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이 있다고 기득권에 위치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관성이라는 건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를 말한다.
관성은 정해진 고정 가치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과 같다. 정해진 조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준수하고자 하고 사회의 안정성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고 싶어 한다. 국가의 관점에서는 사회 발전과 안정을 저해하는 범법자를 규제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관성은 개인을 사회에 맞게 행동하도록 규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개인을 억압하는 불평등한 존재이기도 하다. 개인에게는 자신이 사회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로써 책임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안정된 사회와 권력이 지닌 특성을 들여다보면 바로 그것이 관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재성이라는 여론이 모여서 하나의 큰 사회를 만든 것이 관성이다. 그래서 여론의 지지를 받는 관성은 권력이고 안정된 큰 체계다. 이것이 굳어져서 체제를 유지하는 여러 가지 규제와 질서를 만든다. 관성이라는 사회 안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고정 관념까지 합하여 인성이라 한다. 인성은 관성이라는 사회 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지식 가치라고 볼 수 있고, 사회를 해석하는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재성과 관성, 인성은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로 명리에서는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제 정관(正官)과 편관(偏官)을 보자.
정관(正官)은 국가와 같은 권력이고 안정 기득권이다. 오랫동안 유지되는 사회와 같다.
편관(偏官)은 전쟁 위협에 대처하는 군대와 같은 권력이고 변화의 폭이 큰 강제력 및 기득권이다. 항상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하므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법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는 환경에 처한다.
정관은 안정적이고 편관은 변화적이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고여서 썩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변화적이라는 것은 변화의 폭이 크니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보다 큰 강제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정관은 한 번 정립되면 잘 바뀌지 않으니 국가 혹은 대기업과 같다. 법체계를 지키고 안정을 위해 힘쓴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여 만들어진 사회이므로 잘 바뀌지 않고 좀처럼 빼먹어도 잘 망하지 않는다.
편관은 정관만큼 체계가 정립되지 않았다. 변동성이 큰 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하기 때문에 항상 변화가 전제되어 있으므로 결정권자의 지시가 법처럼 크게 작용하는 것과 같다. 위험성이 큰 사회라고도 볼 수 있고, 변화가 큰 사회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권력의 정당성에 대해 도전을 많이 받기도 하므로 정관만큼 고여서 썩는다고 볼 수는 없다.
정관이 안정성을 목적으로 한다면, 편관은 정당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제 정관과 편관이 다른 십신과 상호작용할 때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 보자.
관성과 비겁 (官星과 比劫)
관성과 비겁 관계는 개인들에 대한 사회, 기득권의 각종 규제와 같다. 개인들을 억압하는 강제력 행사일 수도 있고, 사회 법규에서 벗어난 독립자들에 대한 규제일 수도 있다. 신흥 세력에 대한 견제일 수도 있고 빈부격차를 해소시키기 위한 각종 법제도가 작용하는 것과도 같다.
1) 정관과 겁재
정관과 겁재는 안정 사회와 독립자(이방인)간의 관계로, 사회적 파장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장성만을 고려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법과 같다. 겁재라는 돈 벌기 위해 범법행위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관이라는 법으로 테두리 안에 두는 것이다. 우수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사회에 이바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상패를 주거나 해서 책임감을 불어넣거나 한다. 그래서 정관과 겁재가 있으면 “사람들을 위해 일해라”라고 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의 틀 안에 우수 능력자 혹은 이탈자를 두기 위한 노력을 한다.
2) 편관과 비견
편관과 비견의 관계는 구 세력과 신흥 세력의 대립과 같다. 혹은 강대 세력과 약소 세력의 지배 관계와도 같다. 비견이 있는데 편관이 있으면, 강제력을 행사하는 사회나 조직이 내 주변인을 핍박한 적 있다는 말이다. 아픈 경험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말이다. 이 관계는 편관과 비견 중 어떤 것이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다르다.
편관의 입장에서, 편관은 조직이나 사회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해 개인에게 가하는 강제력을 행사한다. 편인이 있으면 편관이라는 강제적 사회의 명령에 잘 대처해 비견이라는 주변인들을 잘 다독여 편관이라는 사회에 합류하도록 유도한다.
비견이라는 나와 함께하는 주변인의 입장에서, 비견은 압박하는 강제적인 사회가 있는 것이니, 아픔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러니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 아래 편관에게 대항하거나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식신이 있으면, 내 주변인의 아픔을 경험으로 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편관이라는 사회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 노조 대표, 인권 변호사 등 불합리한 사회 구조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일하곤 한다.
관성과 식상(官星과 食傷)
식상과 관성의 관계는 사회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식상은 관성을 보면, 그 정당성에 대해 분석하고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기자가 대기업과 국가에 던지는 물음과 같다. 이는 식신과 상관, 편관과 정관으로 나누어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다.
1) 식신과 편관(食神과 偏官)
식신은 편관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고유 능력으로 편관의 압력을 벗어내려 노력한다. 다가오는 미래의 위협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 관계에서 비견의 유무는 매우 중요한데, 비견이 있으면, 나와 내 동료들을 위협하는 불평등에 대항하는 것이지만, 비견이 없으면, 나를 위해 행동한다. 정당성이 타인을 위한 행위를 포함한 것에서 나만을 위한 것이 되니 명예로움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도와주는 동료가 없으니 나의 체력만을 소모하므로 탈진되기 쉽다. 어느 방향으로 비교하더라도 비견이 있는 것이 유리하며, 비견이 없을 것이라면 근(根)이라도 있어서 나의 체력이 방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상관과 정관(傷官과 正官)
상관은 정관과의 관계에서 정관의 기득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상관은 내 경험을 중심으로 정관이라는 사회에 대항하는 게 아니다. 정관이라는 사회가 있으면 일단 해체·분석해보는 게 먼저다. 그리고 나서 불평등한 지점이 있는지 살핀다. 식신과 편관의 관계에서 ‘나’ 혹은 내 동료가 위협받은 경험으로부터 식신으로 편관에 대항했다면, 상관과 정관의 관계에서는 그러한 위협의 경험 없이 해체분석부터 한다. 기자의 직업정신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거나, 숨겨져 있어 몰랐던 부정부패를 찾아내 고발하는 형식으로, 그동안 인간들이 당연히 여겨온 발전이 환경파괴로 곧 다시 인간에게 돌아올 것임을 기자가 밝혀주는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식신 편관이 ‘내’ 경험을 기준으로 사회에 대항한다면, 상관은 ‘사회 일반’을 기준으로 정관이라고 하는 사회가 얼마나 합리적인 정당성을 지녔는지 분석한다.
정관의 관점에서는 그동안 유지해왔던 안정된 사회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안정적으로 생활해왔던 환경에 돌을 던지고 있는 것과 같다. 매우 불편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좋은가 정의를 세우는 것이 좋은가. 어느 방향에 더 관심이 쏠려 있는지는 사주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다.
관성과 재성 (官星과 財星)
관성과 재성은 상호부조 관계며, 사회나 조직에게 갖는 책임감과 같다. 관성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충성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재성은 사회에 충성함으로써 그 사회 속에서 지위가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유지되려면 지속적으로 사회를 위해주는 사람, 여론이 있어야 한다.
남자의 관점에서 재성과 관성이 있으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여자의 관점에서는 관성이 남편인데, 재성으로 관성인 남편에게 잘해주는 것과 같다. 이는 비겁이라는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도록 가장에게 힘을 보태는 것이다. 관성이라는 가족적 관점에서는 재성과 관성의 관계를 방해하는 비겁은 곧 가정의 지속성을 방해하는 위협 요소와 같다.
편관과 편재 / 정관과 정재
두 관계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편재가 확장적인 경향성을 지니고 정재가 내부 관리적인 경향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나 보이는 모습의 분위기가 달라 보일 수는 있겠다. 둘 다 조직이나 사회를 위한 헌신적인 모습은 같다.
여자의 입장에서 편재가 편관을 생하는 것은 남편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잘해주고 센스 있게 다독여주는 것과 같다.
정재가 정관을 생하는 건 정해진 정도에서 가정이라는 테두리에 걸맞는, ‘사회 일반’에서 배워 온 가정을 위한 행동과 같다. 편재-편관의 관계에서 좀 더 헌신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관성을 조직, 사회로 볼 때는 편재-편관의 관계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고 정재-정관의 관계는 로우-리스크 로우-리턴과 같다. 안정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관성과 인성 (官星과 印星)
관성과 인성 관계는 사회 체계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는 관계다. 관성이라는 조직, 사회가 굳어져 제도와 질서가 생긴 것이 인성이다. 관성과 인성만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윗사람이 내려주는 지시에 따르는 것을 선호한다. 몸담은 공동체에게 헌신하는 것은 재성-관성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재성으로 관성을 융성하게 하는 것은 특히나 조직이나 사회의 발전을 통해 자신이 이룩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회 속에서 지위를 얻기 위함이고 인성-관성의 관계에서 관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관성이 조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내리는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과 같다. 재성의 관성을 생함은 윗대가리가 썩었으면 도려내고 사회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말이다. 인성이 관성의 생 받음은 윗대가리가 썩었어도 사회가 유지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며 묵묵히 임무 수행한다는 말이다. 각자가 목적하는 바가 조금 다르다.
1) 정관과 정인
정관과 정인 관계는 정석적인 임무 수행을 요구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일반 사회가 갖추는 형식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 정인은 합리적이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식 가치를 배우고 싶어 한다.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경우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정해진 체계에 따르고 싶어 하고, 정해진 자격을 갖추고 싶어 한다. 모양 빠지는 건 안 한다. 옷을 사도 정석이라고 보이게 입고 많은 사람이 알 법한 브랜드를 사 입는다.
2) 편관과 편인
편관은 항상 변화가 많고 그에 따라 즉각적인 대처가 필요한 일에 처한다. 정해진 형식대로 처리할 수 없는 불규칙적인 업무가 주어지므로 오랫동안 정립된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융통성이나 문제 해결능력을 요한다. 그러므로 이를 잘 처리할 수 있는 편인이 필요하다. 편인은 정인과 다르게 무언가 정해진 형식의 자격을 갖추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융통성이나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해서 그때그때,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그래서 유연하게 편관의 업무에 녹아들 수 있다. 전쟁 중의 군인이라면 즉각적인 상황에 알맞게 유연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만일 군대적 문화를 가진 회사라면 자기에게 불합리한 업무를 수행하든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든지, 과하게 몸을 써야 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든지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 편인은 이런 문제를 주변 환경을 알맞게 활용하여 잘 넘어간다.
각자에게 알맞은 상황과 처리 방식이 있는 법이다.
정관의 환경에 편인이 있으면 안정된 환경에서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니 자격이 부족할 수도 있고 심하면 횡령도 한다.
편관의 환경에 정인이 있으면 빈번히 변화하는 환경에 업무 매뉴얼을 원하는 것이니 일에 적응하기 힘들다. 매사 불평이 많을 수 있다.
관성은 개인을 규제하기도 하고 안정된 사회 속에 살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사주의 구조에 따라 이 작용이 개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관성이 개인에게 주는 업무가 과중할 수도, 개인에게는 너무 작은 일일 수도 있다. 각자의 삶에서 관성이라는 ‘내 눈에 보이는, 내 삶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를 어떻게 보고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