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나비의 사생활 외 1편
김지헌
이른 봄 현호색과 모시나비
꽃이 피고 지는 찰나의 눈맞춤 끝
손톱만한 보라색 꽃잎에
사랑의 결실을 남겼다
암컷엔 정조대를 씌워놓아
일부종사하도록 치밀하게 단속해 놓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했던가
저것은 치정일까 숭고일까
태양 아래 애면글면 하기는
나비나 인간이나 매한가지
간절히 서로에게 몰입하는 동안
온 우주가 숨죽이고 모른 척 해주듯
오늘 너의 조용한 날갯짓
가볍고 단단한 내공으로
내일 지구 어디쯤 큰 바람 일으켜
세상을 흔들어 놓을지 모르는 일
나붓나붓
마냥 가벼워 보이는 날갯짓도
알고 보면
평정심을 가장한 침묵의 독심술일지도
애벌레는 전심전력 제 속도대로
한 생을 밀고 갈 것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움
흙 속에 묻어두었던 뿌리가
죽을 힘 다해 움을 틔워낼 때
그 움이라는 말
맵차던 지난겨울
스티로폼 박스에 갈무리 해 놓았던 대파
그 하얗고 탱탱한 속살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맵고 아리던 생의 기억 숨긴 채
샛노란 새싹 움 틔울 때
세상에 대하여 단단히 채비한 게 분명하다
움이라는 말
볕도 안 드는 음지에 밀쳐두었던 묵은 화분에서
어느 날 노란 대파 줄기 쑥 올라올 때
뱃속의 아기가 첫울음으로 문 열어젖히듯
첫 씨앗이 씨방을 찢고 나오듯
움이라는 말은 얼마나 힘세든가
묵은해를 빨리 버리고 싶었던 걸까
여기저기 새해 덕담이 소란스럽다
봄의 움은 태양의 힘으로 자라지만
겨울 움파는 묵은해의 기운으로 자란다
추운 겨울을 버티는 힘이란
묵은해의 뿌리에서부터 오는 것
묵은해 뿌리의 매운 성깔로
세상을 당차게 밀고 갈 수 있는 것
움딸, 움쌀, 움집, 움짤, 움트다……,
존재만으로도 소소하고 따뜻한
움이라는 말
김지헌
1956년 충남 강경 출생. 1997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심장을 가졌다 외 4권. 현재 한국시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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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나비의 사생활 외 1편 / 김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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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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