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 영상 제작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야말로 열망이 있으면 꿈은 실현된다는 조언 이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야 말로 감히라는 표현으로 글을 시작한다. 나는 스스로 한국 이소룡교 의 전도사라고 자부한다. 그것은 2010년 최초의 '브루스 리 데이'를 만들어 행사를 시작했고 그해에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를 만들며 지금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2010년 11월 27일부터 지금까지 극장을 대관하여 '이소룡 세미나'를 매달 가져오고 있다. 코로나 인해 지금은 지상(온라인) 세미나로 대체하고 있지만 어쨌든 계속해 2021년 7월 현재 127회의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 사이 쌓여진 정보와 학술적 데이터 는 엄청난 것이다. 하다못해 이소룡의 가정교육, 이소룡 의 사주팔자까지 전문가를 모셔 발제되었다.
'브루스 리 데이' 행사는 매년 이소룡 이 국내의 팬들과 처음 만난 <정무문> 의 개봉일인 7월 27일을 기념하며 시작 해 10회의 행사를 가졌다. 그중 2017년에 가장 성대한 행사를 가졌 다. 그때는 잠실의 롯데타워 극장을 대관하여 한 달간 이소룡 영화 전편을 상영하고 나의 수집품 전시회를 가졌 다.
호남대에서 이소룡연구회 활동을 하며 중국과 합작으로 홀로그램 이소룡기념관 설립을 추진해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사드 문제가 불거져 아쉽게도 불발되었지만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건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 한 일이다.
그리고 회원들과 함께 이소룡 유적지 를 찾아 이소룡 투어를 하여 금년 1월 까지 홍콩, LA, 중국, 대만, 발칸반도 의 보스니아 등지에 6회를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중국 쑨더의 이소룡 파라다이스(이소룡 낙원)의 초청방문 이나 보스니아의 이소룡 동상을 찾은 것은 순전히 이소룡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고 위니 석 홍콩지회장의 이소룡 유적지 현장 안내를 받았는데 이소룡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확신 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여러 곳은 개인적으로 찾아갈 엄두를 낼 수 없는 미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네이버에 개설한 '한국 이소룡기념사업회' 카페에 이소룡 및 한국무술영화와 홍콩무협에 관한 글 들을 연재하고 있다.
이소룡 연대기를 포함하여 시기별 영화 연대기를 마친 지금은 이소룡과 동시기 홍콩무명배우들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여 글을 연재하고 있다. 이소룡 소재의 연구가 끊이질 않는 것은 이소룡이라는 거대 산맥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 충주액션무예영화제에 나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며 이소룡 전작 전 개최를 논의하고 더불어 기념 발제 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외길 인생을 가며 쌓은 공부와 덕 때문일 것이다.
이소룡과 관련된 공부할 것은 산더미 같다. 그것은 한 개의 산이 아니라 긴 산맥 같기만 하다. 그곳으로 가는 길 은 멀고도 험하다. 고지준령이 즐비 하고 길은 험로인데 그것은 나의 한 평생을 바쳐야 갈 수 있는 먼 길 이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내가 행복하기에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중이다.
이소룡과 스크린을 통해 만난지 48년 , 나는 진정으로 행복했고 사부(나는 주님 혹은 신이라는 호칭 대신에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므로 사부라고 표현한다.)를 통해 성숙해 왔다.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을 지난 10년 간 해오며 나는 확신한다. 사부는 나의 곁에 존재하며 나의 행적을 끊임없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열망기는 반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지난 10년의 세월은 사부를 위한 세월이었고 사부만을 바라보며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지난 2010년 이후 나는 '한국이소룡 기념사업회'를 이끌며 사부의 도움을 여러 번 체험했다.
그렇기에 사부에 대한 책도 '이소룡 평전', '이소룡을 기억하다', 그리고 그외 '한국무예배우열전', '홍콩무술 배우열전', '홍콩여배우열전'을 출간 했다. 관련서 출간은 내가 죽을 때 까지 해야 할 일이다.
책을 사보지 않는 이 시대에 출판은 나나 출판사나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다섯 권의 관련서적을 출간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비록 판매부수는 미미하지만 그것이 이소룡 전파를 위한 일이기에 멈출 수 없는 일이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이런 걸 종교 라고 부를 것이다. 이소룡은 나의 신 이며 나는 그 전도사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다. 교회는 언제나 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소룡 사부는 나만의 사부는 아닐 것이고 또 그러해서도 안된다. 팬들 모두의 사부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이소룡교의 교회인 '한국이소룡기념 사업회'를 찾고 세미나에 적극 동참 하기를 바랍니다. 처음 짧은 글로 시작했는데 글이 길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