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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20:3; 41:46; 출7:7; 14:21,22; 수3:15,16; 6:20; 10:12,13; 삿4:15; 7:22; 7:10; 삼상18:5; 삼하5:4,5; 왕하3:20; 7:6,7; 19:35; 대하14:12; 20:22,23; 에7:10; 욥13:24; 시10:1; 22:1,2; 42:5; 44:24; 77:7-9; 88:14; 89:46; 잠15:23; 25:11; 전3:1; 사30:18; 45:17; 요2:4; 7:8; 12:23,27; 행1:4,5,7; 11:24,25; 갈6:9
읽을말씀: 사45:15
주제말씀: 사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첫째,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하나님은 또 어떤 분이십니까?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하) ‘하나님께서 스스로 숨어 계시다니’ 이는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확신에 찬 역설적인 표현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당장은 행동하지 않으셔서 숨어 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행동(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믿음의 사람들도 종종 하나님의 이 같은 점을 깨닫지 못하기에 무척이나 답답해하고 힘들어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이 그리 했고,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니이까.”(시10:1)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 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22:1,2)
아삽이 그리 했으며,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페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시77:7-9) 헤만이 그리 했으며,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시88:14) 에단(또는 어두둔)이 그리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시89:46)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또 무엇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얼굴을 가리신다’는 표현입니다.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시44:24) /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욥13:24)
이처럼 ‘스스로 숨어신다’, ‘그 얼굴을 숨기신다’, ‘그 얼굴을 가리신다’ 등의 표현으로 볼 때, 하나님이 당장에 행동하지 않으실 때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답답함과 불안, 초조함 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까지나 스스로 숨어 계셨습니까? 영원히 그리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될 때까지만’ 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당신을 드러내시고 구원행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신구약성경이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창20:3) / “모세가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출14:21,22) /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새.”(수3:15,16)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오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수6:20) /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이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 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수10:12,13)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삿4:15) /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삿7:22) /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삼상7:1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왕하3:20) /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왕하7:6,7) /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대하14:12) /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대하20:22,23) /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친지라.”(에7:10)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스스로 숨어 계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혹 그러한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둘째,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선지자 이사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결국 누구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입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그러니 그는 당연히 무엇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시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즉 이 때가 반드시 올 것을 믿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사45:17)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에 대해서 점점 더 알아갈수록 우리의 신앙생활도 훨씬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시니 우리도 기다릴 줄 알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니 우리도 그 복을 사모하고 구할 줄 알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것이니 믿음으로 인내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매주 힘써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앙생활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누릴 수 있으며, ‘아는 만큼’ 더 단단해지고, ‘아는 만큼’ 더 견실해지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어떤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단어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 결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 있으며, 이 순간을 잘 맞추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오직 누구만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그 기한과 때를 자기 권한에 두시고 또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전3:1)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행1:7)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항상 어떤 자세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몸소 본을 보이셨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2:4 하) /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요7:8)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 /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12:27)
또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 했듯이 말입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창41:46 상) /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출7:7) /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5:4,5) /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행11:24,25)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든 일에 하나님이 정하신 결정적인 때가 있음을 깨닫고, 그 때를 믿음을 가지고 인내함으로써 잘 기다리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때에 맞는 말이 아름다운 것처럼,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15:23)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
때에 맞는 행동이 지혜로우며, “다윗이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삼상18:5)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복된 것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