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기도, 그 비밀(?)
다른 교우들이 나를 참 우습게보리라. 9월 16일이 되어야, 내가 영세한 지 만 12년이니까. 그래도 제법 뭐가를 아는 체하니, 그런 수모(?)는 달게 받아야지 어쩌겠나. 어쨌거나 기도를 한다며 가끔은 손을 모은다. 그제 지하철 안에서도 묵주를 쥐고 있다가, 낯선 형제로부터-두 살 연장이었다, 그는-칭찬을 받았다. 복음 성가야 항상 부르고말고.
근데 난 ‘식사 후 기도’만은 철저하게(자화자찬하는 이 자체가 죄다.) 바친다. 연도(煉禱)라 하지 않던가? 먼저 선종한 아들을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을 했으니, 또 그 기도문을 되뇌어보자…(전략)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삼종기도’에도 비교적 열심이다. 근래 이 삼종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고말고. 아침 여섯 시, 낮 열두 시, 그리고 저녁 여섯 시! 물론 몇 분 혹은 반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세 번은 내 일과가 아니라 신앙이다. 그러나 다시 고백하지만, 난 역시 아는 것 별로 없고 게으른 신자일 따름이다.
다만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서너 달 나는 본당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냉담한 것은 아니다. 그냥 떠돌이처럼 다니면서 복음성가를 불렀다. ‘방랑 시인 김삿갓’ 흉내를 냈다. 물론 삼가동 성당과 군 성당이며 명동 성당,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도 들렀고. 마지막인 그제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부원장 신부를 만나, 고해 성사를 봤다. 이 죄인은 목이 멘 가운데 대성통곡을 했다. 오순절 평화의 마을 가족들은 다 장애인이다. 정신지체가 심하다. 수녀도 거의 장애를 가졌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모두 천사처럼 맑다. 놀라운 사실 하나. 몇 년 만인데, 그들은 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는….예수님이 따로 없다. 바로 거기 가족들이 예수님이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거기서 심부름할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봉헌하던 삼종기도! 방송이 나가면,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입을 모은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은총이(후략)….하지만 그제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서러운 서러운 사연이 있는 나는 그냥 중얼거리다가 돌아서 나왔다.
재작년이다. 30여 년 만의 초등학교 제자들이 나를 스승이라고 찾아온다고 했다. 부산 감전초등학교다. 부산과 대구, 서울 등지에서 올라 올 테니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다. 나는 자격이 없다. 하지만 마냥 뻗댈 수도 없어, 낯에 철판을 깔고 나갔다. 하준영 군이 먼저 와 있었다. 군은 내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소릴 듣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섯 시가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내가 제안했다. 삼종기도를 바치자고. 전율을 느꼈다. 그 순간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그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26사단 불무리 성당에서의 일이다. 나는 거기 최종현 학사를 존경한다. 학사, 장차 사제가 될 병사인데 그가 전화를 통해 외치는 소리는 ‘공격!’이다. 만나면 물론 더 우렁차고. 언젠가 열한 시가 조금 넘어 거기 갔다.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열두 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성호경부터 그었다. 그리고 삼종기도….어찌 그 순간이 기억에서 사라지랴.
손자와 본당에서 어린이 미사에 참례했다가 나오는데, 딱 여섯 시다. 손자가 시계를 가리킨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모았다. 녀석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전략)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
바로 며칠 전의 일도 잊을 수가 없다. 막내 손자를 데리고 어린이집에서 나와 ,거리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말 선하기로 이름난, 빈첸시오 일을 보는 이사벨라 자매가 나를 보고 반가워한다. 나는 마침 <성경> 필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었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반시간쯤 흘렀다. 마침내 그가 집으로 돌아가려는 눈치인 것 같아 나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시간이 안 되었지만, 삼종기도를 바치자고. 행인의 눈치 따윈 볼 필요 없이 우리는 거리에서 그렇게 예수님과 성모님을 찾았다. 그날 기분이 하늘을 날 것 같았다.
몇 년 전, 괌(Guam)에 간 적이 있다. 4박5일 동안 호텔에서만 머무르다 보니, 별 추억도 없다. 원주민은 차모로족이고, 그들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다. 호텔엔 중국인 미국인 일본인 한국인 등이 많았는데, ‘식사 전 기도’와 ‘식사 후 기도’에 모두가 게을렀다. 하물며 삼종기도이랴. 우린들 예외일 수가 없었으니, 후회된다. 마지막 날 떠나기 전에 한인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는데, 마치고 나서 신자들과 함께 삼종기도를 바친 기억이 있다. 그때의 주임신부와 그제 문자를 주고받았다.(부산교구 소속 이성주 프란치스코 신부.)
아, 그 전날 그곳 차모로족 신자들이 주를 이루는 아가냐 성당에 들렀었지. 열두 시였을까? 성당 바깥에서 합장한 채 서 있던, 그들 몇몇 차모로 족 신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삼종기도를 바치고 있었음은 물어보나마나.
오늘 잡문을 쓰다 보니 시간을 넘겼다. 여섯 시 20분이다. 지금 바쳐도 괜찮으리라. 비밀스러운 삼종기도? 제목에 비해 내용이 형편없다. 자괴지심 늪으로 뛰어들자!
14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