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얼과 흔적을 찾아서
임인년(壬寅年)의 첫날 남산호국공원(경남 창녕군 영산면 동리 434)을 다녀왔다. 이 공원은 임진왜란 호국충혼탑과 3.1독립운동 봉화대와 기념비를 비롯해 6.25 전쟁 영산지구 전적비 등 3대 국란 호국 성지로서 1982년 전국에서 최초로 호국공원으로 조성했단다. 전체적으로 볼 때 냇가 옆으로 좁고 길게 펼쳐진 평지와 가파른 절벽 위에 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입구의 관광안내소 바로 뒤에 커다란 입석(立石)에 한자로 ‘南山護國公園’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규모는 작을지라도 우리나라 호국공원 중에 손꼽힌다는 귀띔이다.
평지인 입구에 들어서 발길을 옮기다 보니 왼쪽으로 남천(南川)이라는 시내가 흐르는데 중간쯤에 축조된 만년교(萬年橋 : 보물 제564호)가 눈길을 끌었다. 이 다리는 길이 13.5미터이고 너비 3미터의 홍예교(虹蜺橋)* 즉 무지개다리이다. 개울 양쪽의 자연 암반을 주춧돌 삼아 홍예(虹蜺)라는 방법으로 축조한 반원형 아치(arch) 모양이다. 그런데 홍예는 아래쪽이 위쪽보다 좁게 다듬은 석재를 반원형(무지개 모양)으로 축조함으로써 교량의 하중이 옆으로 받도록 시공한 것이란다. 이는 정조(正祖) 때 축조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수 혹은 대폭 개축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얘기이다. 한편 다리 아래를 흐르는 물이 남산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남천교(南川橋)’, 다리를 놓은 원님의 공덕을 기린다는 뜻으로 ’원다리‘ 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만년교를 지나 조금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임진왜란 호국충혼탑(壬辰倭亂 護國忠魂塔)’이 버티고 서 있다. 탑 앞에서 통한의 일제 만행에 분연히 일어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항거했던 거룩한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다가 발길을 옮겼다. 몇 걸음 옮기니 전제(全齊) 장군의 기념비가 눈에 띄었지만 세간에 역사적 평가와 여론이 엇갈리고 분분하다는 맹랑한 현실을 감안해서 그냥 지나쳤다. 그 보다 안쪽엔 이 고을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현감들의 공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가 줄줄이 서있는 독특한 모양새가 눈길을 끌어 대충 훑어보고 모형으로 만든 물레방아를 스쳐지나 입구 쪽으로 돌아와 계단으로 가파른 절벽 위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며 숨이 조금은 가빠올 지음 6.25 전쟁 때 ‘영산지구 전적비(戰績碑)’가 우뚝 나타났다. 비(碑)에 새겨진 바에 의하면 “창녕의 영산은 낙동강 돌출부로서 1950년 여름 두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북괴의 공격을 방어했던 전적지라는 얘기이다. 여기서 미군 제24사단과 해병 5연대가 보였던 결사항전의 투혼이 영산을 수호했기에 비(碑)를 세우고, 이 땅의 자유와 민주를 지키려고 목숨 걸고 싸우다가 산화한 영령들을 영원히 기억하며 빛나는 전공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 겪어 기억이 어슴푸레한 6.25를 회상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밋밋한 내리막길을 터덜터덜 따라가니 하얀 색깔의 비가 앞에 턱 버티고 서 있었다.
‘삼일독립선언서탑(三一獨立宣言書塔)’이었다. 지난 학창시절 자주 대했던 ‘독립선언문’이 탑에 오롯이 새겨진 내용을 한 자 한 자 천천히 더듬어 읽으며 이를 작성했던 선조들의 절박했던 바람을 생각해 봤다. 미욱한 때문인지 선열들의 애국 애족 정신 보다는 학창 시절 이에 관련해 출제되었던 시험문제가 또렷이 떠올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헤매다가 그 내용을 통째로 외우려고 낑낑댔던 지난날이 떠올라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삼일독립선언서탑 앞에서 얼마를 머물렀을까. 다시 발길을 옮겨 가파른 오르막을 조금 오르니 삼일봉수대(三一烽燧臺) 비(碑)가 반겼다. 이 비 옆에는 채화(採火) 시설인 ‘항아리에 뚜껑을 덮어놓은 모양’의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태양광에 의한 채화가 아니라 LPG 연로로 행사 때마다 횃불을 점화할 수 있으며 개인의 희사(喜捨)로 만들었다는 안내였다.
봉수대에서 다시 10미터 남짓 비탈을 오르면 삼일독립운동기념비(三一獨立運動記念碑)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제의 만행에 맞서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애국지사 23인의 결사대가 분연히 일어섰던 영산지역 독립운동이 기미년 3월에 이곳 남산봉에서 시작했단다. 이 불길은 영산면 일대와 창녕읍으로 번져 맨주먹으로 일제의 총칼에 당당히 대항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렇게 영남지방에서 제일 먼저 독립만세를 외쳤던 23인의 결사대를 추모하고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6년에 연지(硯池)라는 연못 옆의 로터리에 세웠던 기념비를 1980년 현재 위치로 옮기고 해마다 3.1절에 위령제를 모신단다.
남산 절벽 위의 6.25 전쟁 영산지구 전적비, 삼일독립선언서탑, 삼일봉수대, 삼일운동독립기념비 사이를 터덜터덜 오가면서 조감하는 조용한 영산면 소재지인 동네 모습은 무척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옹기종기 자리한 주택과 상가가 뒤섞인 동네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연지(硯池)라는 연못이 자꾸 손짓을 했다. 공원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보고 연지에 들러 쉬다가 귀갓길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지방도 길가에 자리한 ‘낙동강휴게소’라는 편의점에 들러 차를 마시며 봄날처럼 따스한 야외의 벤치에 앉아 새해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원래는 임인년의 새아침을 맞아 밀양 무안의 영산정사에 가서 신년 소원을 기원하는 타종식을 겨냥하고 나섰던 길이었다. 그런데 올 해부터는 바뀐 주지 스님의 방침에 따라 외부인의 타종이 금지 되어 포기하고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의 대안으로 찾은 곳이었다. 이게 웬 횡재일까. 예상보다 알차고 보람된 행운이었으니 올 내내 뜻하지 않은 보람과 얻음이 기대되는 꿈이 이어질 생김수가 분명한 희망의 원단(元旦)이다.
=======
* 홍예(虹蜺) : 무지개(a rainbow), 아치(an arch)
2022년 1월 1일 토요일(壬寅 元旦)
첫댓글 교수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는 더욱건강하십시오 _()_
교수님 건강하세요
보수방 헌 책방길을
낭만여행으로 준비중입니다
때가 되면
동행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교수님 덕분에 새해 첫날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호국의 얼과 흔적을 찾아서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_()_