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지 못한 나의 애창곡 / 정희연
<마포종점>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섯고 갈 곳 없는 나도 섯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광주 제2 순환도로 두암~소태 인터체인지까지 제2구간 공사를 할 때다, 어제와 다름없이 지산교 현장타설말뚝 시공을 끝내고 교각 코핑부를 시공하려고 철근과 거푸집을 설치 중이었다. 현장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일이 있으니 들어 오라고 한다. 현장에서 일어난 일은 담당이 가장 먼저 아는데 거꾸로다. 그것도 공구장을 통하지 않고 직통으로 받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현장에 상황을 알리고 사무실로 향했다. 공무 부장이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며, B형간염 보균자로 판정되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간 휴가를 줄테니 집에서 기다리고 한다. 말이 휴가지 근무가 어렵다는 이야기로 들려왔다. 치료가 필요하다든지 그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살과 세 살의 연년생 토끼같이 여린 아들과 딸을 두고 있었고, 가정의 가장으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열심히 일해야 할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은 앞으로 너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소리로 들여왔다.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를 만나 오전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옮겼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B형 간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간에 염증이 일어나는 질병이다. 수치가 그다지 높지 않아 입원 치료는 필요하지 않고 약을 먹으라고 하면서 1개월분을 주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혈액이나 혈청을 통해 전파된다고 한다. 전염성이 없어 이것을 문제로 근무가 중단되는 사례는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B형간염 보균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 술과 담배를 삼가하고 약을 지속해서 복용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진료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왔다. 아내가 장모에게 알린 후였다. 장모는 2박 3일의 여행을 권했고, 아이를 봐줄 테니 다녀오라고 했다. 현장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달리 할 일이 없어 아내와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잃은듯한 기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광주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거제도로 왔다. 산촌, 농촌, 어촌, 도시가 손을 펼치면 닿을듯한 거리에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몽돌해수욕장 근처 펜션에 숙소를 잡고 근처 바다를 산책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회를 사겠다며 횟집으로 갔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TV에서는 김동건이 진행하는 가요무대가 방영되고 있었다. 은방울 자매가 부르는 <마포종점>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멋는 듯했다. 아내에게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한참을 울었다. 어제 내가 느꼈던 그 순간을 은방울 자매가 가냘프고 서글픈 목소리로 내 심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섯고 갈 곳 없는 나도 섯다.”
내 애창곡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 혼자만 마음속에 담고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때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나를 지켜주는 애창곡이 되었다. 마포종점은 어느 젊은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은방울 자매는 동갑내기 친구다. 처음 불리는 때가 내가 태어난 해와 같다. 더욱 애착이 갔다.
나는 노래를 잘 하지 못했다. 노래하는 자리에서는 늘 꽁무니 뺏다. 가사도 잘 몰라 한 곡을 통으로 멋들어지게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즐겁기보다. 내 순서가 끝나기 전까지는 불안 속에 있었다. 차례가 지나가기 전까지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기억을 되살려 가사 하나하나를 기억해 낸다. 그렇게 옹알이를 하다가 내 앞에서 누군가 먼저 부르게 되면 그때는 정말 집에 가고 싶다.
30대에는 <흙에 살리라>를 주구장창 불렀다. 이유는 아는 노래가 그것 뿐이어서였다. 노래방이 생긴 후로는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잘해서라기보다는 애로사항이 한 방에 해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긴 머리 소녀, 경아, 누이, 자옥아, 안동역에서 등 내가 부르는 노래는 즐거운 트로트 곡이다. 내 인생에 꽃피는 봄날도 있었다. 건설업을 시작한 후 4~5년쯤 되었을 때다. 현장도 많아지고 직원도 몇 되었다. 일주일 열심히 일하고 휴일을 맞으면 1박 2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곤 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한두 시간 노래를 부르면 10분의 추가시간을 넣어 주었다. 이제 마지막 클라이맥스다. 경쾌한 곡인 <토요일은 밤이 좋아> 와 아내와 같이 부르는 <백 년의 약속>으로 마무리한다.
노래는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준다. 내 감정은 지금 진행 중이다. 뭐 완벽하게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지만, 늦게 출발해 이제 시작한 것도 있고 지지부진하게 계속 끌고 오기만 하고 매듭짓지 못한 것들도 많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늘 바쁘게 산다. 금융, 독서, 업무, 운동, 농장관리 등이다. 그렇다고 그런 일로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이 일들이 네게 주어지고 그것들을 하나둘 해결해 나가는 것이 내게는 즐거운 일이다. 지금은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힘든 일이지만 즐겁다.
애창곡이면서 부르지 못하는 <마포종점>처럼 또 하나가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이다. 휴대전화 벨 소리로 되어 있다. 나는 듣지 못하지만, 전화하면 들을 수 있게 가수 이찬원의 목소리로 담았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선택했다 나도 그리고 나를 찾는 이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첫댓글 마음 속 애창곡 '마포 종점'도 큰소리로 불러보세요. 정희연 선생님 목소리로 언제 한 번 꼭 듣고 싶네요.
혼자만의 곡입니다. 남들 앞에서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고, 많은 고민끝에 꺼냈습니다. 하하하!
어쩜 읽는내내 제 이야기인듯 느껴집니다. 저는 '봄날은 간다.' 가사를 며칠을 걸려 외워서 항상 흥얼거렸어요. 노래가 주는 힘은 누구에게나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재미나게 읽었어요.
마음아픈 내용이라 어디다 내 놓을 수 없었습니다.
B형 간염으로 고생하셨군요.
제 주변에도 두 사람이 있어요.
<흙에 살리라> 노래에 얽힌 사연이 저도 생각나서 혼자 웃습니다.
그 사연은 저만 알고 있으렵니다.
아직은 숙성되지 않았거든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먼 추억속의 이야기, 내게 큰 매듭을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잘 읽고 있어요.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이라는 노래 제겐 낯설지만 선생님의 마음은 충분히 읽힙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는 유투브를 열어 장사익의 '꽃구경'을 듣습니다. 처음 들으면서 꺼이꺼이 울었던. 이 마음과 흡사했겠지요. 몇 해전 제 큰 아이는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이 들어가는 엄마 생각에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커다란 청년이 ㅎ. 다음부턴 씩씩하고 밝은 노래만 들으라고 했습니다. 억지 처방이지요?
저도 경쾌한 노래를 선호 합니다. 꽃구경 너무나 슬픈 노래지요. 듣기에 나쁘지 않지만 직접 부르기엔 왠지 껄끄러운 노래, 고맙습니다.
부르거나 들으면서 위안을 받는 자기만의 노래가 있는 듯합니다. '마포종점'이나 '흙에 살리라' 두 곡 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여서 반갑습니다.
고민고민 하다 내놓은 글입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묻힐것 같아서요.
글을 읽어 보니 정 선생님은 춤도 잘 추실 것 같습니다. 제목만 아는 노래가 많네요. 역시 형님은 형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