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 김석수
화요일 저녁 ‘일상의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텔레비전을 켰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중 ‘비상계엄 선포’라는 속보가 떴다. ‘잘못된 자막이나 가짜 뉴스겠지.’라고 무심코 넘어가려는데 공중파 방송 이곳저곳에서 대통령의 발표 영상이 다음과 같이 나왔다. ‘국회는 범죄 집단에 의해 장악, 괴물, 북한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 반국가 세력 척결, 불가피한 결정, 저를 믿어주십시오.’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구나. 온몸이 떨린다. 가슴이 답답하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아내는 일찍 잠을 잤는지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45년 전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니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21세기인데 이 땅에 다시 계엄령이 내렸어. 어처구니가 없다. 10.26으로 계엄령이 내리던 날 아침 등굣길이 갑자기 떠올랐다. 굳게 닫힌 학교 정문과 총칼로 무장한 군인, 웅성 거리던 사람들, 최루탄 냄새. 그날 이후 우리는 오랜동안 캠퍼스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학교 앞 다방이나 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시내로 나가서 시위대와 합류했다.
'학교는 언제 다닐 수 있을까? 잘못하면 잡혀가는 거 아닌가?'하는 앞날의 불안이 늘 엄습했다. 한때는 계엄군이 대학생을 잡아들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상대방을 서로 의심하기도 했다. 누가 잡혀갔다 카더라. 누구는 프락치니 조심해야 한다 카더라. ‘유신시대’가 끝나지 않는다 카더라. 3김이 판을 치고 있지만 군인이 권력을 잡는다 카더라. 우리 과의 영어 원어민 강사는 미국 씨아이에이(CIA) 요원이다 카더라.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인 ‘카더라 통신’이 널리 퍼졌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계절로 들어서면서 많은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녔다. 12.12로 전두환이 실권을 잡은 뒤 시위대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최규하는 허수아비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다 카더라. ‘서울의 봄’은 오지 않는다 카더라. 이듬해 학교 문은 열었지만 날마다 시위에 참여하느라 수업은 받지 못했다. 이때도 근거가 부족한 소문이나 추측이 엉킨 듯이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소문 대부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설마했는데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고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악몽의 5.18이 왔다.
예나 지금이나 이상한 점은 시간이 지나면 '카더라 통신'이 사실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이상한 소문이나 추측이 맞아 떨어진 것이 신기하다. ‘카더라식’은 근거가 정확하지 못하거나 상식적으로 맞지 않아 사실이 아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박정희만 죽으면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유신시대가 가고 민주화가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군사 독재 시대가 다시 왔다. 독재자는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9월 국방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후보자에게 “수방사, 특전사, 방첩사 사령관을 불러 계엄 음모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 카더라.”라고 추궁했다. 그는 “거짓 선동하지 말라. 대한민국 상황에서 계엄을 한다 그러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군도 따르겠습니까?”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시민 대부분은 ‘이 시대에 계엄을 하겠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겠어.’라고 외면했다. 이구동성으로 설마했더니, 석 달 뒤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경찰이 국회로 들어가려는 시민을 못 들어가게 막는다.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들어간다. 용기 있는 여자는 맨손으로 총을 든 군인을 껴안으며 항의한다. 국회의원이 담을 넘는다. 정족수를 채운 뒤 계엄 해제를 의결하는 순간을 숨죽여 지켜봤다. 계엄 해제를 발표한 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는가? 정치 권력이란 무엇인가? 국가 폭력은 왜 반복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유언비어는 어떻게 사실이 되는가? 이런저런 상념 때문에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프다. 45년 전의 트라우마를 지금 다시 겪고 있다.
첫댓글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윤모 씨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빨리 시국이 안정되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길이 험난해 보입니다. 위기 속에 기회라는 희망을 기대하며 현업에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앞으로, 뒤로, 또 갈짓자로 걸으면서 시민의 고통을 먹고 자라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