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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상인 부친과 전직 배우출신의 어머니를 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32년, 영국 런던 외곽에서 태어
났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던 양친은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9년 미국 이주를 결심했다.
결국 LA에 정착한 부친은 그곳에 아트 갤러리를 열었는데, 영국에서 다량으로 수집해 들여온 유럽 현대화
컬렉션이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헐리우드 명사들이 들락거리게 되었다. 원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두 가지
유전적인 돌연변이- 두겹 쌍꺼출과 보라빛 눈동자 -를 갖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그녀에게 신비한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가 됐다. 어린 그녀의 미모와 매력을 눈여겨 보던 주위에서 영화계로 진출시켜라고
집요하게 권유했음은 물론이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기에 충분히 두드러졌던 것이다.
1941년, 그녀는 유니버설 영화사와 주급 100달러짜리 계약을 맺었고, 1943년 개봉된 '돌아와, 래시'에서
부터 1949년 '작은 아씨들'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영화에 출연, 뛰어난 아역스타로서 팬들의 기대를 모으며
승승장구해 나갔다. 이즈음 눈부시게 아릿따운 처녀로 성장한 그녀에 대해 Time지는 '고귀한 보석, 진정
한 사파이어 스타'라며 그녀를 미모의 성인스타로 열렬하게 칭송했다.
꽃보다도 아름다운 나이, 방년 열다섯살(1947년), 그리고 스물한살(1953년) 때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는 아역스타 출신으로 쌓아온 캐리어를 자연스럽게 성인연기자로 이어간 특별한 케이스가 됐다.
'신부의 아버지(1950)' '젊은이의 양지(1951)', '내가 마지막 본 파리(1954)', '자이언트(1966)',
'레인트리 카운티(1957)',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8)', '지난 여름 갑자기(1959)', '버터필드
8(1960)', '클레오파트라(1963)',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 '말괄량이 길들이기(1967)'
등 수많은 대표작들을 낳은 전성시절을 비롯해 은막을 주름잡던 30여 년간 그녀는 전세계의 여인이자,
만인의 연인이 됐다.
여왕의 풍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엘리자베스 테일러(1963년)영화배우로서 그녀는 30대
중반, 최고의 절정기를 누렸다. 록 허드슨, 제임스 딘과 공연한 '자이언트'를
시작으로 4년 연속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마침내 '버터필드 8'으로 첫 오스카를 거머쥐었
다. 이어서 '클레오파트라'에 출연하면서 그녀는 20세기 폭스사와 100만 달러의 계약서에 서명, 헐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여배우가 됐다. 결국 촬영이 끝나고 그녀는 오버타임 수당을 비롯해 모두 200
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챙겼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상대역인 리처드 버튼과 사랑을 쌓아갔다.
기혼자였던 두 스타들의 공공연한 애정행각은 도하 언론과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마침내 그들은
영화가 개봉된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
1966년 역시 리처드 버튼과 공연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그녀는 두번 째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두 커플이 '말괄량이 길들이기(1967)'에 이르기까지 함께 출연한 6편의 영화는 모두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수입을 올렸고,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총수입 절반 가량을 좌우하는 액수였다.
연이은 촬영에 지친 두 사람이 몇 개월동안 영화출연을 쉬겠다고 발표하자 헐리우드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돌아와, 래시(Lassie, Come Home, 1943)
멋들어진 콜리견 '래시'를 주인공으로 한 MGM의 첫 영화.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이후 6편이 더 만들
어졌다. 가난한 집의 개 래시는 결국 귀족가문으로 팔려가지만, 항상 주인을 그리워한다. 귀족의 마음씨
착한 손녀딸로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래시를 동정해 도망가도록 도와준다.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개 출연자'로 선정된 래시는 1993년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에도 등재됐다.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1949)
루이자 메이 알콧의 명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애이미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준 앨리슨,
마가렛 오브라이언, 자넷 리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단연 존재감을 드러냈다. '애수'의 마빈 르로이 감독.
신부의 아버지(Father of the Bride, 1950)
애지중지하던 고명딸이 아버지 몰래 약혼사실을 공표한다. 황당해진 아버지는 결혼을 막아보려고 애쓴
다. 이듬해 속편도 나왔고, 1991년 만들어진 스티브 마틴과 다이안 키튼의 리메이크작도 짭짤한 성공을
거뒀다. 2000년 AFI가 선정한 코미디 100선에 들었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50년, 고작 18살의 엘리자
베스 테일러는 호텔갑부 힐튼 가문의 상속자인 콘라드 힐튼과 첫 결혼을 올렸지만 불과 9개월만에 헤어
졌다. 미녀들은 왜 그리도 서둘러 결혼해버리는걸까... 스펜서 트레이시 출연, 빈센트 미넬리 감독.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1951)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들이댄 테오도르 드라이저의 소설 '미국인의 비극'을 영화화한 작품. 비평과 흥행
모두 대성공을 거뒀고 감독상, 편집상 등 6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AFI가 선정한 미국 100대 영화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공연한 이 영화를
통해 완전한 스타로 자리잡았다. 셜리 윈터스 출연, 조지 스티븐스 감독.
* 흑기사(Ivanhoe, 1952)
십자군 원정에 나갔다가 실종된 영국왕 리처드를 찾아나선 원탁의 기사 아이반호는 그가 볼모로 잡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리처드를 대신해 왕좌를 누리고 있는 왕의 동생은 그를 위해 몸값을 지불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엘리자베스는 아이반호와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빠지는 아이작의 딸 레베카로 나온다.
1952년 MGM사 영화중 흥행성적 탑4에 올랐다.
*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1954)
원래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부부가 기용될 예정이었으나, 로렌스의 스케줄 때문에 불발됐다.
남편 없이도 출연을 강력히 원했던 비비안 리는 촬영에 들어갔지만 지병으로 인해 포기했다.
* 내가 마지막 본 파리(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2차대전 종전으로 환희에 들떠있던 파리를 취재하던 미국 기자 찰스는 미모의 여인 헬렌으로부터 축하키스
를 받는다. 인연과 우여곡절이 이어져 결혼에 골인한 그들은 딸을 얻고,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받은 텍사
스 유전에서 기름이 쏟아져나와 부자가 된다. 각자 자신의 꿈을 좇으며 소원해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만 끝내 크게 다투고 헤어진다. 화난 남편에게 애원하던 헬렌은 추위로 인해 결국 병사하고 만다.
소설가로 크게 성공한 찰스는 다시 파리를 찾는다. 스콧 피츠제랄드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전형적인 멜로물
이다. 이 영화로 헐리우드에 데뷔한 로저 무어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사귀는 유명 테니스 선수로 출연한
다. 반 존슨, 도나 리드 출연, 리처드 브룩스 감독.
* 자이언트(Giant, 1956)
단 세 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나와 청춘의 영원한 표상이 된 제임스 딘은 이 영화 촬영을 끝내자마자 교통
사고로 숨졌고, '자이언트'는 그의 유작이 됐다. 제임스 딘의 일부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더빙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연모한 농장 청년은 자그마한 땅을 얻는데, 거기서 엄청난 유정을 발견한다.
제임스 딘과 록 허드슨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각각 노미네이트됐다. 데니스 호퍼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의 아들로 출연하고, 딸로 나온 캐롤 베이커는 실제로는 엘리자베스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AFI의 영화
100선에 올랐다. 록 허드슨, 캐롤 베이커 출연, 조지 스티븐스 감독.
* 레인트리 카운티(Raintree County, 1957)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애정신파극. 이상주의자인 존은 레인트리 카운트에 들린 남부출신의 젊은 처자
수잔에게 빠져든다.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음 그곳을 떠난 수잔은 얼마후 그 앞에 다시 나타나 임신
했음을 알린다. 책임감 때문에 교사인 애인을 버리고 그녀와 결혼하지만, 그녀에게는 많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북전쟁의 기운이 무르익자 수잔은 둘 사이에 난 아들을 데리고 남부로 떠나는데, 아내와
아들을 찾기 위해 북군에 참전한 존은 정신병원에 수용된 수잔을 데리고 온다. 전쟁 후 정치가로의 꿈을
키우는 존을 위해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안 수잔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영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처음 후보로 오른다. 몽고메리 클리프트, 에바 마리 세인트 출연. 액션물과 서부극
으로 날렸던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이 이런 멜로물을 맡은 것도 좀 특이해 보인다.
*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 1958)
촉망받던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떨치던 고교 시절, 부상으로 날려버린 성공의 꿈을 아쉬워하면서 브릭은
술로 나날을 지샌다. 그는 아내 매기와 함께 죽음을 앞둔 부친의 생신에 참석하기 위해 미시시피로
간다. 부유한 아버지의 유산문제와 남편의 애정에 목말라하는 아내, 그들을 둘러싼 집안의 비밀스런 일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퓰리처 상을 받은 테네시 윌리엄스 희곡을 각색한 작품.
라나 터너와 그레이스 켈리가 매기 역을 탐냈다. 촬영 초기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쉬고 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세번째 남편인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뉴욕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비행기는 추락했고
남편을 비롯한 승객전원이 사망했다. 1년 한달 전에 마이클 토드와 결혼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과부가
되었다. 폴 뉴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각각 아카데미 주연후보에 올랐다. 리처드 브룩스 감독.
*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 1959)
역시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기초로 한 멜로, 미스테리물. 캐서린은 유럽 여행도중 사촌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부유한 숙모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분노로 바뀐다. 아들의 죽음에
따른 추문을 덮어버리려는 그녀는 재정난에 처한 병원 외과과장을 회유해 캐서린에게 억지 뇌수술을
시켜 입을 영원히 봉해버리려 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고, 캐서린
헵번과 함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도 노미네이트됐다.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함께 출연했다.
* 버터필드 8(BUtterfield 8, 1960)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는 패션모델 글로리아는 부유한 실업가 리겟과 원나잇 스탠드를 벌인 아침에 그가 침대
맡에 280달러를 두고간 것을 보고 화가 나 부인의 밍크코트를 걸치고 나온다. 전화번호를 바꿔버린 그녀는
오랜 친구인 피아니스트 스티브에게 찾아가지만 곤란의 연속이다. 리겟은 그돈이 화대가 아니라 실수로
자신이 찢은 그녀의 새 드레스 값이라고 설명하며 오해를 풀려고 하지만 일이 꼬인다. 4년 연속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엘리자베스 테일러(28)는 이 영화로 드디어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당시 엘리자베
스의 네번 째 남편으로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에디 피셔는 아내였던 여배우 데비 레이놀즈를 떠난 터라 비난
의 대상이 됐었다. 둘은 이 영화에 넌더리를 쳤지만, 아카데시상 수상을 계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1963)
1963년 개봉작 중 가장 많은 흥행수입(2600만 달러)을 올렸지만, 막대한 예산지출(4400만 달러)로 인해
적자를 본 영화다. 복잡하고 정교한 세트, 화려한 의상과 소도구 등에 막대한 물량을 투입했지만 런던과
로마에서 두 차례나 재촬영하느라 제작비는 점점 불어났고, 결국 영화 역사상 세번째로 많은 예산을 쏟아
부은 것으로 기록됐다. 이로 인해 한때 20세기 폭스사가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1965년 개봉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성공으로 기사회생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각자 배우자가 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공공연하게 애정행각을 벌였고, 두 주인공 스타들의 철없는 일탈 때문에
영화사는 곤욕을 치렀다.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무려 65번이나 의상을 바꿔입어
이 부문에서 기네스 기록에 올랐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애드워드 알비의 동명 각본을 영화화했다. 뉴잉글랜드의 자그마한 대학을 배경으로, 역사학 교수와 주정
뱅이 아내, 그리고 대학 학생회장인 딸 사이의 변덕스런 관계를 그린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영화의
배역을 위해 무려 13kg이나 체중을 늘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흥행-비평 양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 영화
는 아카데미상 전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각본상, 남녀 조연상, 미술상, 촬영상, 의상상, 편집상,
작곡상, 음향상 등 1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유일한 영화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두번 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리처드 버튼-엘리자베스 테일러 커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AFI 영화 100선 중 67위에 올라 있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데뷔작.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1967)
성질머리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큰딸을 어쩌지 못하고 있던 부유한 집안에서 마침내 그녀를 얌전하게
길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딸과 재산을 주겠다고 현상을 내건다. 젊은 신사가 이 도전에 나선다. 진흙탕
싸움을 시작하는 두 남녀의 세기적인 대결이 벌어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희곡을 각색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황금 눈에 비친 모습(Reflections in a Golden Eye, 1967)
1940년대 군부대를 배경으로 6명의 중심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음흠한 욕망과 강박관념을 다루고 있다.
동성애적인 기질을 지닌 직업군인 웰던은 아내 레오노라와 성적인 갈등을 빚는다. 애초 남자주인공으로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예정됐지만, 1966년 7월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말론 브랜도가 뒤를 이었다.
존 휴스톤 감독.
시대가 흐름에 따라 미녀의 기준이란 것도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지만, 그녀 앞에는 항상 '세기의 미녀'라
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짙은 눈썹에 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일 듯 깊고 그윽은 눈동자, 모나지 않은 윤곽이
고전적 미녀의 기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그녀는 실상, 요즘의 기준으로 치자면 결코 그런 어마어마한 타
이틀을 얻지는 못했으리라 싶다. 별로 크지 않은 키(163센티 정도)에 요즘의 화두가 되는 '늘씬쭉빵'과는
거리가 먼 그녀는, 적어도 두 세대 이전의 당시 전세계 남성들의 기준으로는 '지상 최고의 미녀'에 틀림없었
으리라.
모두 7명의 남자와 8번의 결혼식을 올렸을만치 왕성했던 남성편력은 세간으로부터 큰 관심과 비난의 촛점이
되기도 했지만, 배우 리처드 버튼과 그녀는 정말로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던 것 같다. 유부남과 유부녀로서
영화촬영을 통해 사랑을 키웠고 1964년 3월15일,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10년3개월(1964년 3월
15일~1974년 6월26일)만에 이혼했지만, 1년반도 안되어 다시 결합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1952년을
떠올리면서 리처드 버튼은 침이 마를 정도로 그녀를 찬양했다. '그녀는 눈부심 그 자체였다. 충만함, 질박
함, 풍부함, 견고함...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졌다는 표현 외에는 그녀를 묘사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한 마디로 굉장했다'
이혼서류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재결합한 그들의 두번째 결혼생활(1975년10월10일~1976년 7월29일)은
불과 1년도 안되어 끝이 났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 역시 '내가 죽거든 리처드 버튼의 고향 웨일즈에 뼈를 뿌
려달라'고 했을만큼 그에 대한 사랑이 깊었음을 토로했다. 매일 보드카를 세 병씩이나 마셨고 하루에 너댓
갑의 담배를 피워댔던 체인스모커였을 뿐 아니라 치마만 둘렀다면 어떤 여자도 마다않던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던 리처드 버튼이었지만 그녀만큼은 최고의 여자였던 모양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빼놓고 세기의 여배우 어쩌고를 논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
로는 그녀만치 유명한 여배우, 따라서 호주머니 속의 동전 한 닢까지 샅샅이 파헤쳐진 여배우가 어디 있으
랴, 이런 여배우를 내가 다시 포스팅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결국 못하고 말았었다. 지
나치게 뛰어난 미모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불우한 인생을 보내야했던 그녀는 전세계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지
나치게 뜨거운 사랑과 추앙을 누린 것으로 만족했을까.
그녀의 잦은 남성편력을 꼬집은 기자들에게 '그럼, 침대에서 혼자 자란 말이냐'고 일침을 놓았을만치 그 누구
보다도 열정적으로 남자를 사랑했던 그녀였다. 보석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말년의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
해 명사로서 큰 족적을 남기고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가 우리들 가슴에 진하게 남기고 간 한자락 향
기를 우리는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그녀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