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be La Neige*
꽃을 훔쳐보았을 때 우주가 두근거린 것처럼
차마 심장이 네게 하지 모한 고백
진실은 들어 올릴 때가 무겁다
집착으로 중독된 난 객관을 벗어났고
새벽은 툇마루 모서리에 걸렸다
동치미 항아리를 열고
차가운 걸 편도선으로 넘긴다
씻어야 할 쌀이 없어 문장을 찢어 먹던 겨울
속절없이 함박눈 내려
누군가는 서성거리고 누군가는 죽음을 덮는 시각
들러붙은 연탄을 부엌칼로 가르며
석탄기의 내장을 보아야 했다
아궁이를 비추며 한 움큼 코피를 쏟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
세상이 잠든 새벽이면
샹송이 멈춘 곳에 연탄재를 버렸다
*아다모가 1963년 발표한 곡, 눈이 내리네.
죽은 황녀를 위한 소네트
재활용 수거 차량과 충돌했다
운전자가 내 차를 고쳐주겠다 하여
시청 별관 뒤, 헌 옷이 쌓인 야적장으로 갔다
수거함에서 낡은 옷이 쏟아지는 동안
쌓인 체취와 함께 나도 누군가의 폐기물임을,
샤워를 마친 어린 잡부들이 속옷 차림으로 나와
옷을 구분했다 한때 영화롭던 색상이
아무 표정 무늬도 없이 무너진다
신분 세탁으로 거듭나야 살 수 있는,
언뜻 옷더미 틈에 슈트케이스를 보았다
은색 버튼을 누르자 여자애 시신이,
아찔한 아잔Azan* 소리에 눈뜬다
널린 옷소매가 코브라처럼 일어선다
옷 무덤에서 죽었던 애들도 깨어났다
소녀의 눈에서 말리화가 피는가 싶은데
텅텅텅 셋잇단음표의 망치소리 울리고
범퍼 수리가 끝났다고
청소차 운전사가 악센트 높여 소리친다
내 꼴을 보더니 애들을 데려가라고
소녀도 가져가라고, 씽긋 웃는다
아, 병원으로 갈 것인가 페르시아로 갈 것인가
*이슬람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일종의 기도 목소리
죽은 자의 시간
단칸방에 아내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
잠이 들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뒤척이는 아내를 재워놓고 낡은 골목으로 갔다
사내들이 득실거리는 방을 지나
어린 것에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의 방
어쩌다 그 방에 머물게 되었는지,
역시 잠이 오질 않았다
그녀는 유치원 선생으로 미혼이라는데
이유를 알 순 없으나 말띠였다
여자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싶어 했다
그러자 사람이 모이고 결혼식이 열렸다
대책이 없었다 모기 문 곳도 가렵고 혈압약도 먹어야 했다
잔디밭에서 유치원 애들이 떠들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지 않는다며 자꾸 시계를 두드렸다
순간, 놀란 새가 푸드덕
시간 밖으로 달아났다
온통 붉고 예민한, 파편이었다
김평엽
2003년 <<애지>>로 등단
시집<<마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노을 속에 집을 짓다>>
2007년 임화문학상수상
2009년 교원문학상 수상
*시창작에 전범이 되는 작품과 시집으로 문청이나 문창과 학생들은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김평엽이 빚어내는 이미지나 서사는 어머니나 사회 부조리를 향하고 있어 애잔하면서도 분노에 휘둘리게 한다. 두 번째 시집인 <<노을 속에 집을 짓다>>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