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6-10절. 성령이 아시아 전도를 막음. 요악설교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1. 성령님께서 아시아 전도를 못 하게 막으셨습니다.
여기서 아시아란 요즘의 아시아가 아니고, 로마 시대에 아시아 지방(Province) 즉 요즘의 터키 지방을 가리킵니다.
성령님께서 아시아 전도를 막으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네,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전도를 해도 도무지 열매가 없고, 성령님께서 역사해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도도 그렇고, 목회도 성령님께서 역사해주시지 않으면, 설교도 할 수 없고, 심방도 안 되고, 기도조차도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성령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2. 만일 바울의 복음 전도를 사람이 막았다면, 바울은 죽더라도 전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막으시면,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의 일입니다.
3.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갔습니다.
여기 갈라디아는 1차 선교여행 때 교회를 설립했던 갈라디아와 다릅니다.
즉 1차 선교여행 때 갈라디아는 소위 남갈라디아 지방이고, 6절의 갈라디아는 소위 북갈라디아 지방입니다.
아무튼 바울 일행은 계속 북쪽으로 선교 여행을 갔습니다.
7절.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1.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서 더욱 북쪽인 무시아 앞까지 갔습니다.
이 무시아의 더욱 북쪽으로는 커다란 흑해 바다가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든지 서쪽으로 가든지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이 무시아에서 동쪽 방향으로 비두니아가 있습니다.
이 동쪽의 비두니아로 계속 가면, 인도와 중국과 한국과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무시아에서 서쪽으로 가면, 에게 해협을 건너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독일과 프랑스와 스페인과 영국 등 유럽으로 가게 됩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의 영이 동쪽 비두니아 전도를 막으셨습니다.
원래 바울 일행은 에게 해협 바다를 건너서 서양으로 가는 것보다 육지로 동양으로 가기를 애썼습니다.
그러나 동쪽 아시아 전도를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3. 본 절의 ‘예수의 영’이란 6절에서 ‘성령’을 가리키는데, 이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로마서 8장 9절과 16절에서도 성령님을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했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했습니다.
즉 성령님은 예수님과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으로서 3위 일체 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8절.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1. 바울 일행이 동쪽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으므로, 할 수 없이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드로아는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큰 기대를 가지고 전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드로아는 조그마한 항구 도시로서 큰 교회를 설립할 만한 곳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드로아에도 나중에 드로아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행 20:5-12, 고후 2:12)
그래서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에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만났던 바울이 회개하고 기도할 때, 장래에 대한 환상과 비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장래에 대한 꿈과 환상과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의욕과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길이 다 막히면,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동쪽의 육로로 가야 여러 가지 면에서 선교가 잘 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동쪽 선교를 막고 인간적으로는 어려운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서 선교하는 것을 택하여 가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볼 때, 동쪽 비두니아는 육로로 연결되어 있고, 과거에 구약시대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선교하기가 좋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그리스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바다를 건너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아테네와 같이 문화적으로도 구약시대와 상관이 없는 곳이라서 선교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헬라반도에서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고린도 교회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멀리 로마교회를 바라보신 것이고, 로마를 통해서 전구라파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보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바울로서는 상상도 못 한 것입니다.
10절.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 바울이 환상을 보았을 때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고,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바울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때 환상을 보았습니까?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 집에 안 가고 싶어 했을 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시고 가게 하셨습니다.
바울도 동쪽으로 선교여행을 하고 싶었고, 바다 건너 서쪽으로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시고, 가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환상은 우둔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하도 답답하니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셔서라도 인간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상 본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과 성령님의 감동으로 길을 잘 찾아가야 합니다.
2.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여기에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언뜻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여기 ‘우리’라는 말은 바로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가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과 합세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과 선교 여행에 합세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누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 잘 아시는 대로 누가는 의사입니다 (골4:14).
그리고 누가는 고향이 빌립보이고, 드로아에서 의사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누가는 디도의 형입니다. 고후 8:18 주석 참조)
그런데 바울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해서 선교 사역을 못 하고 있었지만, 환상을 본 직후에 드로아에서 바울은 대단히 중요한 의사 누가를 만난 것입니다.
누가는 고향이 빌립보이기 때문에, 드로아 항구에서 빌립보에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드로아에서 사모드라게 섬으로, 사모드라게 섬에서 네압볼리 항구에서 육지에 내려서, 네압볼리 항구에서 빌립보로 가는 길을 누가가 바울 일행에게 안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의 도움으로 곧 바로 빌립보로 직행할 수 있었습니다.
3. 바울 일행은 환상을 본 후에 곧바로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얼마나 그 동안 성령님께서 막으심으로 선교 여행에 실패를 거듭했으면,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시자 곧바로 마게도냐로 떠났다고 했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배 타고 바다 건너가는 것이 싫었겠지만,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시니까 희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즉시 행동한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람을 살리는 것은 희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견디고 살아납니다.
4.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환상을 보고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환상 속에서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이것을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라고 부르신다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을 돕는 것이 돈을 주는 것이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인 줄로 인정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는 참으로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질 구제와 치료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 일행처럼 인생길이 막혔을 때,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과 희망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막힌 담이 헐리고 새로운 성공의 길이 활짝 열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