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발총의 따발은 머리에 받치는 똬리
6·25전쟁 때문에 생긴 말말말
골로 가다
6·25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안겼습니다. 그러다 보니우리말 중에는 그 아픔이 배어 있는 말이 적지 않습니다.
‘골로 가다’가 그중 하나입니다. ‘골로 가다’의 어원은 ‘고택골로 간다’의 준말로 보는 것이 가장 신뢰도가 높습니다. ‘고택高宅골’은 현재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에 해당하는 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예전엔 이곳에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많이 있었다고 하니, 이곳 하면 누구나 죽음을 떠올렸을 법합니다. 여기에서 유래해 ‘죽다’의 속된 말로 ‘골로 가다’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골로 가다’는 6·25전쟁 이후 더욱 널리 쓰이게 됩니다. 6·25전쟁 때 인민군이 양민과 포로들을 골짜기로 끌고 가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산골짜기, 즉 '골’로 끌려간다는 표현이 죽음을 상징하게 된 것이지요. 그 때문에 “‘골로 가다’는 6·25전쟁 때문에 생겨났다”라는 민간어원설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삼팔따라지
이렇듯 예전부터 쓰였지만 6·25전쟁 때문에 더욱 확산된 말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속되게 가리키는 ‘삼팔따라지’도 있습니다. ‘따라지’는 ‘꼬라지(꼴 +아지)’나 ‘싸가지(싹 +아지)’ 따위처럼 동사 ‘따르다’에서 나온 ‘딸’에 ‘ -아지’가 붙어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일부에서는 아들·딸의 딸에 ‘ -아지’가 붙은 것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배어든 말이라 고도 하지만 이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주장입니다.
그보다는 동사 ‘따르다’의 의미 중에 “남이 하는 대로 같이 하다”라는 뜻이 있고, ‘따라지’가 “뭔가 스스로 하지 못하고 타인에 게 의존해 살아가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점을 감안할 때, ‘따르다’에서 ‘따라지’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따라지’가 도박판에서 ‘삼팔따라지’ 형태로 쓰였습니다. 도박 중 하나인 ‘섰다’판에서 가장 높은 끗발이 삼광과 팔광이 합쳐진 ‘삼팔 광땡’ 인데, 광끼리 결합하지 않고 껍데기가 낀 삼팔은 그저 한 끗밖에 되지 않 습니다.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아주 형편없는 끗발이지요. 그래서 ‘삼팔따라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훗날 6·25전쟁 때 홀로 또는 자기 가족끼리만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말로 먼저 썼는지도 모릅니다. 삼팔에서 ‘38선’을 떠올린 것이겠지요. 결국 삼팔따라지는 전쟁통에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과 아픔이 배어든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발총
“말이 많거나 빠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는 ‘따발총’도 6·25전쟁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따발총은
얼핏 한자말 ‘다발총多發銃’(여러 차례 쏠 수 있는 총)이 변한 말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따발총은 소련식 기관단총에 달린 ‘따발’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그 총을 보면 아랫부분에 마치 ‘똬리’(짐을 머리에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또는 둥글게 빙빙 틀어 놓은 것이나 그런 모양) 같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총알이 든 탄창이지요.
그런데 북한 함경도에서 ‘똬리’를 ‘따발’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여기에서 ‘따발총’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따발(똬리)이 달린 총이라는 얘기지요.
한편, ‘똬리’를 달리 부르는 말로 ‘또아리’도 널리 쓰입니다.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똬리’의 원말인 ‘또아리’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표준어 규정 제14항에서 “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 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 그런 것 가운데 하나로 ‘또아리’를 버리고 ‘똬리’만을 쓰도록 했거든요.
또 제가 앞서 언급한 ‘싸가지’ 역시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싸가지’의 바른말은 ‘싹수’입니다.
출처, 글 / 엄민용 margeul@kyunghyang.com 저서로는 <나도 건방진 우리말 달인> 등이 있으며,
올바른 글쓰기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