구를 볼 것이오 하나님을 볼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마음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2025년도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꾸어야 되고 다듬어야 될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인 줄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또 보신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뭘 보신다고요? 중심을 본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성녀에게 이르시되 그의 눈과 귀를 보존하여 내가 이미 그를 보였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이모를 보니 나 여호와의 중심을 이으니라 하시니라.
아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뭘 본다고요? 중심을 본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잘생겼느냐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 뭘 하느냐 거기에 대한 관심을 갖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사람의 뭘 보신다고요? 중심을 보신다 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이거든요.
여러 사람의 중심이 보일까요? 안 보일까요? 잘 안 보이죠. 사람은 볼 수가 없어. 그런데 하나님은 보신다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까워야 될 것은 외모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을 잘 가꾸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올 한 해 우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정말 가까워야 되고 보살펴야 될 것이 바로 우리의 중심인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잘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또한 마음은 사람을 새롭게 하는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변화는 바로 이 마음에서부터 변화가 시작이 됩니다. 이런 글귀가 있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에 상쾌한 공기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거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이한다면, 세례를 받던 날의 마음으로 교회의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질 것이다.
참 공감이 되는 그런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항상 이러한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처음에 그 순간들은 참 너무나 멋지고 참 좋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둔해지게 되고 잊혀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뒤를 돌아보면 후회가 되는 일들도 참 많이 생깁니다. 우리 18절의 말씀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의 말씀 시작
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아멘 마음이 굳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그에게 떠나게 된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굳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좋지 않는 마음이거든요.
마음이 강퍅해진다. 마음이 딱딱해진다. 감동도 없어지고 회개도 없어지고 그냥 둔감해진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을 귀경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밭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와 아쉬움 가운데 있었는지요. 저도 나름 계획을 가지고 목표를 잘 세웠지만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더 아쉽고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것 아니라고 봅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힘입니다. 우리가 후회가 되고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나의 의지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좀 더 낮아지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낮아지고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이해하지 못한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달라지기보다는 지금 좀 환경이 바뀌어졌으면 지금 좀 여건이나 조건들이 좀 좋아졌으면 그런 바램들이 참 많습니다. 또한 내 마음이 바뀌어지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이 좀 바뀌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저 사람 바뀌면 좋겠다. 좀 내 남편 좀 바뀌면 좋겠다. 내 아내가 좀 바뀌면 좋겠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것의 근본적인 힘은 문제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고 새로워지지 아니하면서 새로운 삶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변하고 또 세상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마음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새롭게 다가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22절 24절의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웃음을 따르는 세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너희와 세기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세 사람을
아멘 보시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뭐 하고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어떻게 되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세 사람을 뭐 하라 입어라 24절에 보면 세 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이 여러분 굉장히 저에게 있어서는 공감이 되는 말씀이다.
새 사람을 입으라 입으라는 이 말은 여러분 우리가 이 옷을 입듯이 옷을 입지 않습니까? 옷을 입듯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그 옷을 입어야만 우리의 심정이 달라지는 것이지, 내가 어떤 나의 의지와 노력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의 변화가 결코 마음먹는다고 해서 내가 한번 그렇게 한번 살아보겠다라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약에 보면 이 변화된다 변화된다는 이런 말 속에는 이 수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능동태가 아니라는 것이죠. 즉 내가 뭘 해보겠다 내가 나를 한번 변화시켜보겠다. 그건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라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근데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또 우리 믿는 성도들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한번 해야 되겠다. 한번 해봐야 되겠다. 내가 한번 바꿔봐야 되겠다.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까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한다고 해서 달라진 것들이 있던가요? 누가 해야 된다고요? 성령님께서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놀라운 변화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저는 요한이라고 봅니다.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께 얻은 별명이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아들 그만큼 과격하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 요한은 욕심도 참 많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십자가를 두고 앞에 두고 있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이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한 사람은 좌편에서 한 사람은 우편에서 앉게 해 주십시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로 보면 주님께서 왕이 되면 우리를 좌의정 영의정 자리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건 굉장한 욕심이죠. 욕심입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 길을 통과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이 사마리아 길을 가는 것을 허락질을 안 했습니다.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자 요한이 어떻게 말했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 주님 불을 내려서 저들 다 살라버리십시오. 이 말이 얼마나 과격합니까? 죽이라는 말이죠. 저 사람 다들 죽이십시오. 그런 과격한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한이 훗날이 어떤 사람이 됩니까? 사랑의 사도가 되지 않습니까? 놀라운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우리가 잘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건 다 변해도 사람 절대 안 변한다. 저 사람 절대 안 변한다. 여러분 사실 이 말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할 말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러분 그런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는 못 돼 먹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변화시키면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시키셨고 야고보를 변화시키셨고 요한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실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25년도가 밝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다름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변하는 것은 절대로 변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우리의 심정이 변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우리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가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속에 내가 있고 내가 뭘 해보겠다고 하면 결코 성령님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한 2025 한 해에 성령님 의지하셔서 여러분의 심령을 갈아엎으셔서 더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그런 좋은 믿음의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